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인맥
20대 후반까지도 인생에 관해 크게 오해하고 있던 사실이 있다. 나만 열심히 하면 혼자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착각. 마치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인양 혼자서 걸어왔다. 박사과정 유학을 하며 자연스레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교수님들이 10가지의 다른 프로젝트들을 어떻게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지 목격하면서 서로 돕고 공동으로 무언가를 할 때 훨씬 더 큰 성취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영화 [대부]의 주인공 돈 꼴리오네는 뉴욕 빈민가의 이민 노동자로 시작했지만 누군가를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함에 따라 미국 마피아계의 황제로 성장할 수 있었다.
Give and take.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과정은 마치 레버리지를 활용하여 자산을 불려나가는 과정과 같다. 나는 이러한 사람을 활용한 레버리지 시스템을 통칭하여 인맥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맥이라는 말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반도덕적이고 위법한 행위가 이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맥은 부정의 수단으로서 활용되었을 뿐, 인맥이 곧 부정한 성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을 위해 협력하거나, 사람을 고용하는 것도 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시작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박사과정 유학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내가 겪은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유능한 집단이었다. 유학을 가서 처음 만나게 되는 동기(cohort)들은 여러 나라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던 사람들이자, 무궁무진한 잠재성을 가진 인재들이었다. 나 하나는 그저 평범한 학자나 직장인이 될 지언정 축적된 데이터에 비추어 볼 때 코호트 내에 적어도 한 명은 세계적인 인재로 성장하게 될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과 경쟁을 해본다는 것, 같이 일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내 인생에 더 없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 학부 시절 한 교수님께서 자신의 동기가 아니었다면 본인은 교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대학원 시절부터 줄곧 그 친구와 공동연구를 해오셨고 그친구분은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했기에 결코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졸업을 하는 시점이 되니 정말로 친구들 중 누군가는 세계적인 대학에서 교수직을 시작하거나 세계적인 IT기업과 투자은행의 이코노미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이기에 그들은 향후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내가 돈 꼴리오네처럼 사업을 하든, 한국의 그 교수님처럼 학자로 성장하든 이 친구들의 존재는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다 못해 그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그곳에 반겨줄 사람이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지 않나. 물론 나 또한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k-드라마의 영향으로 여름에 한국으로 휴가를 오겠다는 친구들이 이미 여럿이다.
유학을 와서 만난 교수님들은 내게 더 넓고 높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겉보기엔 후줄근한 등산복 차림으로 연구실만 왔다갔다하는 아저씨, 아줌마들이었지만, 연방준비은행 총재,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등을 거친 일평생 마주친 사람들 중 가장 유능한 분들이셨다. 중요한 사실은 이분들이 아주 바쁘신 분들이기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반드시 대학원생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세계적 학자들을 도와 공동연구를 진행해본 경험은 한 단계 더 레벨업하는 데에 가장 큰 자양분이 된다. 소위 RPG 게임에서 짤을 받는 것과 유사하다. 박사과정에서 배운 7할은 이분들과의 연구를 통해 어깨 넘어로 배운 것들이다. 내가 잘 성장한다면 졸업 후에도 계속해서 공동연구를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더해 내가 직장을 구하는 데에도 이분들께 가장 큰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빠른 자산 증식에도 레버리지가 필수불가결하듯이 내 인적자산의 증식에는 유능한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박사과정에서 만난 그 유능한 사람들은 내게 기꺼이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 왜냐하면 나도 그들을 도울 수 있고 따라서 나의 성장이 그들의 성장에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지나고보니 박사과정 유학은 다른 곳에서 아무리 발벗고 뛰어도 만들기 힘든 인맥을 공짜로 손에 쥐어 준 기회의 보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