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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Nov 23. 2017

니 새끼 내 새끼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그 날이 코앞이다. 날이 밝으면 새벽같이 나서야 할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까지 초 긴장상태로 빠져든다.


 예비고사에서 학력고사로 지금의 대학 수학능력시험 즉, 수능에 이르기까지 이름이나 유형도 바뀌어 왔지만 학생들의 애환은 변함이 없다. 내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그러한 고통을 다 치렀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이기에 나는 아직도 그 연장선상에 서있는 것이다. 지난밤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전화기에 연두색 불빛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유난히 키도 덩치도 작아 꼬맹이라 불리는 학생이 보낸 문자이다. ‘시험 잘 치고 오겠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무척이나 불안했던가보다.


 삼십여 년을 겪어 오는 일이지만 좀처럼 담담해지지는 않는다. 젊었을 때는 열정이 지나쳐서 내가 학생들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학생들의 학습태도와 몇 가지의 행동들로 그들의 진로를 섣불리 판단했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들로부터 선생님의 조언으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는 말이라도 듣게 되었을 땐 기고만장하기도 했다. SKY를 몇 명 보냈느냐의 결과로 나의 가치는 올라갔고 소위 유명한 선생님으로서 위치를 굳혀갔다. 그러니 공부 잘하는 학생이 더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모범생에다 공부를 스스로 알아서 했던 내 아이가 수능을 망쳐버렸다. 돌이켜 보면 대범하지 못한 아이의 성격과 그래도 내 눈에는 모자라 보이기만 했던 학습량으로 어느 정도 예견되는 상황이었기는 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었다. 원하던 대학을 못 간 아이도 실망이었지만 엄마인 나는 내 인생을 망친 기분이었다. 다음 해 만성 소화불량의 고통을 겪은 끝에 아이는 무난히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고, 나는 한동안  가시지 않는 아픔을 겪으면서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내 자식같이 생각한다던 학생들이 결국은 내 아이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 아픔을 겪고 나서야 학생들이 받을 상처가 더 애틋하게 여겨지고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재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웃집 아주머니를 통해서 만났었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경제적인 것은 물론 심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던 때였다. “선생님 우리 재희가 그냥 결석 안 하고 마음 붙이고 다닐 수 있도록만 해 주세요”라는 재희 어머니의 말씀이 너무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마냥 위로만 받을 나이는 아니라서 진로 문제와 앞으로 헤쳐 나갈 삶에 대해서도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었다. 의외로 재희는 밝았고 열심히는 아니어도 꾸준히 공부를 해나가서 지금은 졸업 후 취직이 잘 된다는 과에 들어가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참 많은 학생들과 만났다. 학업 운이 없다는 점쟁이의 말에도 꿋꿋이 삼수 끝에 원하던 과에 들어가 소위 ‘사’ 자 직업을 가지게 된 학생, 문제아로 찍혀 결국은 퇴학을 당하고 멀리 뉴질랜드에 가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 세상에서 영어가 제일 싫은데 그래도 잘하는 과목이 영어밖에 없어 영문과에 갔다는 학생, 재수 삼수를 해도 실패하고 결국 군 복무를 마치고 와서야 뜻을 이룬 학생 등, 수없이 많은 아이들과의 인연을 생각해 보면 소중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 그저 존재 자체로도 그지없이 소중한 아이들이었다. 나와 내 아들 딸이 겪어 왔고 대입제도의 경쟁이 존재하는 한 겪어야 할 일들을 앞에 두고 이 아이들은 어떤 심정일지. 짐을 나누어져 주지 못함에 안타까울 뿐이다. 


 특별히 어떤 정해진 바는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열의만 있다면 좀 늦을지는 몰라도 반드시 그 꿈은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그저 평범한 말을 지금 시험을 눈앞에 둔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그것으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오늘 하루도 아무 일 없이 그저 자기 실력 오롯이 다 쏟아 기대한 바를 이루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의 이 한걸음이 앞으로 가야 할 그 많고 많은 길의 첫걸음일 뿐이지만 이 한 자국이 없다면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에 힘들고 지치지만 용기 내어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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