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20231127 #보왕삼매론
지난주 대리석 바닥에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이전에 다른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는 멀쩡하던 게 웬일로 액정 한구석이 깨졌다. 화면이 몇 번 깜빡이고는 괜찮길래, 선택약정도 이어서 하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써보자 싶었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나니 화면이 네온사인처럼 계속 깜빡였다. 눈이 아파 화면을 계속 보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핸드폰을 너무 많이 붙잡고 있으니 그만 좀 보라는 의미인가 싶었다. 며칠 더 지난 지금은 화면 전체가 아예 어두워져 버렸다. 그마저도 깜빡거려서 화면을 엎어둬야 한다.
자동차는 문제가 더 많다. 와이퍼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능이 고장 나서, 와이퍼를 끄면 그냥 그 자리에 멈춘다. 사이드미러는 접힌 채로 열리지 않을 때도 있다. 핸들의 미디어 조절 버튼도 이상해져서, 앞으로 넘기면 뒤로 가고, 뒤로 넘기면 음성 인식이 되었다.
내 몸도 문제가 많다. 거북목도 있고, 앞니 하나는 깨져서 도로 붙여놨는데 간당간당하고. 배는 나오고, 근육은 없고. 지난번 건강검진에서 대장 용종도 떼어내고, 기분 탓인지, 이마는 자꾸 넓어지는 거 같다. 어디서 A/S라도 받고 싶은데, 어디서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보왕삼매론』에 이런 구절이 있다.
念身不求無病 身無病則貪欲易生(염신불구무병 신무병즉탐욕역생)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영원한 것은 없다. 한 번 생겨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고 망가지게 되어 있다. 물건들도, 내 몸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물건들을 막 다루고, 몸을 막 굴려서 살자는 게 아니다. 지금 주어진 것은 잘 다루되, 그것들이 영원하지 않은 속성을 가졌으니 애착·집착하지 말자는 것이다. 있는 거는 아껴서 잘 써야지? 그렇지만 망가져 간다고 해서 너무 안타까워하거나 매이지 말자는 것이다. 물건들이 완전히 망가진다면 새로운 걸 사야 하겠지만, 아직은 사용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쓸 수 있는 데까지는 쓰려고 한다.
늦게 퇴근해서 차를 댈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면 주차를 했다. 다음날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뒹구느라 차를 움직일 일이 없었다. 저녁 먹는다고 내려갔는데, 차가 많이 밀려서 전기차 충전기 앞까지 밀려있었다. 다행히도 딱지는 안 떼였다! 근데 와이퍼 아래에 휴지가 한 장 올려져 있었다. ‘누가 무슨 휴지를 올려놨지?’ 하고 저녁 먹으러 다녀왔다.
내 차 때문에 전기차들이 충전을 못 할 것 같아서 차를 빼야지 하고 가까이 가서 아까의 그 휴지를 치웠다. 그런데 휴지에 무슨 글씨가 쓰여 있었다. ‘양심불량ㅆㅣ?’ 양심 불량이라니? 내가 일부러 거기다가 대놨나? 순간 억울한 마음이 확 솟았다. ‘나는 그저 이면 주차하고 나서 안 뺐을 뿐이라고!’, ‘잘잘못을 따지자면 밀어놓고 다시 원래대로 밀어놓지 않은 사람의 잘못 아닌가?’ ‘CCTV 돌려서 누가 해놨는지 봐야 하나?’
생각들이 일어나다가 그만하자 싶었다. ‘누군가의 원망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었나 보다’ 하고 합리화했다. 생각 더 해서 뭐 하나 싶기도 하고? 마침 차 뒤에 공간이 있어서 밀고 후진해서 전기차 충전기 입구를 벌려놓았다.
『보왕삼매론』에는 또 이런 구절이 있다.
被抑不求申明 抑申明則怨恨滋生 (피억불구신명 억신명즉원한자생)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의 배경에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인연(因緣); 연기(緣起)가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좋은 씨앗을 심어두면 좋은 결과가 따라오고(善因善果), 나쁜 씨앗을 심어두면 나쁜 결과가 따라온다(惡因惡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다고 하셨다. 지금 받는 거야 내가 이미 지어놓은 것들을 받는 거라 어쩔 수 없지만,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부지런히 선근(善根)을 심어놔야겠다.
*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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念身不求無病 身無病則貪欲易生 (염신불구무병 신무병즉탐욕역생)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處世不求無難 世無難則驕奢必起 (처세불구무난 세무난즉교사필기)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究心不求無障 心無障則所學躐等 (구심불구무장 심무장즉소학렵등)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立行不求無魔 行無魔則誓願不堅 (입행불구무마 행무마즉서원불견)
수행하는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으로서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謀事不求易成 事易成則志存輕慢 (모사불구역성 사역성즉지존경만)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交情不求益吾 交益吾則虧損道義 (교정불구익오 교익오즉휴손도의)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하셨느니라.
于人不求順適 人順適則心必自矜 (우인불구순적 인순적즉심필자긍)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원림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施德不求望報 德望報則意有所圖 (시덕불구망보 덕망보즉의유소도)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덕을 베푸는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
見利不求沾分 利沾分則痴心亦動 (견리불구첨분 리첨분즉치심역동)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적은 이익으로서 부자가 돼라」 하셨느니라.
被抑不求申明 抑申明則怨恨滋生 (피억불구신명 억신명즉원한자생)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