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이 Sep 18. 2022

16. 세월과 아버지

세월의 무상함, 끝없는 반복 

#20220827 #아버지 #세월 #불교 


 J와 얘기하다 보니 아버지 얘기가 나왔다. 내가 결혼을 조급하게 생각하는 것도, 형이 결혼한 나이와 아버지의 연세 때문인 거 같다. 아버지께서 44살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별로 시간이 남지 않았다. 아버지 연세가 올해 65이시다. (병원에서 이 나잇대의 어르신을 보면 ‘어르신’이나 ‘아버님/어머님’이라고 불렀는데)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드셨지? 나는 벌써 서른이고... 그래서 마음이 급하다. 


  그리고 자연의 큰 흐름이랄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속절없이 흘러가는 게 무섭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던 것처럼, 내 아이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진 않을지 걱정도 된다.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는데. 만약 가시게 되더라도, 아픈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마지막까지 정신이 온전하셨으면 좋겠다. 어머니께선 할머니께서 ‘영 드시지 못해 콧줄을 꽂으셨을 때 이미 돌아가셨다고 받아들였다’라고 하셨는데, 아버지랑 어머니랑 받아들이시는 게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더 오래 보셨잖아. 그런 걸 보면 사위가 장인어른/장모님 돌아가셨을 때나, 며느리가 시아버님/시어머님 돌아가셨을 때는 각각 딸, 아들이 느끼는 감정에 비할 게 못 되는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발인 날 새벽에 아버지께서 술에 많이 취하셔서 큰이모, 작은이모께 투정 부리듯이, '장인어른 많이 좋아했었다'라고 하신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태어난 존재는 죽어야 한다. 그게 태어난 자의 숙명이다. 아버지도 언젠가는 돌아가시겠지. 머리로는 이해한다. 근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게 아버지는 어렸을 때 많이 놀아주시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런지 가장 노릇을 하는 형한테 (사춘기) 반항도 했고, 대학생 때는 아버지가 나한테 뭘 해줬냐며 집을 나가서는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은 적도 있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내게 아버지는 긴 세월을 가정을 위해 묵묵히 회사에 다니시고,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시나, 여전히 스스로를 깨나가고 공부하시면서 어느 한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으시기에 더욱 존경스러운 분이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지만) 그렇기에 내가 아버지를 본받고 싶은 거다. 내 살아생전에 아버지를 뛰어넘을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내게는 그런 아버지시기에, 아버지께서 언젠가 돌아가신다고 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이번 생’에 부자(父子)의 연으로 만난 것이기에, ‘나의 아버지’라는 상에 매이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그 자리에 계시면 안 될지? 욕심이란 걸 알지만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나도 이렇게 나이를 먹었다. 아버지께서도 그만큼 나이를 드셨다. 깊게 팬 얼굴 주름과 나온 뱃살을 보면 더 잘 느껴진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내 지난날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엄마 손 잡고 시장을 다니던, 유치원을 다녔던 꼬마가 자라서,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동네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그네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무척 좋아하기도 하고, 태권도도 열심히 다니고. 그러다가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시험 끝나서 피시방에도 가고, 학교 끝나자마자 학원에 가서 새벽까지 공부하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라며 책상을 내려치기도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스스로를 괴롭히며 지내다가. 또 운 좋게 의대에 진학해서는 끊임없는 시험 속에서 잠깐 쉬었다 갈까 고민도 하고, 누군가와 처음으로 만나기도 하고. 정신 차려 보니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도 하고 적지 않은 환자들도 봤다. 그런 인생의 흐름 속에서 나도 나이를 먹었지만, 똑같이 아버지도 나이를 드셨다. 나도 언젠가 결혼하고, 또 애를 낳으면 그 아이가 자라서 커가고, 또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르겠지. 




  끝없는 반복이다. 우리는 이렇게 나고 커서 만나고 낳고 기르다 늙어서 죽는 것이 인생의 전부란 말인가? ‘내가 누구인지’를 알면 한 생이 편할 수는 있어도, 태어나고 죽는 문제는 해결해주지 못한다. 나고 죽고 나고 죽고 이것을 계속하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란 말인가? 나고 죽음의 반복은 언제까지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원망하는 사람과 만나고, 구하고자 하나 얻지 못하는 괴로움을 반복해야 하나? 이 우주 자체가 사라지면 그때는 이 괴로움도 끝이 날까?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래야 이 끝없는 괴로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게 부처님께서 얻으신 자리이고, 생사가 끊어진 자리이며, 영원히 괴로움이 없는 곳이며, 해탈(解脫)이며,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한 생을, 찰나를 덜 괴롭게 할 뿐이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그곳에 가야 한다. 그것이 세상에 태어나 삼아야 할 목표다. 

매거진의 이전글 15. 벌초를 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