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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an 31. 2024

죽음을 결심한 이에게

불교와의 인연, 불능도무연중생(不能度無緣衆生)

#20240131 #윤회 #인과응보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환자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다 가는 길인데 자기는 조금만 더 일찍 가는 것일 뿐이라고 하기에, 나는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었고, 환자는 죽으면 고요하고 평온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나중에 핸드폰으로 근사체험, 임사(臨死)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종교가 없다기에 나는 불교 신자이고, 아는 대로 떠들어보겠다고 했다. 이번 생에 이렇게 죽는다면, 이번 생에 이 친구가 불교에 관해서 더 얘기를 들을 일도 없을 것이고, 이렇게라도 인연을 지어놓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불교와는 상관없는 윤회를 계속하게 될 것 같은, 나름 절박한 심정이었다. 




 윤회, 해탈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환자가 생각하는 죽음(고요함, 평온함)은 불교에서의 해탈을 말하고, 중생이 죽는다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해탈은 쉽게 말하자면 이 우주를 벗어나는 것인데, 이 우주를 벗어나기 전에는 우주 자체도 다른 모든 것들처럼 생겨나서 없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에(成住壞空), 그 안에 있는 것들은 덩달아서 나고 없어질 수밖에 없음을 설명했다(興亡盛衰, 生老病死, 生住異滅).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계속해서 나고 죽음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나도 죽어보지 않아서 어떤지 모르지만, 죽고 나면 생전에 마음 쓴 것들이 다 적혀있어서 그것에 따라서 이후의 삶이 결정된다고 했다. 비슷한 인식을 가진 존재들끼리 모이게 된다고 했다. 천국이 달리 천국인 게 아니라, 자기보다 남을 위하고 배려하는 존재들끼리 모인 곳을 천국이라고 할 뿐이고, 자신만을 위하고 남을 속이고 비방하고 죽이는 존재들이 모이면 지옥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삶도 끝이 있어서, 어느 정도 살고 나면 다시 윤회한다고 설명했다. (생기론(生氣論)과 기계론(機械論)을 얘기했지만, 영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서 설명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영혼이라고 했으면 이해하기가 더 쉬웠을까?) 


 불교는 쉽게 말하면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설명했다. 언제 어떻게 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씨앗(因)을 심어놓았고, 그게 조건(緣)이 닿아서 지금의 우리 모습이 된 거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미래는 지금의 내가 어떻게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자신만을 위하는 선택이 아니라, 남을 위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면 (다시 태어나면 어차피 또 기억 못 하겠지만) 나중에는 좋은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윤회를 믿지 않으면 다 소용이 없는 일이다. 환자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도 자신은 죽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혼하신 부모님이 각자 만나시는 분이 있는데, 아버지가 재혼하시면 다른 자식들이 생기고, 그럼 자기는 부모님의 유일한 자식이 아니라서 죽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이 말에서, 환자의 죽고 싶다는 표현이 얼마나 무게감 있는 말이었을지 고민했다. 




 무연중생 구제불능(無緣衆生 救濟不能; 불능도무연중생不能度無緣衆生)이라고 했던가. 부처님과의 인연이 닿지 않으면, 깨달으려야 깨달을 수 없다는 말이다. 환자가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어!’ 하고 선을 긋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이가 장난으로 모래로 절을 짓고 탑을 세워도 그 인연으로 (언젠가는) 성불(成佛)한다고 했으니*, 부디 이 친구도 이 인연으로 언젠가는 끝끝내 성불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묘법연화경』 1(ABC, K0116 v9, p.733a07-a09)

목밀(木櫁)이며 다른 재목이나 (木櫁幷餘材)

기와 벽돌 진흙으로 (塼瓦泥土等)

넓고 거친 들 가운데 (若於曠野中)

흙을 모아 절 지으며 (積土成佛廟)

어린애들 장난으로 (乃至童子戲)

흙모래로 탑을 세운 (聚沙爲佛塔)

이러한 사람들도 (如是諸人等)

모두 이미 성불했고 (皆已成佛道)

https://kabc.dongguk.edu/viewer/view?dataId=ABC_IT_K0116_T_001&imgId=009_0733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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