흔히 사용하는 '스타트업'이란 용어는 정확히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
세계는 가히 스타트업 열풍이다. 기업가치가 1조가 넘는 유니콘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 새로운 서비스가 쏟아져 나온다. 모두들 스타트업을 이야기 하지만, "그래서 스타트업이 무엇인가요? 스타트업은 기존의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과는 어떻게 다른가요?"라는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스타트업 정의 방식이 있다. 그만큼 스타트업에 대한 정의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르고, 누가 정의하느냐, 어떤 가치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다양하다. 스타트업은 흔히 '극한의 불확실성', '확장성과 성장성', '문제 해결', '파괴적 혁신(Desruptive Innovation)' 등의 어휘들로 설명되곤 한다. 이 글에서는 스타트업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스타트업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아본다
에릭 리스(Eric Ries)는 매출 5천만 달러를 기록한 스타트업 IMVU의 공동창업자이자 CTO로, 스타트업에게 바이블처럼 떠받들어지는 <린 스타트업> 책의 저자이다. 그의 저서 <린 스타트업>은 도요타의 린 생산 시스템을 스타트업 경영에 도입하고 응용한 것이다. 이 책에는 최소 기능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 혁신 회계, 유효한 학습, 방향 전환(Pivot) 등 스타트업에게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요 개념들이 다양하게 언급되어 있다. (스타트업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강권한다)
에릭 리스는 '극심한 불확실성'을 스타트업의 핵심으로 보고, 스타트업을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신규 제품/서비스를 만들고자 하는 조직'으로 정의한다. 에릭 리스에 따르면 차고에서 혹은 카페에서 밤낮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갓 탄생한 기업만이 스타트업인 것은 아니다. 대기업도, 심지어 정부도 극심한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신규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상하고 이를 만들어나간다면 스타트업에 해당된다. 그는 실제로 한 대기업의 신규 서비스 론칭 팀을 스타트업으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한편, 유니콘 스타트업인 와비 파커의 공동창업자 닐 블루멘탈(Neil Blumenthal)의 정의는 '문제 해결'에 방점을 둔다. 닐 블루멘탈은 ' 스타트업은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다.'라고 정의 내렸다.
닐 블루멘탈이 공동 설립한 와비 파커는 안경 하나를 맞추는데 500달러가 필요한 미국의 현실을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인식했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안경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와비 파커의 창업자들은 고객들이 온라인으로 마음에 드는 5개의 상품을 고르면 이를 택배로 보내주고, 고객들이 직접 안경을 써보고 한 개를 결정한 후 나머지 4개를 반송하도록 하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안경을 맞추는 데 드는 비용은 500달러에서 95달러로 1/5나 줄어들었고, 와비 파커는 급성장하여 기업가치가 1조 원을 넘는 유니콘 스타트업이 될 수 있었다.
이처럼, 닐 블루멘탈은 스타트업을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기업으로 보았다.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는 총 8회의 창업을 경험하고 여러 차례 엑싯에 성공한 실리콘밸리의 연쇄 창업가(Serial-entrepreneur)이자 고객 개발론(Customer Development Method)의 창시자이다. 그의 경험과 이론은 에릭 리스의 <린 스타트업>의 근간이 되었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이며, UC 버클리, 스탠퍼드, 컬럼비아 대학에서 앙트십(기업가정신)을 강의하고 있다.
스티브 블랭크는 스타트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스타트업은 반복적이고 확장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을 의미한다. (A startup is an organization formed to search for a repeatable and scalable business model.)"
여기서 "Repeatable"과 "Scalable"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잭팟처럼 일회성에 그치면 안 된다. 그것은 끊임없는 반복(Iteration)을 통해 정교화되고 지속 가능해야 한다. 또, 스타트업의 비즈니스는 "Scalable"해야 한다. 확장 가능성으로 번역한 "Scalable"은 부언하자면 J커브형 성장 혹은 하키 스틱형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의 여부를 의미한다. 즉, 스타트업은 지속 가능하고, 가파른(혹은 급격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은 프로그래머이자 기업가, 벤처 투자자이다. 그는 시드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투자사인 Y 컴비네이터의 공동창업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트업 구루이다.
다음은 "스타트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폴 그레이엄의 대답이다.
"스타트업은 매우 빠르게 성장하도록 디자인된 기업이다. 지리적 제한이 없이 성장에 집중한다는 것이야말로 스타트업을 작은 비즈니스들과 구분하는 본질이다. 동네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그 프랜차이즈는 스타트업이 아니다. (a startup is a company designed to scale very quickly. It is this focus on growth unconstrained by geography which differentiates startups from small businesses. A restaurant in one town is not a startup, nor is a franchise a startup.)"
폴 그레이엄에 따르면 스타트업은 가파르게 성장해야 하고(Scalable), 그 성장에 지역적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에의 집착이야말로 스타트업의 본질이다.
흥미롭게도 스티브 블랭크와 폴 그레이엄의 스타트업에 대한 정의는 "Scalable"이라는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의 정의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가파른 성장을 스타트업의 본질로 언급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Scalability(확장 가능성,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는지 여부)"는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스타트업 판단기준이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기존 생태계를 교란하는 혁신)의 개념을 스타트업에 적용해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에 따르면, 파괴적 혁신이란 새로운 시장과 가치 네트워크를 창조하는 혁신으로, 결과적으로 기존의 시장과 가치 네트워크를 교란하고, 기존의 시장 참여자들을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A disruptive innovation is an innovation that creates a new market and value network and eventually disrupts an existing market and value network, displacing established market leaders and alliances.)
'파괴적 혁신'이라는 용어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흔히 사용된다. 그리고 그 사례로는 우버와 같은 기업들이 꼽히곤 한다. 그러나, '파괴적 혁신'이라는 개념을 주창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에 따르면 우버는 파괴적 혁신과는 관련 없는 기업이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에 의하면, 파괴적 혁신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첫째, 파괴적 혁신은 로우엔드 발판이나 신 시장 발판을 통해 발생한다. 즉, 기존 시장의 지배자들이 큰 수익이 기대되지 않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소비자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새 시장을 공략함으로써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우버는 기존 시장의 고객(택시를 타려는 고객)을 공략하였고, 로우엔드로 만족하는 고객을 공략한 것이 아니었기에 첫번째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다.
둘째, 파괴적 혁신은 지속적 혁신을 바탕으로 한다. 로우엔드로 만족하는 고객이나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신시장을 노린 혁신은 대부분의 경우 그 품질이 충분하지 않아 주류시장의 고객들에게는 외면당한다. 파괴적 혁신이 되기 위해서는 로우엔드를 요구하는 소비자나 신시장을 공략하며 혁신을 시작하되, 지속적인 혁신과 개선을 통해 주류시장의 소비자들까지도 고객으로 포섭할 수 있어야 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에 의하면, 우버는 이 두번째 기준만큼은 만족한다.
크리스텐슨의 정의 대로라면 파괴적 혁신으로 스타트업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파괴적 혁신의 개념을 적절히 활용하여, 스타트업을 기존의 시장의 질서를 교란하고 파괴하면서 새로운 질서와 더 큰 고객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정의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스타트업에 관한 다양한 정의들을 살펴보았지만, 그 어느 것도 결정적이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는 스타트업으로 넘쳐난다. 이제는 '새로 시작한 회사'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몇 년 후에는 신장개업한 중국집에서도 '스타트업'이라는 말을 쓸지도 모르겠다. 건물 두 채만 가지고 있으면 '회장님', 점포 하나만 가져도 '사장님', '대표님'인 것처럼 말이다.
자신들의 기업을 '스타트업'으로 부르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스타트업인가?"라고. 그것이 에릭 리스의 정의에 의한 것이든, 스티브 블랭크에 의한 것이든, 혹은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이든 상관없다.
21세기에도, 전통적인 비즈니스는 건재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기존 은행을 이용하고, 동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화석연료로 가는 자동차를 탄다. 앱스토어 다운로드 상위 100위 내에는 KT 멤버십 앱, NH 인터넷 뱅킹 앱, 고속버스 운송조합의 예약 앱 등 전통적 기업들이 만든 앱들도 많다. 세계는 스타트업 열풍이라지만,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리매김한 스타트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진통제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기보다는 비타민 같은 제품/서비스를 만든다. 꼭 필요한 혁신보다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일 혁신을 한다는 얘기다.
스타트업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우리는 스타트업인가?" 질문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에 점점 "글쎄"가 많아진다면, 방향 전환(Pivot)을 고려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에릭 리스, <린 스타트업>, 인사이트(2011)
Forbes, "What is A Startup?", Natalie Robehmed, Dec. 16 2013
Steve Blank, "What's A Startup? First Principles', Jan. 25 2010( https://steveblank.com/2010/01/25/whats-a-startup-first-principles/ )
Harvard Business Review, "What is Disruptive Innovation?", C. M. Christensen, M. E. Raynor, R. Mcdonald, Dec.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