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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Feb 08. 2024

아빠 차 뒤따라가기

윤회(輪廻)와 인연(因緣), 애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셔. 

#20240208 #윤회 #인연 #부모


 J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골에 가보기로 했다. 돌아올 때 바로 신혼집으로 가기 위해 기차가 아닌 차를 몰고 갔다. 아버지와는 중간에 모 휴게소에서 보자고 했지만, 가다 보니 아버지 차 뒤에서 따라가게 되었다. 


#1 전에도 도로 위에서 아는 사람의 차와 마주치는 것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도 윤회와 인연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오늘도 그 생각이 떠올랐다. 차도가 윤회의 길이라고 한다면, 차는 육체요, 운전자는 영혼이라. 인(因)을 지어놓으면 그게 선인(善因)이든 악인(惡因)이든 연(緣)이 닿는 한 계속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인연생기(因緣生起); 연기법(緣起法). 육체(뇌)가 바뀌어서 기억하지 못해도 영혼에 함장(含藏)된 인(因)이 있다면 연(緣)이 닿았을 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기억은 못 해도 그런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니 잘해주는 수밖에 없다. 악연(惡緣)이라면 악인(惡因)이 있다는 건데, 지금 나를 힘들게 한다고 나도 상대방을 힘들게 하면 서로 악인으로 인한 악연만 계속 주고받는 셈이다. 끝없이 윤회하는 동안 계속 서로의 발목을 붙잡고 망치고 괴로운 것이다. 어느 하나가 고집을 꺾어야 끝이 날 텐데, 상대에게 바랄 수는 없으니 내가 꺾어야지, 뭐. 세상에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하나밖에 없으니까. 선연이라면 다시 선연이 되도록 선인(善因)을 심어야지. 결국 선연이든 악연이든 잘해주는 수밖에 없다. 


 계속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줘서 선연으로만 가득 찬 윤회를 한다 치자. 그럼에도 괴로울 수밖에 없다. 윤회한다는 것 자체가 나고 죽음을 반복한다는 것이니까. 나고 죽고 몸이 있어서 오는 괴로움(生老病死, 五陰盛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愛別離苦) 싫은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 구하고자 하나 구하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은 계속되는 것이다. 즉, 시·공간 속에서 나도 우주도 변하기 때문에 오는 괴로움을 피할 수 없다(諸行無常·諸法無我).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이 우주를, 윤회를 벗어나 해탈하라고 하신 거다(涅槃寂靜). 


 모르는 차들이었다면 앞에 오든 뒤에 오든 신경도 안 썼겠지만, 아버지의 차는 눈에 참 잘 띄었다. 그래서 집에서 출발할 때는 중간에 모 휴게소에서 보자고 했지만, 결국은 아버지 차가 앞서고, 내가 뒤서는 식으로 가게 되었다. 때로는 내가 앞서기도 하고, 다시 뒤서기도 했다. 100km/h 구간단속 구간에서 내가 앞서고 있었는데, 어느새 아버지 차가 내 옆을 지나쳐서는 나를 앞지르기도 했다. 인연(因緣)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조금 떨어졌다가도 결국은 다시 만나서 부대낄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고. 그리고 인(因)이 지어져 있으면(이번에는 부모·자식 관계라는 인) 특히나 더 유심히 지켜보게 되는 것이. 


#2 아버지 차의 뒤에서 따라가려니, 아버지가 어떻게 운전하시는지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평소에는 다른 차들이 어떻게 가는지 신경도 안 썼는데, ‘내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거니까 더 유심히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떨 때는 조금 치우쳐서 가시기도 하고, 빨리 가실 때도 있고, 느리게 가실 때도 있었다. 부모의 발자취를 보고 자식들이 따라가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그리고 나도 내 자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부모가 되면 좋겠다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좀 더 열심히 마음을 갈고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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