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거대한 트루먼쇼?
#20221021 #삶의이유 #존재의의미
오늘 아침에야 글이 처음 생각했던 주제가 아닌 다른 주제로 흘러갔구나 싶었다.
[런닝맨]에서 출연진들이 미션 수행하는 걸 보면서 무용(無用)이라 느끼는 건 내 탓이다. 출연진들이나 스텝들의 노고가 무용이라고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는 자신들의 일을 열심히 할 뿐이고, 내가 무채색에 가까운 감정을 지녔기에 그걸 잘 느끼지 못할 뿐이다.
[런닝맨] 안에서 출연진들은 PD가 주는 미션을 열심히 수행한다. 누구보다 많이, 누구보다 빠르게 미션을 수행해서 우승하는 게 목표다. 그게 무슨 의미를 갖는지는 따질 수 없다. 그냥 주어졌으니 하는 거다. 사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따지면 미션에 집중할 수 없고, 우승할 확률도 더 떨어질 거다.
사는 것도 비슷한 게 아닐까? 왜 사는지에 대한 대답을 모두가 충분히 이해하도록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종교가 그에 대한 대답을 주긴 하지만,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대화의 희열 2] 유시민 편에서 삶의 의미에 관한 얘기를 했는데, 출연진 중 하나가 ‘질문의 답을 잘 못 찾을 때 어쩌면 질문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라며, ‘인생의 의미가 뭘까?’가 아니라,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가 옳은 질문인 것 같다고 했다. 정답(正答)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각자 다른 답을 갖고 있는 거다. 자기가 붙인 의미가 맞을 거라고, 자신에게는 그게 중요하다고 믿으면서.
대지도론 제15권*, 불설전유경(佛說箭喩經)** 등에는 독화살 비유가 나온다. 어떤 제자가 답을 쉽게 내릴 수 없는 여러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을 갖고 부처님을 찾아가 이에 대한 답을 내려주지 않으면 다른 도를 찾아 떠나겠다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독화살을 맞은 사람은 당장 화살을 뽑는 것이 중요하지,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누가 날렸는지 등을 알아야 뽑겠다면 답을 다 구하지도 못하고 죽을 텐데, 당신이 지금 이와 같다고 하셨다. 중생의 인식으로는 알 수 없는 질문들에 답을 얻은들, 이해하지도 못할 거고 생사(生死)를 헤매며 고통받는 것은 마찬가지인지라.
그래. 어쨌거나 우리는 태어났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태어났으니 살아야 한다. 이왕 사는 거, 괴롭지 않게 살아야 한다. [런닝맨]의 시작과 끝을 삶의 시작과 끝이라고 한다면, PD가 주는 미션은 ‘괴롭지 않게 살기’이고, 그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서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돈, 요컨대 더 많은 자유를 누리려고 하는 걸까? PD가 정한 규칙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도 어떤 법칙이 있어서 우리도 모르게 적용되고 있고, 그래서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결국 완전히 자유로워지려면 이 판을 깨고 나와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 https://abc.dongguk.edu/ebti/c2/sub2_pop_ls.jsp, 586~8p
** https://kabc.dongguk.edu/content/pop_heje?dataId=ABC_IT_K0698&wordHL=%EB%8F%85%ED%99%94%EC%82%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