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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an 10. 2024

차선 끼워주기

깨달은 이에게 이 세상은 유희(遊戲)다.

#20240110 #성난마음 #진심 #자성계


 다들 뻔히 공사 구간인 걸 아는 곳이었다. 1차선으로 가다 보면 결국은 2차선으로 합류해야 한다는 걸 그 길로 다니는 사람이라면 응당 아는 곳이었다. 용감하지 못한 나는 옆 차선으로 끼어드는 게 무서워 일찌감치 2차선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몇몇(이라고 하기엔 꽤 많은) 사람들이 1차선을 통해 앞으로 가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도 내 앞으로 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많은 차들이 저 앞에서 끼어들었을 것이다. 일부는 좌회전하는 차였겠지만, 그쪽으로 가는 차가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괘씸했다.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괜히 새치기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앞으로 가는 차들이 얌체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내 마음은 더욱 좁아졌고, 그만큼 앞차와의 간격도 더 좁게 유지했다. 바싹 붙여서, 얌체 같은 저 이들을 끼워주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이런 내 마음이 보였는지, 중간에는 한 차도 내 앞으로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획은 거의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공사 구간이 시작되는 곳_그러니까 끼어들 수밖에 없는 지점_에서 한 차가 내 앞으로 끼어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급하게. 나는 경적을 세게 누르면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사이에 그 차는 쌩하니 앞으로 끼어들었다. 미안하다고 비상등도 깜빡이지도 않았다. 더 괘씸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복수로 할 수 있는 건 경적을 울리거나 상향등을 쏘거나 뒤에 바짝 붙는 거였다. 씩씩거리면서 바짝 붙으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되었던 거 같다. 다만 그 차와 다른 길로 갈라지게 되었을 때 신경질적으로 액셀을 밟으면서 옆을 지나쳤다. 


 이렇게 화를 내고 나면 허탈하다. 내게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녹은 쇠에서 나와서 쇠를 좀먹고, 화는 마음에서 나와서 나를 갉아먹는다. 머리로는 알아도 확확 마음이 일어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전에 들었던 법문이 떠올랐다. (내 인식으로 정리한 것이라 틀렸을 수 있다) 

이 세상이 허상인 것을 깨달으면 이 세상은 유희(遊戲)다. (깨달은 사람은 모든 게 인연으로 이루어져 공(空)한 것을 알아) 어떤 즐거움에도 괴로움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마음이 어디에도 걸림이 없으니 미운 사람을 봐도, 고운 사람을 봐도 흔들리지 않고 여여(如如)하다. 


 깨닫지 못한 나는 오늘도 괴롭다. 나는 또 무엇을 붙들고 있었는가? 내 앞에 차가 끼어든 상황과 내가 일으킨 성난 마음. 차는 진작에 사라졌는데, 내 마음이 그걸 계속 붙들고 있었다. 훌훌 흘려 버려야 했는데, 그게 뭐라고. 아버지께서는 예전에 자성계(自省戒)로 한동안 ‘경적 누르지 않기’를 하셨다고 했는데, 나도 그걸 따라 해야겠다. 마음 자체가 안 일어나면 제일 좋겠지만, 적어도 행동으로 옮기지는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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