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연중에 사람들은 인생을 '지구로의 여행'으로 표현할 때가 있다. 지구 말고 다른 행성에 인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영혼(靈魂)이 있고, 영혼이 인간의 몸에 들어온 것이라면 그 표현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 떠나는 여행을 잘하려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또 여행지에 가서도 세웠던 계획대로 잘 지켜서 생활해야 할 것이다. 어디에 뭐가 있고, 그곳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어디로 가서 무슨 표를 사고 몇 번 출구로 나가서 얼마나 걸어야 하고, 휴일은 언제이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하고, 예약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파악해야 할 것도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여행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 MBTI는 INTP이지만, I 빼고 N, T, P는 다 반반이라 다른 게 나오기도 한다. P라고 알고는 있지만, J인 거 같기도 하다. 마음의 준비를 못 한 채로 상황에 부딪히면 불안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한 번 계획을 세우면 완벽해야 할 것 같아서 막 세울 수도 없고,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또 불안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상황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번 일본 여행도 그러했다. J와 함께 떠나는 첫 해외여행. J는 대학원 때문에 바쁘니 내가 계획을 짤 법도 한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계획을 짜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 내 변명. 알아보기에는 너무 정보가 많고, 뭘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놔버렸다. 그러다 보니 J나 나나 둘 다 계획은 없고, 닥치는 대로 경험하기 바빴다.
나는 그렇게 흘러가는 게 싫으면서도 직접 움직이진 않으니, 행동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J에게 짜증만 많이 내고 다그치기만 하니, J도 마음속으론 '그럼 네가 찾든가!' 했을지도 모른다. J가 나에게 화내지 않고 소리 지르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듯하다.
3박 4일의 일본 도쿄 여행 중 도쿄 디즈니 씨(Tokyo DisneySea; 디즈니랜드의 놀이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J가 찾아보기로는 오픈런을 해서 DPA(Disney Premier Access, 놀이기구를 빨리 탈 수 있는 패스)를 사야 한다고 했는데, 전날 늦게 잔 탓에 일어나는 게 이미 늦었다. DPA는 디즈니 씨 안에서만 살 수 있어서 공원에 들어가자마자 앱을 켰는데, 토이 스토리 하나밖에 살 수 없었고 나머지는 마감이었다. 그거라도 얼른 사서 나중에 이용했다.
퍼레이드도 잔잔했고, 150분이나 기다렸던 'soaring'도 스케일에 압도되긴 했지만 역시나 잔잔했다. VR 체험장에서 탔던 3D 롤러코스터가 떠올랐다. 타는 건 5분 정도? 저녁에 했던 메인 퍼레이드도 익숙한 캐릭터가 몇 없어서 그랬는지, 나름의 기승전결이 있었겠지만 알아들을 듯 못 알아들었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있었는데 경험한 건 몇 개 없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따지면 소용이 있는 게 얼마나 있단 말인가? 그런 무용(無用)의 것들이 쌓여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는 게 아닌가 싶었다.
디즈니랜드를 좀 더 알아보고, 알아본 대로 일찍 가서 DPA도 3개 다 사고 남는 시간에 자잘한 것들을 타보고 둘러보고 했다면 디즈니 씨를 뽕 뽑을 수 있었을까? 근데 꼭 그래야만 하나? 그다지 내가 기대나 욕심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엄청 아쉽지는 않았다. 아닌가? 별로 경험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안 아쉬웠다고 자기합리화 중인 건가? 구석구석 다 돌아보고 다 알지만, ‘내 의지로 덜 경험했어야’ 아쉬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
부처님께서는 돈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도 가라고 하셨다. 세상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세상에 몸을 던지신 분이 부처님이시다. 근데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 하라는 뜻은 아니었던 걸로 이해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개인의 삶이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돈, 지위 등이 세상을 편히 살기 위해서는 필요하되,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바가 아니니 그것에 애착·집착하지 않아야 한다(개인적인 입장). 또,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더 많은 무진등(無盡燈)을 켜라는 의미로 이해했다(우주적, 사회적 입장). 근데 이건 마음가짐의 문제이지, 실제로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적게 가졌을 때도 안 나누던 사람이라면, 대체 얼마를 가져야 나눌 생각을 하겠는가?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재칠시(無財七施)를 알려주신 게 아닐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을 다 알고 다 가지고 다 누리는 건 진정한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애초에 그것에는 끝이 없다) 덜 괴롭기 위해서는 돈,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 등등 많이 가져야겠지만, 어차피 그것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다 변한다. 지금의 내가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만큼은 누리되, 있는 자리에서 한 생각 뒤집어 상대를 위할 수 있다면?
이번 여행의 나에게 적용한다면, J의 생각에 계속 딴죽이나 걸지 말고 좀 더 J가 하자는 대로 움직이는 열린 마음이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거기서 더 적극적인 태도였다면, 디즈니 씨에 어떻게 가고, 어떻게 해야 하고, 어디에 뭐가 있고, 몇 시에 가고 하는 것들을 아주 잘 계획해서 J가 보고 느끼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근데 내가 했던 건 그저 '이거 해봤자 무슨 소용이지?’라면서 뚱한 표정으로 귀찮아하고, J의 생각에 태클을 건 것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디즈니 씨를 떠날 때 J에게는 "더 보고 싶은 건 없어? 아쉬움은 없어?"라며 말로만 신경 써주는 척했을 뿐이다. 내가 다 알고 있었어야 뭐라도 더 권해보고 할 텐데, 내가 아는 게 없었으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나’를 봤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새로운 환경, 처음 보는 물건, 낯선 사람, 익숙하지 않은 일에 덤비는 것을 주저하는 나.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가게를 찾고, 길을 찾고, 주문하는 등의 일을 거의 다 J가 했다. 내가 나서서 움직일 생각을 못 했다. 나는 계획을 세우거나 먼저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딴죽만 걸었다. 그런 스스로가 아주 많이 못나 보이고, J에게도 많이 미안했다.
이런 불안 때문에 나는 익숙한 일만 하려고 하고, 자꾸 머무르려고 한다. 그리고 잘 모르고 새로운 것에 대해 ‘이거 해서 뭐 해?’에서 더 나아가 ‘무의미하다’까지 생각하는 게, 어쩌면 내가 그동안 취해온 합리화였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은 불안하고, 낯설고, 두려우니까 시도할 생각도 못 하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근데 내가 원치 않고, 받아들이기 싫은 상황은 어떻게든 다가온다. 몸 비틀어봤자 어차피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라면 그냥 아무 마음 내지 않고 덤비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어려서 원치 않는 일이 생기면 그냥 제자리에서 엉엉 울면서 발버둥 치고 떼쓰는 어린애 같다. 새해에는 좀 더 마음이 넓은,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