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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MNI Sep 01. 2023

잡지사에서 일한 적 없지만 에디터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잡지사에서 일해야만 에디터가 될 수 있나요?



나는 에디터다. 비록 잡지사에서 일해본 적은 없지만, 에디터라는 직책으로 일하고 있는.

이게 뭔 소리야? 싶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메이저 잡지사에서 일한 적은 없지만 에디터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에디터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매거진을 만들고 싶다는 회사에 입사해 1년 정도 혼자 일하다 보니 볼륨을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즈음 CEO도, 팀장도 동일한 니즈가 생겼고, 에디터라는 직책으로 채용을 시작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지난 1년간(이라고 썼지만, 기획에만 3개월이 걸렸기에 실제 아티클이 발행된 것은 9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내가 발행한 글을 읽고 지원해 준 인재들이 많았다. 나보다 경력이나 실력 면에서 뛰어난 사람도 있었지만, 매거진 파트는 나 혼자였기에 내 위보다는 아래로 사람을 뽑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으로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을 비롯한 주니어급을 물색했다. 그렇게 입사하게 된 친구가 있다.


전공은 전혀 달랐다. 국문학과도, 문예창작과도 아닌. 다만 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점은 인문학적인 관점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전공과 그가 글에 보이는 열정.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그는 에디터의 업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우리는 그러니까 나는 그가 에디터를 모른다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1. 에디터는 기획자이자 편집자다.

글을 쓰는 건 둘째다. 에디터는 아이템을 소화할 필자가 없을 때 혹은 에디터의 시선이 필요할 때 또는 마감이 촉박할 때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은 내가 짠 기획 안에서만 가능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에디터는 해당 기획을 완벽하게 마무리해 세상에 내보여야 하는 위치니까.


2. 회사는 수익을 목적으로 한다.

개인적인 꿈을 향해 달리는 에디터는 없다. 꿈이 매거진의 번영이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속물적인 이야기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에디터는 월급을 주는 회사의 수익을 위해 콘텐츠를 만들고 발행한다. 내 월급을 스스로 벌어야 하는 건 직장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좋은 수익형 모델은 발행한 콘텐츠의 트래픽이 높아 애드버토리얼 형태의 광고를 다수 제안받고, 그를 통해 콘텐츠의 퀄리티를 높이는 한편 연봉을 벌고 취재비도 메우는 방법이다.

이 점에서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 월급을 벌기는커녕 취재비를 비롯한 여러 항목으로 돈을 쓰고 있다.



이 두 가지가 나와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난 1월에는 미처 하지 못했다. 다년 간의 회사 생활과 에디터 업무를 경험하며 자연스레 체득한 부분이라 다른 이들도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내게는 알고 말고의 부분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의 속내를 듣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어리석었다.


오늘 나와 그가 겪는 괴리감은 혹시 내가 손에 꼽는 메이저 잡지사에서 일을 했었더라면, 그래서 유명한 선배 에디터들을 여럿 알 수 있었더라면 미리 준비해 예방할 수 있던 부분일까? 문득 든 의문은 '그렇다면 잡지사를 다닌 적 없는 에디터의 이야기를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적어도 나 같은 곤란한 상황에 빠진 다른 이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명예를 좇는다면 조금 결이 다른 삶이겠지만, 잡지사에서 일한 적 없어도 에디터가 될 수 있다. 내가 만드는 매거진을 메이저로 만들면 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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