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의 잘못된 이해, 무기공(無記空)
#20240123 #미션 #무기(無記) #무기공
언젠가 절에서 젊은이들끼리 MT를 다녀온 적이 있다. 어쩌다 보니 나는 한 팀의 팀장을 맡았고, 얼떨떨하고 걱정이 되면서도 ‘한 번 해보지, 뭐.’ 했던 기억이 있다. 강원도 쪽으로의 여행이었는데, 팀원들과 즐겁게 노는 와중에 불교에 대해 생각해보는 미션도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일정 금액(아마 5만 원) 내에서 돈을 쓰고, 거스름돈을 제일 적게 남기는 팀이 이기는 미션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미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마음 편히 놀러 온 건데 미션 같은 거에 연연해서야 되겠냐는 생각이었다. 팀원 중 한 명이 ‘분명 다른 조들은 거스름돈을 아주 적게 남겨오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거’라고 했지만, 나는 거기에 매이고 싶지 않았고, 매이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스름돈은 잊고, 편하게 쓰자고 팀원들을 설득했다. 미션이 끝나고 결과를 보니, 역시나 우리 팀 거스름돈이 제일 많이 남았다. ‘우리는 마음 편히 돈을 썼으니까’ 하고 애써 팀원들을 다독였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안다. 그 미션에 있어서 나의 태도는 틀렸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을 잘못 이해하고 팀원들을 잘못 이끌었다. 이 세상 모든 게 공(空)하다고 해서 모든 게 헛되고 의미가 없는 게 아닌데, ‘이거 해서 뭐해?’ 하고 제대로 부딪히지 않았다. 제대로 공(空)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주어졌을 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고,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과도 경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미련이 없을 것이다. 근데 나는 고고한 척하며 한 발자국 뒤로 떨어져서는, ‘뭐하러 저런 거로 아등바등하나?’ 하며 열심히 임하는 다른 팀원들을 한심하게 봤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한심한 건 ‘아무 의미 없다’라는 생각에 갇힌 나였는데.
나의 이런 태도는 내가 앞접시에 적게 묻히고 먹으려는 것과 같다.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깨닫지 못하면 알 수 없다. 그런 태도를 깨달으라고 주신 미션일 텐데, 그때와 행동이 달라진 것도 없고, 심지어 여태 마음에 담아두고 기억하고 있다니! 갈 길이 멀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부딪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