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르타르 Dec 13. 2018

오월 광주를 마주하다

한강, <소년이 온다> 리뷰

광주에 혼자 5.18 답사를 갔을 때 일이다. 광주 상무지구에서 5.18 민주묘지를 잇는 노선인 518번 버스가 계림동 근처에 왔을 때 버스 앞자리에서 할아버지가 중얼거리셨다. 「여기 앞에 계림에서 군인들이…」 한참을 홀로 중얼거리시자 버스 기사님은 「어르신, 운전하는데 위험하니까 조용하세요.」라는 말을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1980년 5월 18일 계림동에서는 공수부대가 시민을 향해 처음으로 실탄을 발포했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그때 그 위치에서 보고 들었던 기억들을 이야기하고 계셨으리라. 그 순간 그날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광주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음을 느꼈다. 할아버지와 버스 기사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충격을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소년이 온다

서울로 돌아와서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이 소설 속엔 내가 광주에서 짧게 보았던 그들의 트라우마를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미어졌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그날 죽었거나 살았어도 큰 트라우마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과 훗날 고문의 충격으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자신의 몸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술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날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는 소설 속 문장처럼 말이다. 이 날의 기억은 하나의 아물지 않은 흉터로 남게 되었다. 게다가 그 흉터 위로 계속해서 상처들이 그어져 더 큰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진하게 남은 흉터가 되었다.


다시 한번 국가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있어서 국민이란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본다. 국가는 자유로운 생각의 장을 펼칠 수 있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주의 국가의 지향점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떠했나. 소수의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데만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각종 비리를 스스럼없이 진행하였고, 국가를 자신의 사적 소유물처럼 생각했다. 그들에게 국민은 기득권 세력을 둘러싼 소수의 몇몇 이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오월 광주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흉터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시 그런 상처가 생기려 할 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오월 광주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더 당당히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럴 필요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앞에 주어진 길이 더 선명해지는 경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