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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n 28. 2022

8. 운전하며 든 단상(斷想)들

VR, 삶과 죽음(윤회), 무재칠시, 만수래만수거 ... 

#20220628 #운전단상 


요새 주말마다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그중 일부를 옮겨본다. 


#1. 5/29) 운전하는데 문득 3D 안경을 쓰고 가상현실에 있는 듯했다. 햇빛이 강하다고 선글라스를 써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가상현실 Virtual reality(VR). 예전에 VR 롤러코스터를 타봤는데, 영상과 바람, 움직이는 의자로 진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오감(五感)이 얼마나 속이기 쉬운 것인지에 놀랐었다! 6/17)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운전하는 것도 사실 나는 차에 탔다가 내렸을 뿐인데, 주변이 달라져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2-1. 5/31) 고속버스 안에서 

 날이 밝을 때는 계속 폰 보면서 딴짓하다가 해지기 전에 급하게 책 읽는 게, 몸이 건강할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딴짓하다가 쇠약해지기 시작하니까 늦었다 싶어서 급하게 수행하려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지? 

#2-2. 6/1) 고속버스를 타며 

 인생도 ‘육체’라는 버스를 타고 내리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불편하다고 중간에 내릴 수도, 다른 길을 가보겠다며 목적지를 변경할 수도 없는. 


#3. 6/3) 추월차선 정속주행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납이 안 된다. 주행차선과 추월차선이 명백하게 나누어져 있는데 왜 추월차선에서 제한속도로 달린단 말인가? 나 혼자 부글부글하면서 클랙슨을 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일었다. 그 차 운전자가 보였을는지 모르겠지만, 주행차선으로 추월하면서 선글라스 너머로 째려봐주기도 했다. 

 그 순간에는 무재칠시고 뭐고 없었다. 온통 화나는 마음만이 일었을 뿐이다. 왜 그 순간에는 그렇게밖에 마음이 나지 않았을까? 반복되는 장거리 운전으로 지쳤던 걸까? 빨리 가고 싶은데 못 가서 그런가? 추월차선에 줄지어진 차들 맨 앞에서 가고 있는 차가 눈에 띄면, ‘아, 저 차가 빌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 꼭 저 차는 추월해서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하면 앞으로 갈지 이리저리 끼어들 틈을 살피는 것이다. 

 문득 부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지/어떤 마음이실지 궁금했다. 부처님께서도 무재칠시를 생각하실까? 그냥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연에 의해서 내 앞에 있는지 다 아실 텐데 화날 게 있으실까? (6/19) 다 아시니까 끝까지 맞춰주는 것도 가능하시지 않을까? 자리를 비켜주는 게 하나의 보시라고 생각하는 건, 그저 어느 중생이 어떤 일에 대해서 마음에 오래 안 남기고 넘기는(합리화?) 하나의 방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를 위하는 마음은 남겠지만) 아니, 부처님께서는 눈이 먼 아나율의 바늘에 실을 꿰어주실 정도로 복을 구하시는 분이니 그런 마음으로 보시를 하시려나? 

 

#4. 6/3) 대전-통영 고속도로에는 시속 100km 구간 단속 구간이 몇 군데 있다. 예상 시간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평균 속력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의문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구간 단속 시작 지점과 내 위치의 차이(거리)와 걸린 시간만 알면 충분히 계산할 수 있었다. 예상 시간은 시작 지점부터 끝 지점까지 제한속도로 계속 달렸을 때 걸리는 시간이므로, 그 사이에서 90km/hr로 달리든 110km/hr로 달리든 평균 속력이 100km/hr였다면, 걸리는 시간은 100km/hr로 일정하게 달린 것과 똑같다는 의미였다. 플러스 마이너스해서 제로니까 제로섬(zero-sum)이 떠올랐다. 

 시간-속력 그래프에서 곡선 아랫부분의 크기가 같다고 생각하다가, 인생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끊어서 보면 잘사는 삶 or 못사는 삶이 있겠지만, 잘살 때 잘해놓지 않으면 결국 다시 떨어지는. 못살 때 마음 잘 써서 잘살게 되고 잘살 때는 마음 못 써서 못살게 되어서, 끝없이 중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잘살 때 잘해서 더 잘살고 더 주변에 베풀어야 하는데. 


#5. 6/5)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한데 세종시 집에 가는 길이었다. 합류 차선에서 내가 끼어들어야 했는데, 나도 상대도 속도를 늦추지 않아서 상대가 나에게 클랙슨을 울렸다. '넌 뒤졌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두운 길을 같이 가는 동반자(도반; 道伴)라는 생각이 들자, 탓하는 마음이 일어난 게 부끄러웠다. 둘 다 속도를 늦추지 않았으니 나도 상대와 똑같은 사람 아닌가(심지어 내가 끼어드는 거라 내가 속도를 줄이는 게 맞았음). 너도 어둡고 나도 어두운데, 서로의 헤드라이트에 의지해서 함께 이 어두운 길을 헤쳐나가는 것 아닌가. 


#6. 6/19) 다른 차선에 끼어들 때도 속력을 높이기 위한 도움닫기가 필요하다. 


#7. 6/21) 급똥은 정말 아찔한 경험이었다. 고속도로를 올라갔는데 배가 살살 아파져 오는 게 아닌가? 대전-통영 고속도로는 휴게소가 뜨문뜨문 있어서 3~40km가 기본이다. 다행히 나는 초입부터 배가 아파서 대략 27km만 가면 휴게소에 들를 수 있었다. 에어컨 찬바람에 배가 더 아픈 것 같아서 껐다가, 더워서 더 이상해지는 것 같아 다시 켰다가, 정말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존엄이고 뭐고 다 버리고 갓길에 차를 세워서 수풀로 뛰어드느냐, 이 상태로 사고가 나면 장이 가스 때문에 터지거나, 피든 뭐로든 바지가 흠뻑 젖을 텐데 참 못 볼 꼴이겠다 싶었다(그 순간에 이런 생각까지?). 100km/hr 구간 단속을 하는 곳이었는데 휴게소가 마침 구간 안에 있어서 단속이고 뭐고 그냥 밟았다. 그런데 #3과 같이 추월차로에서조차 정속주행을 하는 (당시로는) 죽일 놈들이 있었어서 원망하는 마음이 하늘같이 치솟았다. 나름 엄청 밟았는데도 평균 시속이 110km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을 수도 있어서 휴지를 챙기고 내렸는데, 화장실은 또 왜 이리 멀담. 걸음걸음이 지옥이었다. 괄약근으로 물을 가둬두고 있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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