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친화적 삶의 태도와 행복•사랑의 전도사 ”
구숙희 시인 시집 9집 시해설
“자연친화적 삶의 태도와 행복•사랑의 전도사 ”
- 구숙희 시의 세계
시인•문학평론가 김한빈
자연의 사계절을 즐겨 노래한 구숙희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을 상재하면서 그의 시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자연친화적 삶의 태도에 찬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세월의 무심한 흐름 속에서 쉽사리 삶의 허무에 빠지지 않고 오랜 인고의 시간을 통과한 후 오히려 국화꽃 같은 인격의 원숙함과 더불어 삶에 대한 긍정과 희망의 자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자연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경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친화 및 동화의 경지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스스로 행복과 사랑의 전도사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나온 간난신고의 삶의 연륜은 역설적으로 행복과 사랑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시인은 행복과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가치가 사실은 가장 위대하고 보편적인 가치임을 여러 시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100편 가까운 시편들 중에 꼭히 시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해설자의 편의에 따라 전체 총 4부(제 1부~제 4부)에서 각각 3편씩 선정하여 12개 작품에 해설을 붙였다. 제 1부의 「대지 위 푸르름이」, 「새해 아침」, 「흰나비 한 쌍」을, 제 2부의 「고독」, 「기상천외하다」, 「만상萬狀」을, 제 3부의 「작곡가」, 「그냥 그렇게 산다네」, 「행복이라는 말」을, 제 4부의 「가을 2」, 「시와 철학」, 「시골 풍경」 등을 선별하여 시인의 시 세계를 탐방하였다.
제 1부 봄날의 희망을 노래하다
능소화 붉으레 물든 뜨락에 서면/
폭염이 지열로 녹아/ 짙푸른 사랑 빛으로 여물어 가고//
이팝나무 늦봄이/ 솜털 송송 피워 내고/ 하늘 향해 흰 구름 뭉게뭉게 떠가면/
소망 날개로 저어 그리움 찾아 나서리//
초록 물감 풀어/ 대지 위에 붓칠하면/ 푸른 들녘은 나비 되어 손짓하고/
새소리/ 노란 영혼이 맑은 노래를 부른다//
- 「대지 위 푸르름이」 전문
늦봄을 맞이한 대지 위엔 신록의 향연이 무르익는다. 능소화가 붉은 꽃을 피운 뜰에 나서면 계절은 짙푸른 빛으로 깊어가고 이팝나무가 흰 솜털 같은 꽃을 피우면 하늘엔 흰구름 뭉게뭉게 떠가고 자연과 깊이 교감하는 시인의 마음도 구름 따라 소망이 부풀어 그리움으로 변한다. “초록 물감 풀어/ 대지 위에 붓칠하면/ 푸른 들녘은 나비 되어 손짓”한다는 시적 상상력은 탁월하고 아름답다. 초록 붓칠하는 주체는 봄의 조물주이면서 동시에 시인 자신이라는 이중성 때문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영혼의 화신인 새의 노랫소리가 푸른 대지 위에 맑게 울려 퍼진다. 봄의 풍경을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로 포착하여 서경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연과 잘 동화된 시인의 서정이 그 속에 혼연일체가 되어 나타난다. 늦봄은 계절의 여왕이고,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계절을 노래하고 그렸으되 이처럼 짧은 분량의 시로 늦봄의 계절감을 풍부하게 노래한 작품은 드물 것이다.
새해 새아침을 맞이하자/ 붉게 타오르는 새 얼굴에는 웃음꽃 만발/
태양은 꽃이 되어 피어올랐다//
고결한 빛깔이 선율로 다가와 줄기가 퍼지면/
방사로 퍼쳐 골고루 나누는 새해가 되어/
사랑빛보다 밝은 둥두럿 새하얀 얼굴로 핍니다//
봄꽃보다 곱고 가을 단풍보다 화려한 무지개 빛/
정열보다 붉은 님의 사랑 설렘으로 꽃 피리라//
하늘의 별빛보다 청아하고 한라보다 깊푸르다/
큐피트의 화살보다 더 센 눈빛 발사 온기가 넘치네//
가슴 따듯한 온기로 세상을 밝혀주는구려/ 빛나는 빛의 숨결 숭고하네//
높이 떠/ 누구에게나 등불이 되어 줄 당신은/
먼 길까지 뛰어와 밝혀주던 불빛이 내 앞에도 윤슬로 남네/
그대 손길 아름다워라/ 불타오른 태양은 온기로 남네//
- 「새해 아침」 전문
이 시는 고결하고 숭고한 대상인 새해를 인상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예찬한 작품이다.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새사람이 되고 싶다. 새해 아침 첫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경건하고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가짐이 시 전편에 잘 드러난다. 해는 꽃이 되어 피어오르고, 고결한 음악과 같은 선율로 울려 퍼지고, 밝고 하얀 얼굴로 꽃핀다. 해는 무지개빛이요, 님의 사랑이다. 청아하고 깊고 푸르다. 큐피트의 사랑의 화살보다 더 강렬하다. 세상을 밝혀주는 빛은 숭고한 존재다. 누구에게나 등불이 된다. 해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이와 같이 해의 이미지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변주하면서 시상이 전개된다. 이 시는 마치 테양을 숭배하는 신앙인이 절대자 해에게 바치는 예찬의 시를 연상케 한다. 우리 민족의 선조들이 고대부터 태양을 숭배해왔던 집단적 무의식이 은연중에 발현된 작품이다.
피와 땀방울 수분과 밑거름으로/ 이만큼 잘 자라게 해주신 두 분/
흰나비가 되셨네/ 고마우신 부모님 은혜 마음속 깊이 고개 숙입니다//
체구는 한 줌/ 낮아진 키/ 몸무게는 가벼워 바람에 날릴 정도//
여름날 무성한 고구마 밭이랑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연하디연한 열무는 고구마 잎사귀 속에 숨겨져 있었네/
캐내어 단을 만들어 새벽시장에 이고 지고 가는데/
사람은 없고 공중에 보따리만 송송 걷고 있더라/ 부쩍 준 키에/
그래도 장사씨름대회에 나가면 지지는 않을 것만 같다/
힘은 삶의 무게만큼 늘어난다고 한다/ 새벽을 밀어 올리는 역도산 어머니/
어느 날 나머지 짐을 나눠 들고 나선 나는 지인을 만났을 때/
부끄러움에 짐을 등 뒤로 떨어뜨리고 도망을 쳤었지//
구멍 숭숭난 얼갈이배추는 흰나비가 갉아먹다만 앙상한/ 뼈만 남았네/
열무한테 섞여 시집가던 날/
초여름 밥상에 오른 열무김치에 얼갈이 배추 곁들이면 좋은//
흰나비 한 쌍 하늘로 날아오른다//
- 「흰나비 한 쌍」 전문
오월은 어버이의 은덕을 기리는 달이다. 시골 고향에 사셨던 부모님은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헌신하셨다. 돌아가신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자식은 만물이 회생하는 봄을 맞아 부모님이 흰나비로 환생하는 환영을 본다. 시인 자신의 유년시절, 밭농사 지으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여름날 무성한 고구마 밭이랑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시인은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와 함께 열무단을 이고 새벽시장에 가던 도중에 지인을 만나 도망쳤던 일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는다. 그런데 ‘흰나비’의 의미는 이중적으로 제시된다. 제목과 같이 ‘흰나비 한 쌍’은 부모님의 이미지로서 수미상관으로 제시되지만, “구멍 숭숭난 얼갈이배추는 흰나비가 갉아먹다만 앙상한/ 뼈만 남았네/” 이 시구절에선 얼갈이배추는 어버이를, 갉아먹던 흰나비는 자식을 상징하는 듯하다. 동일한 시어가 문맥에 따라 상대적 의미로 변환되는 것은 고도의 수사적 기교이다. 이러한 표현은 시인의 시적 형상화의 방법이 매우 높은 수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제 2부 고독한 시인과 인간 존재의 실존 탐구
내 젊은 날의 초상화 구름 속에 숨겨 두었지/
흑색으로 점점 이끼만 덥혀 오던 세상/
모든 게 일순간에 사라져 버린 황량한 들판에서/
너털웃음 허공에 뱉어 버리고/
세월을 파먹는 인고의 세월에 흐느낌만 메아리진다//
겹겹이 쌓인 낙엽은 잉크빛 주름을 지우고/
무서운 고독은 어둠을 깔아 정적만이 흐르는데/
겨울밤은 까맣게 타들어 가 가슴 시리다/
초라한 초상화 드러눕히고 바람 소리마저 잠든다//
먼 산은 벌써 흰 눈만 내리고/
서고에 점점 쌓이는 하얀 고독 켜켜이/
오늘 밤도 사랑인 양 그를 안고 뒤척이네//
- 「고독」 전문
위 작품은 흰 눈 쌓인 먼 산을 바라보며 겨울밤 서재에서 홀로 독서를 하는 시인이 지난날을 반추하며 깊은 고독감을 느끼는 심경을 흑백 이미지의 대조를 통해 선명하게 노래한 시다. “내 젊은 날의 초상화 구름 속에 숨겨 두었지/”, 이처럼 꿈에 부푼 젊은 날의 모습을 ‘구름’(시인이 지향하는 세계-김수영 시인의 ‘구름의 파수병’ 참조) 속에 감춰두었으나 부정적 현실을 호탕한 웃음으로 극복하기엔 한계가 있었고 오히려 인고의 긴 세월을 거쳐 “초라한 초상화 드러눕히고” 겨울밤 가슴이 시린 고독을 마주한다. 그러나 철학자 니체가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네 운명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나. 이 말은 비록 삶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자신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마음의 자세를 의미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인은 다음과 같이 고독을 사랑하면서 견뎌내는 방식을 제시한다.
“오늘 밤도 사랑인 양 그를 안고 뒤척이네//”.
어제 그제 그리고 오늘/ 좀벌레 한 마리 모니터 속 출구를 찾고 있는데/
길을 잃고 헤매다가 온종일 굶주리면서 지치지 않네//
너무 작아 돋보기로 그를 따라 나섰네/
어제는 시인을 따라 시를 쓰다가/ 오늘은 네이버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버거울 만큼 넓고 거대한 인터넷 사막을 종횡무진/
경험하지 못했던 길을 진땀 흘리면서/ 경험하고 있다//
그가 태어나 신문물을 접하고 있는 셈/ 가족이 타이른다 누르지 말라 당부했다/
그가 이 넓은 세상에 점 하나로 박제가 된다면/
자국 남아 ‘니’가 ‘나’로 오타로 남을 뻔//
죽이지 않아 다행이다/ 더듬이 팔 다리 형체 뚜렷한 그를 검지로 꾹 눌렀다/
그런데 죽지 않았다 다행이었네//
그는 오늘 지쳤다/ 돌파구를 위해 애쓰는 그에게/
우린 오래 작업하지 않았고/ 생명을 연장시키려 모니터 뜨거워지지 않도록//
온 오프를 반복했다/ 그래도 망망한 인터넷 바다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해 좌절하고만다/ 애닯구나//
다음날 컴퓨터 켜니 이제는 지쳐 낙상하여 죽었나보다/ 안 보이네/
불교에서 살생을 함부로 말라던 약속을 지키려 했다/
길 찾아 헤매다 배고파 지쳐서 죽고 말았지 싶다/
도움 바라던 그의 손길 해결 해주지 못했던 후회/
그는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 점 하나, 한 생명체가 없어졌네/
- 「기상천외하다 - 점 같은 한 생명체-」 전문
이 시는 컴퓨터 모니터 속을 헤매던 좀벌레 한 마리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전개하는 특징을 보인다. 모니터 속에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출구를 찾는 듯 이리저리 헤매는 좀벌레는 컴퓨터 사용자인 시인을 따라 시를 쓰기도 하고 인터넷의 거대한 세계를 정처없이 방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가 이 넓은 세상에 점 하나로 박제가 된다면/ 자국 남아 ‘니’가 ‘나’로 오타로 남을 뻔//했다.”라는 구절에서 ‘니’(객체)와 ‘나’(주체)의 관계가 잘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점 하나에 지나지 않는, 미미한 생명체인 좀벌레라는 대상이 사실은 그의 관찰자이고 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체와 다를 바 없다는 상호 전도 관계가 성립한다. 이 작품은 거대한 우주 속에 ‘점 같은 한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 인간 존재의 미미한 실존을 우의적이고 아이러니 수법으로 보여주는 뛰어난 모더니즘의 시다.
맑고 푸른 냇가로 가자/ 물고기 뛰놀던 곳 노 저어//
연못 사이로 유유히 떠가는 조각배/ 자연이 숨쉬는 우주 공간//
바람은 파랗게 가지를 흔들어/ 푸른 약속 사랑을 속삭이네//
까만 밤 심낭心廊 속 잠재우며/ 고요한 안식安息을 부르며//
아침은 분주하게 금빛을 실어 나르고/ 눈부신 창가로 연인 되어 나비처럼 날아들어/
짝을 이루며 사랑을 속삭이네//
뜨거운 햇살 한 줌 뿌려/ 새살로 깨어난 봄은 큰 기지개로 날개 저어/
푸른 희망을 가지마다 푸릇푸릇 세우고 손짓하여/
푸르른 날 소망 매달아 둔 가지 사이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
금빛 열매 주렁주렁/
그대 삶/ 언제나 종달이 노래로 희망을 연주하네/
물결 위 주름, 만상萬狀은 춤추듯 깨어날 것이네//
- 「만상萬狀」 전문
이 시는 봄의 찬가다. 봄을 예찬하는 시인은 삶을 긍정하고 사랑한다. 겨울잠을 깬 만물이 약동하는 봄이다. 생명의 봄이다. 이러한 봄의 아침을 맞이한 시인은 희망으로 가득찬다. 얼음이 녹아 물고기 뛰노는 시냇가에 나서니 봄바람이 연한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난밤을 마음속 사랑채에 앉히니 시인의 마음은 비로소 안식을 얻게 된다. 아침 햇살이 사랑을 속삭인다. 따스한 햇살이 비취니 온누리의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켜고 담록의 나뭇가지에 푸른 희망이 샘솟는다. 종달새 높이 날아오를 때 또한 희망도 솟는다. 시인의 자연친화적인 삶의 태도가 이 시에서 단적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삶에 대한 긍정과 희망의 자세도 잘 드러난다.
제 3부 자연친화적 삶의 태도와 행복•사랑
귀 기울여 속삭이는 화음에/ 들려오는 소리를 모아/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고 가락 지어/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연의 소리 반주에 딱 들어맞게 울린다//
들판의 곡식이 익어가는 소리/ 곤충들의 속삭임/ 풀잎의 사랑 노래/
작곡가의 능수능란한 작품 농익어 간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더 없이/ 흥겨운 노래가 되고/ 사랑 노래 안겨주는 것이니//
풀잎이 사랑을 하여/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조화로/
생명의 씨앗이 여물어/ 경이롭고 가경嘉慶스럽다//
꽃대를 올리려/ 키를 세우는 풀잎들/ 영원한 사랑의 씨앗을 거두고 뿌린다//
누군가에게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되리//
- 「작곡가」 전문
자연의 아름다움은 특정한 계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제 2부의 「만상萬狀」에서 생동하는 봄을 맞이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제 3부의 「작곡가」에서는 결실의 가을을 맞이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특히 이 시는 마치 악성樂聖 베토벤의 6번 ‘전원교향곡’을 언어로 변환한 것 같다. 그런데 자연의 다양한 소리를 하나의 하모니로 통합하는, 거대하고 웅장한 교향곡을 작곡한 이는 누구인가? 그는 조물주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그의 음악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시인이다. 조선의 정철鄭澈이 가사 ‘사미인곡思美人曲’에서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면 현대시에서 구숙희 시인은 「작곡가」에서 가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작곡가」에서 나타난 “자연의 소리”는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 “들판의 곡식이 익어가는 소리”, “곤충들의 속삭임”, “풀잎의 사랑 노래” 등이다. 이는 경이롭고 즐겁고 경사스럽다.
세월 따라 계절 따라 주름 하나둘 갖다 붙이고서/ 그냥 그렇게 산다네/
어제의 그 낮달이 서슬 퍼렇게 감시하는 바람에/
낯 붉히며 부끄러운 몸짓 감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따금 그리운 이들을 그리워하며 그렇게 산다네//
먼저 가버린 친구를 떠올리며 보고파 울기도 했네/
하늘 문 열고 삐죽 내려다보기도 하는 그들/
오늘은 날씨가 맑아 꿰 비치니 더 그리워진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그냥 그렇게 산다네/
특별한 외출도 화려함이 없이 그저 소탈한 삶 속에서/
의미할 바 없을 것 같은, 있는 듯 없는 듯한 삶/
속죄하는 뜻으로 숙연해지며 살아있다는 것이 미안하고/
숨 쉰다는 것이 죄스럽다네//
- 「그냥 그렇게 산다네」 전문
시인의 삶은 늘상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날이 맑으면 그리운 이들이 ‘하늘 문’을 열어 이 세상을 내려다 보고 “너 어떻게 사니?” 이렇게 물어볼 것 같다.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부지런한 계절은 피었다 지고 주름이 하나둘 늘면서 나이를 먹으며 산다. 그냥 그렇게 산다. 간밤에 쳐다보던 달이 아직도 지지 않고 시인의 강박의식을 자극한다.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자각하게 한다. 시인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가장 진솔하고 겸허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냥 그렇게 산다네.”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며 살아남은 자의 속죄하는 심정으로 “그냥 그렇게 산다네.” 이 시를 통해서 우리는 시인의 소박하고 겸손한 삶의 자세를 알 수 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말대로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는 것”이 구숙희 시인의 서정시의 본질인 것 같다.
정성껏 써 보세요/ 행복해지리라는 믿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보세요/
예쁜 글씨체로 색깔 별 채색하면 파랑 글 노랑 글/ 쓰다 보니 정이 들어갑니다/
행복해지는 것만 같네요/ 사랑이란 글자를 써 보세요 예쁘게 써 보세요/
사랑이 다가옵니다/ 사랑 꽃이 핍니다/ 웃음꽃이 핍니다/
예쁜 꽃이 피고 열매가 되어 씨도 맺힙니다/ 행복은 그런 거군요/
내 마음의 텃밭에 주렁주렁 사랑이 가득/ 가슴에는 사랑이 가득하지요/
마음 밭에 심어 두면 좋겠네요/ 날마다 사랑의 열매가 가득 달린다네요/
영원히 지지 않을 꽃을 심고 꽃 피우면 좋을 거에요//
- 「행복이라는 말」 전문
구숙희 시인은 행복과 사랑의 전도사다. 이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편들 속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다. 마음의 도화지에 행복이라는 말을 채색하면 언제나 행복해지고, 마음의 텃밭에 사랑의 씨를 뿌리면 영원히 지지 않을 사랑의 꽃을 피우게 된다고 한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바로 ‘사랑’이라고 답한다. 시인은 우리의 마음에 행복과 사랑이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왜냐하면 행복과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가치가 사실은 가장 위대하고 보편적인 가치임을 역설하기 때문이다.
제 4부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잠자리가 물속 자맥질/ 투명 빛 말간 노트에 점 하나를 찍었네/
비행기가 날아간 긴 연필 자국/ 여기저기 솜 설탕, 연기 길게 내뿜어/
회색 도화지에 파란 색연필 색칠하면//
호수 속 데칼코마니/ 말없는 마음 인쇄 받아주었네/
옥구슬에 티까지 그려진 마음 필기/ 그대 안고 호수는 잠들고 만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잠자리 파란 물속에/ 잠겨 잠들고 마네//
- 「가을 2」 전문
이 시는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미지즘의 수법으로 묘사한 뛰어난 서경시다. 이 시집의 대표작으로 추천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이 시의 주된 소재는 가을날의 특징인 잠자리, 투명한 가을 하늘, 맑은 흰구름, 호수 등이다. 여기서 “투명 빛 말간 노트”는 높푸른 가을 하늘이다. 잠자리 한 마리가 물속에서 자맥질하는 해녀처럼 가을 하늘을 난다. 노트에 점 하나를 찍은 것 같다. 푸른 하늘에 비행기가 긴 연필 자국을 남기며 지나가니 하늘이 더욱 높고 푸르다. 솜사탕 같은 구름이 여기저기 떠 있다. 이러한 한가롭고 평화로운 가을날의 풍경을 아무 말없이 바라보던 호수는 고요한 마음속에 그대로 인쇄하듯 데칼코마니의 수법으로 대칭을 이루며 포용한다. 공중을 날던 잠자리가 호수 속에 비치니 마치 물속에서 노는 것 같다. 편안하고 고요한 정밀감靜謐感을 느끼게 해주는 빼어난 서경 묘사다. 서경시는 일종의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시상전개 방식에서 후정을 생략한 것과 같다. 전반부의 경치 묘사만 갖고도 시인의 정서를 얼마든지 미루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낙엽지는 공원 숲속 길을 걷는다/ 숲은 나에게 속삭인다/
바스락 이야기하는 그들 소리/ 귀를 기울여보자//
시를 뱉어내고 있었다/ 철학을 논하며 인생과 같이/
새들의 이야기 들으며/ 호젓한 시간을 따라//
철학으로도/ 풀 수 없는 문제들 수두룩/ 묘한 심리적 갈등을/
술로도 풀 수 없는 고뇌/ 숲에다 살짝 놓고 간다/ 시로 빚을 수 있을지//
세상 돌아가는 것이 요상스럽네/ 죽기 전에는 그 꼴 못 보겠다며/
제각기 큰 소리 지르네/ 철학 심리로 바꾸어 보려는 건 나 아닌가/
어느 가수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떠난지 벌써 천오백오십년 된 테스형에게 묻던데/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는데/ 시인인 나는/ 철학관에나 물어나 볼까//
- 「시와 철학」 전문
가을 낙엽 지는 공원의 숲속 오솔길을 산책하는 시인은 마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와 같이 시와 철학 문제를 사유한다. 자연은 시詩가 아닌 것이 없는데 인간 사회는 불협화음으로 소란스럽다.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인문학적 사고(철학과 심리)로 해결해 보려는 시인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현실과 철학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시인은 안타까워한다.
곶감 말리는 시어머니 손길에서/ 대청마루 무대가 훤히 열리며/
하루는 그렇게 넉넉함을 엮어 간다/ 뒷결 메뚜기 설움 길게 고하고 떠나려 하는데/
볕 좋은 햇빛 쨍그렁 마당가에 가을은 갈색 향기로 날리고/ 물들고/
암탉이 쪼아댄 모래 조각 든 뒷짐 진 할아버지의 손/
모이 들었나 뒤따르는 녀석들 분주하고//
조각가 솜씨로 만든 담뱃대에 무늬가 예쁘네/
냇가에 반짝이는 사금 주우러 길을 나선다 바둑이도 쫄랑쫄랑/
언덕 위 고삐 맨 소가 바둑이 부러워서 목 젖히고 바라본다/
풀 뜯던 염소가 엄마를 불러본다 한가한 들녘은 소리 없이 자란 풀로/
넉넉한 먹이로 내어준다//
휴가 내어 찾아온 고향에 아들이 아버지와 투망을 던져/
물고기 잡아오고 다슬기로 호박 된장국 끓여 내어/
쌈장 만들어 풍성한 점심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정겨움이/
즐거운 악보 달린 소리 되어 매아리친다/
옥수수 하모니카 협주곡의 추억에 잠겨 아롱진다//
호조롬 한복 자태로 시어머니는 딱 한 달만 치매를 앓다가/
아흔셋에 요강 속 똥 주무르시던 걸 단 한 번에 들킨 사연/
담 넘어 사는 동네 언니가 보고 비워드렸단다/ 그 정도는 양반이지/
텅 빈 마당에 멀리 기적소리와 풀벌레 소리로 가슴을 찌르니/
빈 뜰 여치는 시어머니를 쫓다가 그리움을 삭이는 듯 노래한다/
한복차림의 이 집 안주인인 시어머니 모습이 배어든 장독대에는/
어머니 손수 간수 빼낸 소금이 이십여 년 항아리 속 잠자다/
다시 이십 년 흘러 사십 년 훌쩍 넘는 세월을 쌓고/
켜켜이 소금 시루떡이 되어 간단다/
어머니의 온기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네//
다소의 신경전이 벌어졌어도 그때가 좋았다/
구부정 시어머니와 미운 정 고운 정 들어 보는 데서는 야단치시더니/
시누이들에게도/ 동네 회관에 나가서는 우리 막내며느리 최고라 자랑하시던 분/
지금은 많이 그립습니다//
- 「시골 풍경」 전문
자연의 풍경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전원田園과 조화를 이룬, 다정다감한 가족들의 삶도 아름답다. 수십 년 전 가족들의 모습이 생생한 동영상으로 기억에 남아 그립다. 대청마루에서 곶감을 말리는 시어머니, 담뱃대를 물고 뒷짐 진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따르는 닭들, 사금이 반짝이는 시내와 강아지, 소, 염소들. 지금도 눈에 선한 광경들이다. 아들과 아버지, 물고기와 다슬기 넣은 호박 된장국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즐거운 점심식사를 한다. 막내 며느리의 시각으로 포착한 시어머니의 사연이 가슴 아프다.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간 것이 되었으나 기억엔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