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날들이 있습니다.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거 있어?"라는 물음에
늘 "난 네가 진심 담아 쓴 편지 한 통이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사람.
어떤 것보다 마음을 눌러쓴 손편지가 좋았던 사람.
그런 사람이었고, 여전히 때때론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상대에 대한 애정이나 고마움이 느껴지면 말보단 종이 위에 가지런히 글을 줄 세우는 것이 편했고,
벅차는 감정을 '입에서 귀로'가 아닌 '손에서 눈으로' 전하는 게 좋습니다.
웃긴 일이지만 종종 편지에 적은 내용이 믿기지 않아 간직하려고 편지 주인에게 보내기 전 사진을 찍어두거나 타이핑해두는 일도 있었습니다.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이 한 장의 종이 위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 신기했고, 편지를 줄인 이후 찰나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에 기록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만큼 편지라는 건 저에게 있어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고, 잉크 묻은 별 거 아닌 종이가 아니었어요.
그건 미처 눈, 손, 입으로 표현치 못한 상대에 대한 남은 애정을 쏟아낸 흔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적으니 아주 오래전부터 편지에 대한 애착이 있었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최근 들어 그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깨달은 때는 친구에게 쓴 문장이 갸륵해서, 이 편지를 받는 이에게 전달하면 보내는 이는 영영 읽을 수 없다는 게 퍽 아쉬웠던 그 날.
두 번째는 좋아하는 어떤 것에 매료되어 그것을 전문적으로 파내는 이들을 보며 '대체 난 어떤 걸 이만큼 사랑하고, 질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그게 편지임을 문득 깨달았던 때.
이 사건들을 계기로 가벼운 종이와 묵직한 잉크로 쓰여진 편지가 더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더 열심히 '보내는 이' 또는 'from'의 주인공이 되어 그 내용을 하나하나 기록해보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묵혀두었던 오래된 종이 더미를 편지함에서 꺼내 숙성된 시간을 들춰보려고 합니다. '받는 이' 또는 'to'의 주인공이었던 순간으로 돌아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문장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마음으로나마 답장을 보내봅니다.
어쩌면 편지함 속에 숨겨두었던 것들을 꺼내야 해서 힘든 시간이 될 것도 같아요. 그 발굴의 시간 끝에 어떤 것이 기다리는지 아직 모르지만, 그 끝에 '오늘은 그 이름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는 말이 나왔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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