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쓸모에 대하여
나의 쓸모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만년 석사생으로, 이 학교 졸업 후 저 학교 갔다, 다음 과정에 가지 못한 채로 이렇게 10년 가까운 시절이 지났다. 박사 가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다고, 박사에 진학하기도 전에 나는 다 지치고 사그라들어버렸다. 본게임은 시작도 안 했는데, 나는 남들은 길어야 몇년인 이 기간을, 이렇게 탄성 없이 늘어진 시간을 그야말로 성취 없이 보내버렸다. 이런 나의 쓸모 없음을 생각하니 머리 표면이 뜨끈뜨끈해지면서 이 우주 속에서 나의 존재가 너무도 아득하게 버겁게도 느껴진다. 세상에 쓸모 없는 존재는, 있다.
어느 순간,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학에 들어가서 학부 초년생 때에도, 글 쓰는 것이 참 어렵고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느꼈던 것이 기억난다. 쉬이 글이 나오지 않고, 품이 많이 들어간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대학 글쓰기에 차츰 익숙해짐에 따라, 나는 여전히 글쓰는 것은 많은 고민과 세밀한 집중이 필요하지만, 그 깊어지는 순간만큼, 애를 쓰며 아등바등 거리는 고생의 감각보다는 몰입의 고요한 충만함이 그 밀도 있는 시간을 규정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여전히 글쓰기는 나의 정수를 요하지만, 그저 힘든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재밌다기 보다는, 당연하게 내가 들어가 맑아진 정신으로 어떤 결과물을 가지고 나오는 공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원에 갔다. 무슨 연유가 중심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억압적인 교수 때문이었는지 공부의 압박 때문이었는지, 글쓰는 것이 다시 너무나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글을 쓸 때면 내 온 존재와 정신, 숨을 쥐어짰다. 아주 무거운 압박과 이 글이 어디로 가는지, 대체 말이나 되는 글이 나올런지 너무도 아득한 미지의 불안 속에서 글을 썼고, 글쓰기가 너무나 괴로워졌다. 이런 감각으로 이 직업을 해나가야 한다니, 그 자체가 내게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한 공포로 다가왔다. 그러다 다른 석사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이제는 조금은 다른 그곳 학계의 결, 관심사에 맞추는 일과 영어로 쓰는 것까지 합세하여, 글쓰기는 내게 더욱더 숨막히는 것으로 다가왔다. 두려우니 생각이 더 막혔다. 일단은 먼저 생각을 정리하여 아웃라인을 짠 뒤, 글의 경로를 알고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부단히 애도 써보았지만, 나의 연단 부족으로 인해, 그리고 수동적인 핑계를 대보자면 한 줄이 그 다음 줄을 불러오고, 쓰면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글이 쓰여졌던 나의 글쓰기 성햐에 의해, 가뜩이나 치열하고 바쁜 대학원 생활 동안 글을 나오게 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쫓기니, 더 글쓰기가 내게는 나를 옥죄는 것으로서 느껴졌다. 대학생 때, 2학년 2학기를 지나며, 재밌다는 감각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글쓰기의 순간에 점차로 더 깊이 들어가, 브레인스토밍, 마구 초고 써보기, 그리고 다시 쓰고 또 고치고 하며, 주제들에 대해 글을 쓰던, 그 고요한 창작의 순간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던 때가 기억났다. 내가 그랬던 적이 있었던가. 글쓰기가 나의 억압자가 아니던 때가 있었던가. 글쓰기 안에서 내가 자연스럽게 편안히 내 숨을 쉬던 때가 있었던가.
합격을 해야하고, 학문적 성과를 내야하고, 이 길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이 망망대해 위를 살아가며 나라는 인간의 쓸모를 보여주며 나 자신을 책임져 가야 하고. 벌써 이렇게 많은 시절이 지나왔고, 나의 공부로 남도 유익을 볼 수 있는 것들을 생산하며 제공해야 하는데, 그 생산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이리 두렵게도 느껴지는 것이, 내가 역시 재능이 없기 때문인지, 생각했다. 아니면 약간의 재능은 있어 여기까지 왔더라도,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며 이 직업을 하는 것이 나와 내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맞는 일인지, 생각했다. 작은 조각의 글을 쓸 때도 너무나 품이 많이 들고 애가 타, 주위 사람들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애정의 에너지를 남겨두지 못하는 나의 모습.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작품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면서 주위에 나눠줄 온기 하나 남지 않고 다 타버린 나. 그저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은 소진대로 하고, 제대로 글은 완결하지 못하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일의 치유를, 다시 글쓰기로 시작한다. 다시, 글을 쓰고 그 글을 나의 생각이 따라가며, 나를 이해하고 표현하고, 다시 숨을 쉴 그 틈을 열기 위해 내게 그 시간과 공간을 주는 일, 글쓰기. 자신이 가장 쓸모 없게 느껴지는 이 순간에, 쓸모 있음과 없음을 잠시 잊고, 말이 말을 부르고, 기억이 기억을 부르는, 푸념으로 시작하여, 삶의 표면에서 느낀 불만과 애처로움들에서 시작하여 점차 내면의 고요한 곳, 그 깊이 있는 곳에 들어가게 되는 일. 그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