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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l 11. 2022

10. 운전하며 든 단상(斷想)들 2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악연(惡緣)

#20220708 #신구의삼업 #악연


 조금 졸린 채로 고속도로에 올랐다. 멍-하니 별 생각이 안 났다. 이참에 이번 운전은 사무사(思無邪)라고, 다른 차들에 대해 별 생각하지 않고 흐르는 대로 운전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10초 만에 실패했다. ‘어쭈? 앞질러 가네?’ 하고 호승심(好勝心)이 일기도 하고, ‘왜 이렇게 느리게 가?’ 원망도 들고. 무재칠시라고 생각하든 욕 한번 시원하게 해 버리든, 마음에 덜 남게 하는 방법은 이것저것 만들어가고 있지만, 그마저도 내가 쌓아둔 것들(함장含藏되어 있는 것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 욕하면서 입으로 업을 짓고(口業-惡口), 생각만으로도 업(意業-瞋恚)을 짓는지라.*




 1차선으로 달리고 있는데 백미러로 보이는 뒤차가 확확 가까워져 오는 게 보이면 나도 무섭다. ‘어이쿠 무서워라. 그래, 내가 비켜줄게. 내가 싫어하는 빌런 짓을 내가 할 순 없지.’ 트럭이 그러더니, 하얀 지프가 뒤따라 그러네. 그 두 대는 저 앞쪽에서도 요리조리 가더라.


 한 번은 (#3) 구간단속 구간의 1차선에서 정속주행하는 차가 있기에 마지막에 째려 주었더니, 구간단속이 끝나자마자 부왕-하고 가는 것이다. ‘어쭈?’ 하는 마음에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갔다. 짙은 청색의 SUV였다. 얼마나 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은 따라잡았는데, 또 다른 급한 차가 내 뒤에 붙기에 길을 비켜주고는 잃어버렸다.




 브롤스타즈를 하다가 게임을 던지는(트롤링) 친구가 보이면 친구 요청을 한다. 받아주면 욕 한 바가지 해줄 심산으로. 근데 그러다 보면 친구 목록에 내가 욕할 사람만 남지 않겠나? 심지어 한순간에 화나서 친구 신청을 했던 거라, 친구 목록에 얘가 왜 친구가 되어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라. 근데 내가 보통 친구 요청을 하는 이유가 상대의 트롤링에 화나서 그랬던 거니까 아마 욕하려고 했던 거겠지.

트롤링을 당하면 대개 지기 때문에 화나서 친구 요청을 한다 (예시)
그렇게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 쌓인다


 악연을 짓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원망하는 마음을 내서 담아두면,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연이 지어져,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도 모르는 채 함께하게 되는. 근데 내가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그 상대에 대해서도 무슨 일이든 간에 또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겠나? 그럼 (이전에는 모르는 사람인 채로 악연이 지어졌지만, 이제는) 아는 사람과 또 악연을 짓게 되는 거다.


 현실의 운전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1차선 정속주행한다고 째리면, 상대는 그걸 봤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미 그런 마음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상대와 악연을 지어 놓는 것이었다. 그 상대가 원래 나와 악연이었는지, 그 순간에 악연이 된 건지 모르지만 말이다.



* 신구의 삼업 몸·입·뜻으로 짓는 업 - 현대불교(2018.08.26)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7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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