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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Feb 06. 2024

세차를 하며

드러나는 대로 닦으면 되는 것을

#20240206 #세차 #아상


 짜증과 화만 더해가는 나날들이다. 며칠 전에는 내 물건을 빨리 계산해주지 않는다고 종업원에게 화를 냈다. 운전할 때도 화가 잘 난다. 그래서 경적 울리지 않기 계율은 계속 진행 중이다.


 나만 빼고 다 착한 거 같다. 금요일에 한복 보러 가기로 하니 곧바로 운전 연수 일정을 바꾸는 어머님도, 선뜻 엄마를 모시러 가겠다는 J도, 내 짜증에 잘못한 걸 찾아서 J에게 사과하는 엄마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이것들은 내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일 텐데, 금생(今生)에 축적된 것인지, 전생(前生)부터 쌓아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치워야 함에는 틀림이 없다. 뭔지는 몰라도 걸리는 게 있으니 튀어나오는 것일 테고, 그만큼 내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쑥 올라왔을 때 탁 놓을 수 있다면 참 편할 텐데, 그러지도 못한다. 여태 그렇게 살아온 습관 때문이리라. '내 생각', '내 경험', '내 느낌'. 정작 파고들면 언제 어디서부터 기인한지도 모를 이것들을 불교에서는 아상(我相)이라고 하는 걸까.




 세차를 하게 되었다. 그동안 비, 눈 등의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새똥을 맞는 바람에 더 미룰 수가 없었다. 근무지 근처에 세차장을 찾고, 무작정 떠났다.


 세차하러 가는 동안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이것을 놓으면 편할 텐데 왜 붙잡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놓을 수 있는지. 나는 다른 식으로는 안 해봤기 때문에 불안해서 그런 게 아니냐고 했고, 아버지께서는 인욕(忍辱) 하는 힘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침에 시간 맞춰서 일어나서 냉수욕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목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해서 미루고 있었다. 아버지는 단숨에 그렇게 하려면 어렵고, 가능한 시간부터 하면서 조금씩 시간을 앞으로 당겨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나도 수긍했다.


 통화를 하다 보니 세차장에 들어섰다. 하단 세차까지 하려면 12,000원부터여서 그걸 했다. 물을 뿌리고, 거품을 뿌리고, 다시 물을 뿌리고, 말리고. 지우려고 했던 새똥은 깔끔하게 지워졌다! 밖으로 나가서 수건으로 남은 물기를 닦아냈다.


 다른 차들을 보니 문을 다 열고 구석구석 뭔가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일단 차 문을 열고 보니 문과 문틈에도 먼지가 많이 있었다. 이건 세차해서 깨끗해지는 부분이 아니었다. 수건을 든 김에 거기도 닦아냈다. 트렁크 틈도 닦고, 사이드미러도 닦아주고. 어느 차는 보닛도 열어서 안쪽을 보던데, 나도 열었다가 물기 닦는 수건으로 먼지를 닦아내기에는 양심에 찔려서 말았다.


 먼지를 닦아내는데 순서는 필요하지 않았다. 어디든 손 닿는 대로 시작하면 되는 것을. 마찬가지로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드러난 대로 내려놓으면 될 것을.


 다 닦고 나니 오랜만에 차가 반짝반짝해졌다. 밖이라도 깔끔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안쪽은 언제 하나 싶지만, 언젠가는 하겠지, 뭐.

반짝반짝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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