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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Oct 03. 2022

17. 정밀신검

(아)상에 매이지 않는 것

#20221003 #정밀신검 #군대 #(아)상


 훈련소에 신병이 들어오면, 군대 자체적으로 정밀신검을 한 번 더 한다.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들어오지만, 그때 미처 걸러지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서 다시 거르는 것이다. 군대는 누구에게나 새로운 환경이고 스트레스이기에, 아무리 각오하고 온다고 해도 놀랄 수 있다.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면담하고, 설득해서 집에 보내거나, 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일의 일부다. 힘들어서 집에 가겠다는 친구들은 그냥 보내면 되지만, 군대 생활에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친구들이 남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걱정되기도 한다. 


 오늘도 그런 정밀신검을 하는 날이었는데, 한 친구가 기억에 남았다. 20대 초반이었는데, 입대하고 나니 불안해서 군대에 더 못 있겠다고 해서 신검을 받으러 왔단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군대에 들어왔는데(“다른 친구들은 20살, 21살인데...”), 히키코모리로 2년 동안 보내면서 맘껏 논 것도 아니고, 세월만 허비했다는 생각에,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힘들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지금은 내 말이 이해되진 않겠지만 나중에는 이해할 거라고, 이해하는 데에 시간과 경험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의대, 의전원을 얘기하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공부하러 온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는 유별나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많이 왈가왈부하지만, 유튜브의 독특한 경험 등이 조회 수가 많이 나오기도 하고, 또 그렇게 드러나지 않아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내가 비교할 건 어제의 나일 뿐이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 힘들 거라고 했다. 어느 방향으로든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자 이 친구가 질문했다. “고점을 찍었다가 떨어진 사람과 원래 우울했던 사람 중에 누가 더 힘든가요?” 나는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고, 둘 다 힘들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불교 신자인데,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다 변하니 어느 것에도 매이지 말라고 배웠다고 했다. 고점이었다는 상(相)에 매여있으면 현실과의 괴리 때문에 괴로울 것이고, 원래 우울한 사람도 우울하다는 상에 매여있으면 괴로울 것이라고 했다. 근데 거꾸로 생각하면, 정점이었던 사람도 우울했던 사람도 상에 매이지 않으면 힘들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변하니, 힘들었던 상황도 분명 변한다고 했다. (물론 좋았던 상황도 영원할 수 없고 변하지만) 나도 변하니까 더 나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잘 찾길 바란다고 했다. 먼 훗날에 지금 힘든 이 모습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 하고 웃어넘길 수 있다면, 그 나름대로 통쾌하고 스스로가 기특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리고 그건 내 바람이기도 했다. 환자 중에 유독 그렇게 정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든 괴롭지 않고자 발버둥 치지만 잘되지 않는 사람들. 변하려고 노력하지만 잘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내가 봐도 안타깝고 기특해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진다. 이 친구도 자신의 길을 찾아서 어디서든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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