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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Nov 12. 2024

어느 날의 일기: 아리에게



요즘은 아침부터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지하철에서 책을 펼치고 있노라면, 어깨를 짓누르던 무언가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출근길에 보고 들은 것들이 많지는 않다. 내 손에 쥐어진 활자에 더 신경을 쓰다 보니, 오히려 주변을 살피는 일은 줄어들었다. 평소라면 눈에 들어왔을 행인들의 발걸음, 거리의 소음, 계절의 변화가 오늘따라 희미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어제 집 문 앞에 붙여진 서울지방법원의 특별송달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까만 글씨로 빼곡히 적힌 법원 문서는 왜 이리 차갑게 느껴지는지. 집주인과의 연락, 집행관과의 만남 등 예기치 않은 일들이 하루를 채웠다. 시계 바늘은 무심하게도 제 갈 길을 가고, 오후 5시부터는 시간에 쫓기듯 서둘러야 했다.


6시, 아리에게 밥을 주는 시간. 그 시간이면 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 오늘따라 그 모습이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서둘러 나서며 미안한 마음에 등을 한 번 더 쓰다듬어주었다. 7시 전에 나섰는데도 집행관은 벌써 7시 반에 도착해 있었다. 차가운 서류를 받아들고, 발걸음은 자연스레 이마트로 향했다. 와인과 맥주를 카트에 담으며 생각했다. 오늘은 그래도 될 것 같다고, 조금은 무책임해져도.


요즘 나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마치 강박처럼 되뇌인다. 내 나이대에는 이래야 하고, 내 직급에는 저래야 하며, 내 직무는 이래야 하고, 이 회사에서는 저래야 한다고. 틈만 나면 드는 이런 생각들이 때로는 숨을 막히게 한다. 그러다가 문득, 아리에게로 가면 모든 것이 잠잠해진다. 마법처럼.


무덤덤하게 내가 만져주는 대로 있는 강아지가 얼마나 고마운지. 세상의 모든 기대와 책임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내 손길 아래서 평화로운 숨을 내쉬는 아리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진다.


감사해, 아리.


대형견은 10년만 산다는데, 문득 불안해진다. 혹시 나와 좀 더 함께 해줄 수 있어? 그러기 위해 아직 살아있는 거니?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가까이 있으니까, 나도 노력해볼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왜냐면 나는 옹구도구찌도(고양이)를 돌봐야 하거든. 우리 모두가 오래오래 함께였으면 좋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끝없는 역할과 책임 사이에서, 때로는 숨이 막힐 것 같은 순간들. 하지만 그런 공간 속에 네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네가 있어 견딜 수 있어. 네가 있어 돌아갈 집이 있어.


아리, 사랑해.

오늘도 네가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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