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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Nov 06. 2023

기차 좌석 빌런

쇠와 녹, 나와 화내는 마음 

#20231106 #기차 #의심 #진심(嗔心) 


 오랜만에 오송에서 기차를 탈 일이 있었다. 시간 맞춰서 기차를 타고 배정받은 자리로 갔는데,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하고 내 자리라고 했는데, 그 친구도 표를 보여주면서 자기 자리라고 했다. 기차 번호, 도착하는 역, 자리 번호까지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근데 그 친구가 먼저 앉아 있었고 내가 늦게 왔으니, 우선 알겠다고 하고 복도로 나와서 승무원을 기다렸다. 기차도 초과 예약이 되는 경우가 있나 싶어서, 승무원이 오면 어떻게/어떤 보상을 받을지나 생각했다. 코레일 앱의 문제였을 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조금 기다렸더니 승무원이 와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승무원이 같이 자리로 가서 그 친구의 표를 확인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가 가진 표는 오송까지는 그 자리에 앉고, 오송에서부터는 입석이었다. 그 친구는 (죄송하다고 했던가?) 얼른 짐을 챙기고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과연 이 젊은 친구가 자신의 표가 그러한 것인 줄 모르고 계속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젊은 친구가 그런 걸 모를 수가 있나? 기차를 몇 번 안 타봤나?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만약에 알고서 그랬다면 진짜 괘씸한 거고. 내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서서 갈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자리에 앉아서 갈 거라고 생각하고 탔는데 못 앉게 되었을 때, 그 상황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승무원한테 얘기해서 상황이 정리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친구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냥 말았다. 어차피 그 친구의 마음은 알 수 없고, 그냥 몰랐다고 생각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해서 그랬다. 실수였겠지. 이번 일로 배우고 다음에 안 그러면 되지. 내가 복도에 서 있었던 10분은 어떻게 보상받나 싶긴 한데, 그렇게 쪼잔하게 살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냥 말아야겠다. 


 웃긴다고 생각했다. 복도에서 승무원을 기다릴 때는 그 친구의 표에 대해서, 내지는 그 친구의 마음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일부러 그런 거 아냐?’ 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또 생각할수록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 ‘괘씸하다’라는 생각이 더해져서 상대를 원망하기까지. 그러니까 ‘어떻게 보상받지?’ 하는 생각까지도 들고. 근데 나 혼자서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무 소용도 없고, 나 혼자서 열받는 것이다. 녹은 쇠에서 나와서 쇠를 망친다. 마찬가지로 화내는 마음 또한 내 마음에서 나와서 내 마음을 망친다. 소용도 없고, 마음도 망치는 길이라 그냥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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