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면 뭐가 남나
#20221019 #삶의의미 #존재의이유
저녁을 먹는데 TV에서 런닝맨이 나왔다. 남산에서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고, “남산에서 제일 유명한 게 뭐요?”라고 물어서 ‘남산 돈가스’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물으러 다니는 미션이었다. 다른 대답(ex. 자물쇠, 남산타워)이 나오면 그걸 찍으러 가야 했다. 만보기 숫자도 나오는 걸 보니, 몇 걸음 이내에 ‘남산 돈가스’ 대답을 들어야 했나 보다.
‘저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이래서 내가 드라마나 예능을 못 보나 보다. 무슨 의미가 있지? 문득 낮에 환자들과 한 대화가 떠올랐다. 세상만사 다 의미 없다길래, 그렇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다 의미 없다. 다 죽을 거고 다 없어질 건데 무슨 소용이람?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다. 근데 요새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의미를 찾았나? 아니면 그런 생각하기에 지친 걸까?
수련받을 때, 자해하거나 우울해서 입원한 친구들; 특히 중, 고등학생들을 면담하다 보면 비슷한 얘기를 했더랬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딱히 답은 없고, 또 비슷한 생각을 하기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는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내거나 주제를 돌렸던 기억이 있다. ‘왜 벌써 그런 질문에 다다랐을까?’ 어쩌면 좀 더 나중에, 아니면 평생 그런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이 친구는 벌써부터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에 안타까이 여기기도 했다.
이번에 면담했던 환자 중 하나는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자살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하나님께서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했으니까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자살하진 않겠지. 불교 얘기도 해주었다. “불교는 죽으면 어차피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죽어도 소용이 없다. 다만 무언가를 했던 마음만은 남기에, 오늘 이렇게 면담한 것도 당신이 뭔가를 얻어간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의미가 있다.”
쇼미더머니 10 세미파이널에서 머드 더 스튜던트(Mudd the student)가 부른 <불협화음>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우리는 똑같이 쓸모없고, 세상은 뭣같이 아름답지.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다 했어. 거짓말 치지 마 재수 없어 당신. (당신)
맞다. 우리는 똑같이 쓸모없다. 세상사 다 무슨 의미가 있어서 그렇게 아등바등한단 말인가?
근데, 모든 게 변하고 영원한 것이 없어서 의미가 없다는 건 공(空)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하고 영원하지 않으니 애착·집착하지 말고 매이지 말라는 것이지, 모든 게 다 의미가 없고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무소유’랍시고 돈도, 건물도, 직업도, 권력도 안 갖는 게 아니라, 그런 걸 가질 수 있으면 다 갖되, 가지려고 집착하거나 매달리지 않는 거다. 정당하게 최선을 다한 결과라면, 연이 닿았다면 가져야지, 아니라고 거절하는 것도 거기에 여전히 매여있음이라. 중요한 건 갖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쓰느냐이다.
그럼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어쨌건 우리는 태어났다. 불교적으로는 업(業) 때문에 윤회하느라 태어난다고 보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부모님의 노력으로 태어났다. 이유도 모른 채 이 세상에 던져졌다. 세상은 원래 차별이 있는 곳이라, 돈, 학력, 지위, 권력, 직업 등 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괴로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괴로운 곳에 있으면 괴롭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덜 괴롭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덜 괴롭다. 우리가 하는 행동들은 괴롭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다. 밥을 먹는 것도 배고프지 않기 위함이고, 잠을 자는 것도 피곤하지 않기 위함이고, 옷을 입고 벗는 것도 춥거나 덥지 않기 위함이다. 그뿐이랴. 돈을 버는 것도 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좋은 직업을 가지려는 것도 자기가 원하는 것(돈 or 시간 or 자유 etc)을 얻기 위함이다.
돈이, 직업이, 권력이, 다 무슨 소용인가? 이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함이다. 죽으면 갖고 갈 수도 없다. 죽고 나면 아무것도 안 남는데 그럼 대체 뭐가 남냐? 글을 쓰는 지금의 내 인식으로는 ‘마음’이 남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는 각자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다. 그 생각과 마음이 남아서 업(業)이라는 이름으로 어딘가에 저장되는 게 아닐까?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좋은 마음,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내서 행동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어쨌든 나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어떻게든 덜 괴로웠으면 좋겠다. 그게 자신을 좀 더 잘 알고 받아들이게 되어서 남이 뭐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 자아를 단단하게 하는 과정이든, 주변 환경이 잘 정리되어서 좀 더 편안하게 되든 말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해결 방법은 결국 자신이 바뀌느냐(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환경이 바뀌느냐 둘 중 하나니까. 환자들이 마음 편히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