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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소리 Feb 13. 2023

삶을 이끄는 가장 명확한 법칙

선택은 가슴이 시킨다

누군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곧 자유라고 말했지만, 실상 우리는 수많은 선택, 특히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서 그 선택권이 주는 무게에 압도 당하고 고뇌한다. 오히려 선택권 없이 단 하나의 길만 주어진다면 인생은 얼마나 명확하고 쉬울까. 다행히도 현명한 인생의 선배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을 내려주셨다. 늘 말하지만 명확하고 옳은 명제는 그 사실이 너무 명백하고 맞는 말이라 이미 수 천번은 들어봐서,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는 듯 들리는 그런 말이다. 그러나 그런 명제는 곱씹어보고 골돌히 생각해보면 머리가 갑자기 트이는듯한 깨달음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 명확한 지침은 그저 가슴이 시키는대로 선택하라는 것이다.


존경 받는 분들의 회고를 들어보면, 가슴이 뭘 어떻게 시킬지는 많은 경우에 어린 시절에 결정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해외에 나와서도 즐겨보는 유퀴즈에 얼마전 세계적인 로봇공학자인 데니스 홍 UCLA 교수님이 나오신 걸 봤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교수님이 자신이 개발했던 획기적인 로봇의 소스코드를 상업화하지 않고 오픈소스로 공개했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자신이 왜 로봇공학자가 되었는지 되돌아봤고 결국 가슴이 시키는대로 그러한 결정을 했노라고 고백하셨다. 더 인상적인 점은 이분은 어린시절 영화관에서 스타워즈 영화를 보고 로봇 오타쿠가 되어 일평생 로봇 연구에 헌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방송을 본 누구나 느꼈듯이 로봇에 대해 얘기하는 그의 눈에서 살벌한 광기가 뿜어졌다. 이런 사례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예컨대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대에 올랐을 때 중학생 시절부터 자신은 늘 영화감독이 될 것이라고 믿어왔다고 언급했다. 그는 가슴이 시키는대로 행동해왔기에 첫 영화의 실패와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음에도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데니스 홍과 봉준호를 언급하며 내 얘기를 하기에 민망하긴 하지만, 나도 중2병에 걸려 경제학을 공부하겠노라 다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암흑기와도 같은 중학교 시절, 단 한가지 잘했던 점이 있다면 학교 도서실에서 꾸준히 책을 빌려봤다는 사실이다. 책이 좋아서가 아니라 수업을 너무 듣기 싫어서 수업시간에 그냥 책을 읽으려고 책을 빌렸다. 아직도 시골 중학교의 도서실에 왜 그런 책이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경제에 관한 우화집을 빌린 적이 있었는데, 우리 사회,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자본주의가 기계와 같이 정교한 메커니즘을 통해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화폐에 관한 우화가 하나 있다. 옛날 외딴 섬나라에 살던 한 소녀는 동일한 모양의 조개들의 더미를 발견하고 물물교환 대신 이 조개를 매개로 물건을 교환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단 사실을 사람들에게 일깨웠다. 그 공로로 섬나라의 재무장관이 된 소녀는 조개가 더 많을수록 사람들이 더 많이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사람들에게 매달 수많은 조개들을 나눠줬다. 하지만 이내 물건 가격들이 급속도로 올라갔고 결국 사람들은 아무것도 교환하지 못하고 경제가 무너졌다. 지금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밀턴 프리드먼의 [화폐수량설]을 아주 쉽게 풀이한 잘 만든 한편의 동화였다. 당시엔 경제교육이고 뭐고 없었고, 인플레이션이란 말조차 듣기 힘든 시절이었기에 경제시스템에 관한 이 우화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볼 때면 온몸에서 하나의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는듯한 전율을 느끼는데, 그 당시 느꼈던 그 전율은 아직도 뇌세포에 각인이 되어있어서, 때때로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면 동기부여가 되곤 한다. 별것도 아닌 우화에서 시작한 경제에 대한 내 관심은 경제 신문기사들을 찾아보는 것으로 이어졌고, 경제학과로 진학하게 만들었으며, 촌놈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끔 부추겼다. 올해 박사학위 취득예정자로 잡마켓에 나온 나는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 섰다. 서울의 한 연구소와 싱가포르의 한 세계적 대학으로부터 잡오퍼를 받은 것이다. 연구소로 가는 것은 학문과는 멀어지지만 소위 말하는 억대 연봉자로 별다른 일이 없다면 60세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선택지였다. 싱가포르의 대학도 물론 좋은 곳이지만, 교수직은 사실상 계약직이고 좋은 논문을 써서 테뉴어를 받기 전까지는 그 어떠한 것도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질 경우 다시 한 번 구직자로서 냉혹한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박사과정 동안 연구로 고생을 많이 했기에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안정적인 길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컸다. 그러나 데니스 홍 교수님의 말처럼 내가 왜 애초에 이 길을 선택했었는지 고민해봤고, 오래전 적막한 시골 중학교 도서실에서 느꼈던 그 전율이 다시 한 번 찾아왔다. 고생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가끔 한국을 방문하여 중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면 간간히 듣는 이야기가 있다.

"넌 결국 니가 말했던 걸 해내는구나."

이런 얘길 들으면 좀 민망하고 창피함마저 느껴진다. 그 오래된 친구들도 잘 알듯이 난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나지도,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학창시절 별달리 두각을 보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가슴이 시키는 것을 5년, 10년 묵묵히, 꾸준히 해온 것. 변두리 시골 학교에서 중2병에 걸려있던 중학생이 미국까지 나와 박사과정을 밟고 교수 임용까지 된 것은 그저 마음 가는대로 무모한 선택을 해왔기에 가능했다. 만약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 주변에 해외 유명 대학의 교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누가 진지하게 받아드릴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내가 이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집안이 좋아서, 돈이 많아서도 아니다. 어떤 선택지 앞에서도 용기 내서 무모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오래전 그 경험과 전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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