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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ug 25. 2022

15. 벌초를 하며

습, 무아, 선업

#20220821 #벌초 #일기 #불교


 대학생 때 한 번 벌초 도와드리고는 10여 년만의 벌초를 다녀왔다. 이제 공부도 다 끝났고, 아버지 혼자서 벌초하러 가시는 것도 그렇고, 이제 시간이 자유로우니 다녀와야겠다 싶었다. 새벽에 차를 몰고 시골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먼저 가셨고 나는 뒤따랐다. 날이 흐리더니 산에 올라가는 동안에 비가 왔다. 생각보다 할아버지 할머니 묘를 잘 찾아갔다. 아버지 말씀대로 “길을 가르쳐준 사람이 잘 가르쳐줘서” 잘 찾아갔나 보다. 




#1. 큰아버지께서 알려주셔서 쑥대라는 것을 처음 봤다. ‘쑥대밭이 되다’ 할 때의 쑥대였다. 작은 건 뽑기 쉬웠지만, 좀 자란 건 뿌리가 깊어 손으로 뽑기 매우 벅찼다. 할머니 할아버지 묘 주변에 뿌리 깊은 쑥대가 3포기 있었는데 1포기밖에 못 뽑았다. 그마저도 낫으로 계속 땅을 파고, 헤집고, 잔뿌리를 긁어내고 나서야 뽑혔다. 하나 뽑고 나니까 속이 다 시원했는데, 2포기가 남아서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 한 켠이 찝찝하다. 


 습(習)을 뿌리 뽑는다는 게 이런 걸까 싶었다. 습을 뽑을 때는 잔뿌리도 다 뽑아야 할 텐데. 불교적인 의미의 훈습(薰習)*이 이런 잔뿌리를 뜻하는가 싶기도 했다. 식물은 어떻게 뿌리만 있어도 다시 자랄 수 있을까? 그 생명력에 놀랍기도 했고, 또 그걸 뽑는 입장에서는 매우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옛날에는 소나무가 지조의 상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시대에 벌초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뽑아야 할 잡목에 불과하다. 소나무 치묘(稚苗; 자연적으로 자란 어린나무)는 알아보기가 매우 쉽다. 어려서부터 뾰족뾰족한 잎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개성을 뽐낸다. 선산에 거의 모래밭인 곳도 있는데, 그런 데서도 소나무는 자랐다. 바닷가 주변에 키 큰 솔밭이 있는 것도 소나무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이겠지. 




#2. 둘째 날 아침이었다. 전날 피곤했는지 일어나기 힘들어서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자꾸 아버지더러 따로 가라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짜증이 났다. 나는 아버지랑 같이 올라가려고 하는데, 자꾸 내가 못 갈 것처럼 말씀하시니까 무시하나 싶기도 했다. 참다 참다가 결국 “아이 좀 그만해요!”하고 소리쳤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나는 이렇게 하려는데 그걸 묻지도 않고 어머니 마음대로 한다는 생각에 조금 있다가,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먼저 물어봐 줘요”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가만히 안 내버려 둔다 싶었다.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데, 산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죄송하다고 할 시간이 분명 있었는데 도저히 마음이 움직이질 않아서 그냥 차에 타버렸다. 그렇게 마음이 찝찝한 채로 산에 올랐다. 오르면서도 생각이 많았다. 어머니는 걱정이 너무 많다. 어머니의 완벽주의 or 과도한 책임감 때문일지? ‘이제 공부 다 끝났으니 가족 행사, 경조사 잘 챙겨야지’ 하고, 벌초하러 가겠다고 했을 땐 분명 좋은 마음이었는데, 짜증으로 가득 차 버리니 이게 뭔가 싶기도 했다. 나는 본래의 목적을 잘 까먹는 거 같다. ‘나’도 없고, ‘벌초한다’라는 것도 없는 건데. 


 그렇게 어머니 탓만 하다가 문득, ‘내가 어떻게 하겠다고 먼저 얘기했으면 됐을 텐데, 어머니 탓만 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남 탓만 하고 있었으니, 환자들한테 뭐라고 할 처지가 못 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걸 잘 못 했는데, 그게 핑계가 될 순 없지. 어렸을 때 습관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연습이 필요해. 


 산에서 내려와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사과드렸다. 아침에 짜증 내서 죄송하다고 했다. 어머니께서도 미안하다고 하셨다. 내가 못 일어나니까 피곤한 거 같은데, 아버지는 일찍 올라가신다고 하니 먼저 올라가라고 하신 거였다고. 배려한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 같다고 하셔서, 나도 내가 어떻게 하겠다고 말했으면 됐을 문제였다고 말씀드렸다.      




#3. 벌초하다가 쉬는데, 육촌형이 어른들께 물을 부어주면서, “내 가방 가볍게 해야지”, “내려갈 때는 가볍게 내려갈 거”라고 했다. ‘착한 일을 하면 돌아갈 때의 짐이 가볍다’? 선업(善業)을 쌓으면(남을 위하면) 그만큼 죄가 줄고, 마음이 밝아지고, 넓어진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자체가 윤회의 굴레 속에 있다는 얘기이고, 죄가 있으니 나고 죽고 윤회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죄를 덜고 간다면 한 세상 태어난 보람이 있지 않을지? (8-#4, 만수래만수거(滿手來滿手去)) 더운 날, 땀 뻘뻘 흘리면서 벌초하느라 힘드신 분들께 물을 드리는 마음과 내 가방을 가볍게 하겠다는 마음이 거꾸로 되면 안 되겠지만. 


 문득 <이산 혜연 선사 발원문>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모진 질병 돌 적에는 약풀 되어 치료하고 
흉년 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되 
여러 중생 이익한 일 한 가지인들 빼 오리까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훈습(薰習)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8373     


**

질열세이현위약초 구료침아 

疾疫世而現爲藥草 求療沈疴 

기근시이화작도량 제제빈뇌 

饑饉時而化作稻梁 濟諸貧餒 

단유이익 무불흥숭 

但有利益 無不興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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