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재칠시(無財七施) - 상좌시(床座施)
#20220130 #무재칠시 #상좌시 #양보
내 차는 아주 오래되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탔는데 지금 내가 끌고 다니니까 말 다 했지, 뭐. 아버지께서 깔끔하게 타셔서 4년 전에 받을 때는 깨끗했는데, 내가 범퍼카로 쓰다 보니 양쪽 문이 찌그러진 데다가 한쪽은 몰딩도 떨어졌다. 몰딩이라도 다시 붙이고 싶은데 어설프게 붙이면 달리다가 떨어질까 봐 겁나기도 하고, 수리하려면 문을 아예 교체해야 한다고 해서 찌그러진 대로 그냥 끌고 다니고 있다. 오래되었으니 환경에도 안 좋을 거 같고 쉬게 해주고 싶은데, 새 차나 중고차를 산다면 또 어떤 차를 사야 할지. 자잘한 고장이 있더라도 우선 타고는 다닐 수 있으니 그냥 타고 다닌다.
오래된 차를 몬다는 건, 파란불이 눈앞에서 노란불로 바뀌더라도 그냥 지켜봐야 하는 거다. 앞 차와의 거리가 멀어지는 걸 그냥 봐야 할 때도 있고, 그 사이로 다른 차가 몇 대나 끼어들더라도 그러려니 해야 한다. 추월하고 싶어서 1차선에 있다가도 속도가 나지 않아 슬그머니 다시 2차선으로 빠질 때도 있다. 때로는 무리에서 가장 마지막 차가 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같이 있던 무리를 떠나 앞선 차들의 꼬리를 잡기도 한다.
느림의 미학. 그러려니, 받아들임의 연속이더라도 불쑥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물론 화가 난다. 아무리 느려도 차는 차고, 속도도 있으니 눈 깜짝할 새에 가까워진 차 꽁무니를 보면 섬찟하니까. 그렇게 화가 올라올 때, (정신승리라고 해도 좋다) ‘나는 자리를 양보했다’ 치면 그래도 그 일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아있지 않는다. 그 일을 계속 담아두고 상대를 욕하면 (상대는 알지도 못할뿐더러) 내 마음에만 남고, 내 마음만 어둠에 물든다. 그리고 잘 알지는 못하지만, 상대를 원망하는 내 마음이 원인(因)이 되어 상대와 풀어야 할 무언가를 남기게 된다. 그럴 바에 차라리 ‘욕먹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바쁜 일이 있나 보다’ 하고 훌훌 털어버리는 게 낫다.
《잡보장경》 6권에는 “일곱 가지 보시가 있으니 재물을 덜어내지 않고도(재물의 손상 없이) 큰 과보를 얻는다 [佛說 有七種施 不損財物 獲得果報]”라며, 재물 없이도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무재칠시(無財七施))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그중 상좌시(床座施)는 부모, 스승, 사문, 바라문에게 자리를 펴서 앉게 하거나, 자기 자리를 양보해서 앉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생활에 접목하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앉아 있다가 자리를 비켜드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 자리라고 생각한 것, 내 길이라고 생각한 것 등을 내려놓고 상대를 위해 비워주는 게 아닐까? 다른 차가 끼어들어서 화가 나려고 할 때 나는 간혹 이런 생각을 한다.
* 잡보장경 제6권, 76. 일곱 가지 보시의 인연(七種施因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