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11월부터 미국 박사과정 지원이 시작되어 2월-4월 사이에 결과가 나오니, 슬슬 박사과정 어드미션 결과를 하나둘 받는 시기가 된 것 같다. 지난 2년 간 지도교수님 보직으로 인해 나도 박사과정 학생 선발에 관여를 해왔는데, 내가 지원했던 때와 다르게 날이 갈수록 학생들, 특히 한국 학생들의 역량이 높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박사과정 지원자들의 나이가 평균적으로 늘어난 점도 인상 깊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박사과정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나이가 주는 무게감을 알기에, 그들이 얼마나 고심 끝에 이런 모험을 선택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에 어떤 것들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려한다. 당연히 굉장히 주관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고, 이 글의 내용을 곧이 곧대로 받아드릴 필요는 없다.
나는 인생에서 먹고사니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라고 하더라도, 인간 또한 하나의 동물이고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결정,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정을 내릴 때에는 그것이 내가 먹고사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 최소한 피해를 주는지는 않을지를 우선 판단해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보면, 미국 박사과정 진학은 먹고사니즘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적어도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박사과정을 졸업한 후에는 보통 몇 가지 길들이 앞에 놓인다. 첫째로, 많은 학생들이 학계로 진출하게 된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한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의 대학 조교수직에 지원할 수 있게 되는데, 전반적으로 대우가 좋다고 생각한다. 분야마다 상이하겠지만, 북미에서는 대체로 초봉으로 12만-18만 달러 정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이고, 비지니스스쿨의 경우 20만 달러 이상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미 지역의 월세 수준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연봉이라 하긴 힘들지만 그렇다고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유럽이나 아시아의 경우, 북미의 70%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홍콩이나 싱가폴 대학의 경우 예외적으로 미국과 비슷한, 혹은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
둘째로, 산업계, 소위 인더스트리에서 직장을 구하는 경우도 많다. 흔히 착각하는 점 중 하나가 우리가 잘 아는 구글, 아마존, 마소와 같은 IT대기업들이 컴퓨터공학 계열 박사만 뽑는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의외로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언어학 등 매우 다양한 계열의 박사를 뽑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여기서 직장을 잡기도 어렵지 않다. 경영학, 경제학의 경우 McKinsey, Analysis Group, Keystone 같은 컨설팅펌에서도 채용을 많이 한다. 특히나 이들 기업들은 채용심사에 졸업논문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졸업 전 방학 때 인턴으로 우선 채용한 후 리턴 오퍼를 주거나, 코딩 테스트 등 별도의 심사과정을 거친다. 올해 채용된 친구들을 보면 대체로 25만 달러 이상의 초봉에 계약했다. 학계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받는 만큼 선호도도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더스트리에서 직장을 구할 경우 단점은 해고당할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들은 영주권을 얻기 전 해고를 당할 경우, 일정 기간 내에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신분에 문제가 발생해 강제로 귀국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싱크탱크에서 직장을 구하기도 한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브루킹스연구소, NBER, 피터슨연구소, 후버연구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대체로 워싱턴 DC나 큰 도시에 위치해있어 근무환경이 나쁘지 않고, 미국 대학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준다. 한국에서도 많은 연구기관들이 미국 박사과정 졸업예정자들을 채용한다. 특히 경제학의 경우, KDI, 금융연구원, 조세재정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등 약 10여 개 이상의 연구소가 매년 20-30명 이상의 경제학 박사들을 채용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직장을 잡기는 어렵지 않다. 연봉은 천차만별이라 현재 연구소에 따라 7천만원-1억 5천만원의 초봉을 제공한다. 몇몇 연구소들은 사택을 제공하거나, 정착지원금을 별도로 제공하는 등 한국의 일반적인 직장보다는 훨씬 더 나은 대우를 해준다. 경제학만 이런 것은 아니다. ETRI, 기계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등 공학계열 정출연들이 좋은 직장이라는 건 너무 유명하다. 한국의 전반적인 삶의 질이 올라가고 연구소들의 대우도 많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해외보다 한국에서 직장을 잡으려는 박사 유학생의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박사과정 중에는 내가 도대체 졸업을 할 수 있을지, 혹은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을지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잡마켓에 나와보니 의외로 많은 곳들에서 좋은 대우를 해서 채용하려 노력하고 지원자들을 열심히 배려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경제학 용어를 빌리자면, 박사과정생의 잡마켓은 노동공급자 우위 시장이라는 뜻이다. 이 글은 돈벌이가 나쁘지 않으니 박사과정을 하라고 부추기는 글이 아니다. 이미 다른 목적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꿈꾸거나 이미 박사과정생이라면 돈벌이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좋은 기회가 있다는 건 졸업을 할 수 있을 때를 전제한 이야기이다. 분량상 박사과정 졸업 이후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에 대해 또 글을 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