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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MNI Sep 04. 2020

마의 11분


도쿄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클라이언트의 돈으로 다녀오는 출장이라 짧은 비행이었지만 대한항공을 이용했다. 내 돈으로 가는 1박짜리 여행이었다면 난 스스럼없이 LCC를 선택했을 것이다. 확연히 다른 크기의 항공기에 올라타며 '오 안전하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장거리 비행을 해본 적은 없지만 나름 일본도 두어 번, 중국도 한 번, 필리핀도 한 번 다녀왔었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LCC였다. 하늘을 나는 와중에 몸이 붕 뜨는 정도의 경험은 내겐 별일 아니었다. '롤러코스터도 공짜로 타고 좋군'이라며 호기로운 척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2시간 남짓한 비행, 그것도 무려 국적기인 대한항공을 탔을 때 터뷸런스를 겪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안전벨트 사인이 들어왔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기내식을 나눠주던 승무원들이 카트를 잡은 채 통로에 쪼그려 앉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내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가 흘러넘치지 않도록 잡고 있는 것뿐이었다. 결국 테이블 위에 올려둘 수가 없어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있었다. 비행기는 한참을 위아래로 넘실대다 안정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안전벨트 사인은 그대로였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기내식이 천장까지 치솟을 정도로 엉망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뼛속까지 문과라 그런지 뉴턴의 법칙이라든지, 양력이라든지 그런 건 잘 모른다. 그저 몇백 톤이 넘는 항공기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가벼운 수준이었지만 터뷸런스를 겪고 나니 지구에 작용하는 중력의 범위에서 벗어나 수천km를 날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불안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마의 11분'이라는 말을 알게 됐다. 비행할 때 파일럿이 가장 긴장해야 하는 시간. 하늘 위에서 갑작스러운 난기류를 만날 때일까 짐작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륙할 때의 3분과 착륙할 때의 8분을 뜻한다. 이때 항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바퀴가 지면에서 떨어질 때, 그리고 바퀴가 지면에 닿는 찰나. 지면과 허공,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오가는 순간이기 때문일까?


가만 생각해보니 인생도 비슷한 것 같다. 어느 한 공간에, 순간에 머물러 있는 동안 터뷸런스와 같은 역경을 만난다. 당시에는 죽을 것처럼 힘들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괜히 인기 있는 게 아니듯.


우리가 가장 긴장해야 하는 순간은 둥지 밖으로 벗어날 때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황으로 나아가는 그 찰나. 시험을 준비하고 이직을 하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도전이다. 그때마다 넘어지고 다치는 건 그 도전들이 우리의 '마의 11분'이기 때문이다.


파일럿들은 '마의 11분', 그중에서도 이륙 후 3분에 모든 집중력을 쏟는다. 모든 돌발 사태를 염두에 두고 맞는 이륙 후 3분. 그들의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지는 순간. 만약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면, 새로운 세계로의 비행을 앞두고 있다면 파일럿의 '마의 11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는 꽃 노래는 1절로 족하다. 이건 나를 향한 충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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