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등을 돌린 것만 같은 한 쌍의 반의어를 들으면 개인적으로 늘 연상하는 영화가 있어요.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입니다. 아주 인상적으로 남았던 작품 속 단 하나의 상황 때문인데요.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리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가벼이 떠오른 이야기가 마음을 완전히 지배할 정도였달까요.
실없는 농담이 오고 가는 흔한 술자리의 풍경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펼치는 대화 중 관상이라는 화두가 핵심이죠. 남자가 말하길, “나는 관상에 대해서는 엉터리인데 양쪽 극단을 짚어주면 대개는 넘어오게 되어 있다”라고. 덧붙이자면 “당신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외향적이고 밝은 성격 같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우울하고 슬픈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전한답니다. 여자는 반응하길, “그럼 나는 어때요?” 되감기하듯 재생하는 남자의 관상풀이에 자신이 정말 그렇다고 놀란 눈을 하는 모습이 압권입니다. 이후로 저는 이 수법(?)을 재미삼아 종종 활용해보기도 합니다.
요즘은 그저 얄팍한 수처럼 보였던 영화 속 관상풀이가 과히 저를, 그리고 인간을 정의하는 말이라며 새삼 곱씹는 중이에요. 코로나가 관계 다이어트를 강제하면서 ‘관계의 열정 온도’에서 다른 끝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수많은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 편하고 즐겁기만 한 타입이라고 여겼건만 혼자 지내는 시간에 전에 없던 안정감을 느낀 것입니다. 극단의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는 나. 문제는,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성격이 위태로워 보여 어쩐지 슬펐어요.
생각해보니 코로나가 닥치기 이전에도 이런 고민을 한 순간은 있었네요. 사람을 대하고, 연애하고, 일하는 등 수많은 상황상황마다 동전 뒤집듯 앞뒤 다른 내가 등장한 경험들. 그래서 ‘적당한 온도의 일관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바랐던 시간들.
결국 <북촌방향>의 관상풀이가 마음에 콕 박힌 건 아무래도 이런 제게 위안이 되어서라는 결론이네요. 적당하지 않아도, 항상 일관적이 아니어도, 그러니까 인간이라고, 숨통을 틔우는 것 같아서 말이죠. 웃음을 자아내기만 했던 ‘여자’의 행동에 이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물론 극단의 저를 두 눈으로 모두 확인하는 분들은 그 변덕에 적잖이 당황하실지 모르겠지만...... “예, 그것도 접니다. 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