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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l 04. 2022

9. 황포냉면을 다녀오다

욕먹어도 먹지 않는 방법 

#20220703 #황포냉면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가, 진주의 냉면 맛집 중 하나인 황포냉면을 가봤다. 개양 터미널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이곳.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무뚝뚝하게 몇 명이냐고 물으시더니 손님들을 대비해 미리 담아놓은 반찬 그릇들 옆자리로 손짓했다. 메뉴는 간단했다. 물/비빔/특미냉면, 소머리 수육, 육전과 만두. 특미냉면이 물과 비빔을 섞은 것이라기에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따뜻하게 데운 육수를 주었다. 그냥 물처럼 마시기에는 꽤 짰다. 


 냉면이 나왔다. 고명으로 무초절임과 채 썬 배와 오이와 육전, 삶은 계란 반 알, 한 움큼의 황태포가 올라갔다. 면도 쫄깃쫄깃하고 양도 꽤 되었다. 무엇보다 고명이 많아서 푸지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그릇으로 배부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짰지만, 맛있었다! 나가면서 맛있었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손님이 잘 먹었다고 하면, 음식을 파는 사람 기분이 좋을 것 같아서 웬만하면 그렇게 하려고 한다) 

푸짐한 한 그릇이다. 면보다 고명이 더 많은 것 같다.


 짐을 챙기고 계산하러 갔다. 카드를 드렸는데, 한도 때문에 계산이 안 될 거 같았다. “계산이... 안 되죠?” 하니까 주인아주머니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다른 카드를 내미니까, 아주머니께서는 원래의 카드를 던지듯이 내려놓고 다른 카드를 받아 계산하셨다. ‘카드를 던지네?’ 하는 생각이 불쑥 올라왔지만, 그와 동시에, 며칠 전 환자에게 아무렇게 떠든 말이 떠올랐다. 

... "어떤 생각이 불쑥 떠오를 수는 있지만, 그걸 계속 붙잡고 있는 건 본인 몫이에요." ... 

 상대가 무슨 의도로 말/행동을 했건, 그건 상대의 몫이다. 그걸 받아들이고 말고는 내 몫이다. 어떻게 받아들일 건지도 내 몫이다. 방금의 그 순간에 아주머니께서 어떤 의도로 그렇게 카드를 던지셨는지는 모르겠지만(사실, 특별히 의식해서 한 행동도 아니셨을 거다), 나는 그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별로 기분이 상하지 않은 채 원래 마음먹었던 대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올 수 있었다. 아주머니께서는 다른 곳을 보며 또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한순간 상대의 행동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기에, 맛있는 냉면을 먹고도 기분이 확 나빠졌을 수 있었던 상황을, 계속해서 맛있는 기억으로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잔칫집에 손님이 와서 대접했는데 손님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돌아간다면, 남은 음식은 고스란히 주인의 몫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 또한 같은 이치다.* 


 이런 상황은 생활 속에서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난다. 상대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내 기분도 덩달아 널뛴다. 상대방이 어떻게 말/행동하든, 의도가 어떻든, 내 기분의 주인은 나다.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부터 결정하자. 상대방이 내 기분을 결정하게 허락하지 말자. 그리고 상대가 어떻게 하든, 나는 내가 마음먹은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 부처님을 증오했던 바라도사와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0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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