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이 Mar 19. 2024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stressful한 현대 사회 

#20240319 #밑빠진독 #물붓기 #생각하지않는 #현대사회


 요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스도쿠나 하고. 스타듀밸리를 해봤는데 재미가 없었다. 드라마 <더 글로리>를 이제야 봤다. 이런 걸 구상한 사람이나 연기한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건지, 나는 뭔가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내 마음을 매일같이 날카롭게 들여다보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생활이 늘어지는 만큼 마음의 눈이 뭉개져서 흐리멍덩하게 보이는 듯하다. 그만큼 다른 사람을 위하지도 못하고, 당장에 내 몸과 마음이 편한 것만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편해지고자 했는데도 더 괴로워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봐야 할 것 같은 책, 드라마, 영화의 목록은 쌓여만 가고 줄어들지 않는다. 해야 할 일들도 억지로 꾸역꾸역 하고 있다. 시간은 흘러만 가고, 나이도 나이대로 먹고 있는데,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이렇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게 맞나? 일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잘 키우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의무일 뿐이라고 배웠는데, 그럼 나는 이 의무 말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절 월간지에서 밑 빠진 독에 관한 글을 읽었다. 밑 빠진 독을 물속에 던지면 독에서 물이 넘치듯이, 부처님 가르침에 나를 푹 담그면 어떠한 외부의 풍파에도 흔들림이 없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읽다 보니,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지거나 마음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집만 부리고 마음도 좁게 쓰는 나 자신이 떠올랐고, ‘이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런 확신을 가진 글쓴이가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뭔가 제대로 마음을 잡고 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도 않고, 허무하고.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는 것 같지 않고, 이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게 아니고 뭔지? 한 생 살면서 오히려 구멍만 더 넓히고 가는 게 아닐지.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처럼* 독을 물에 풍덩! 빠트리는 게 부처님 법안에서 사는 것이라는데, 나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지? 


‘밑 빠진 독에 물을 가장 빨리 채우는 방법’은 ‘밑 빠진 독을 물에 던지면 된다.’


 적어도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원하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하는 게 아니라, 절제할 줄 아는 삶. 전오식(前五識;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끼는 대로)과 육식(六識; 반응하는 대로)의 삶이 아닌 칠식(七識; 생각하고 고찰하는, 이성적인) 이상의 삶. 인간으로 태어난 건 생(生)과 사(死)를 넘어 윤회하는 동안 나만을 위해서 살아왔으니까, 이번에는 나만을 위하지 말고 상대를 위해서도 살아보라는 기회일 텐데. (그래서 일심이문(一心二門)인가?) 몸이 원하는 대로 하는 건 전생(前生)에 동물이었을 때 이미 다 했을 텐데, 나는 아직도 그 습(習)이 남아있는 건지 자꾸만 게을러지려고 하고 머리도 멍청해지는 거 같다. 


 내가 부디 인간으로 태어난 의미를 잘 누리고 갔으면 좋겠다. 브런치에 눈먼 거북이 얘기를 수차례나 썼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것은 머리로만 알고 실천이 없기 때문이요, 마음에 와닿지도 않고, 믿음도 없기 때문이리라... 



 p.s. 

 세상에는 시선을 빼앗고, 귀를 간지럽히고, 혀도 유혹하고. 오감에 자극적인 것들이 가득하다. 내가 그런 것들에 휘둘린다. 나만 그런가? 점점 동물처럼 되어가는 것 같다. 생각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것이다. 능동적인 과정이다. 오감을 충족시키는 건 수동적인 과정이고, 더 쉬우니까 그쪽으로 자꾸 흘러간다. 근데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쪽으로 흘러가는 거 같다. 그 와중에 ‘사람’같이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점점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는 것 같다. 


 개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스트레스가 만연한 사회의 문제일까?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이 꿈, 허깨비, 거품, 그림자 같다고 하셨는데(如夢幻泡影), 우리는 그 속에서도 더 허구 세계인 드라마나 영화, 소설 같은 곳으로 피하고 있으니. 이 세상이 힘들면 여기를 벗어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괴로워하면서 더 허구 세상으로 피하다니? 부처님께서는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고 하셨는데. 불타는 집 안에서 덜 뜨거운 곳을 찾아봤자 불타는 집이다. 이 집을 벗어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듯하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이 관계도 잘 맺으려고 하지 않고, 결혼도, 육아도 하지 않으려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상황에서는 새로운 내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그걸 견딜 에너지가 없으니 아예 그런 상황을 피해버리는 건 아닐지?      



* [달마야놀자] 밑빠진 독에 물 채우기 대결!, 

 https://www.youtube.com/watch?v=z175yYlQq48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 차 뒤따라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