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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Apr 18. 2019

꽃은 피고 지고

 세상 만물의 더운 기운이 꽃으로, 여린 싹으로 터져 나오는 이 봄날에 주변인 둘이 며칠을 사이로 세상을 떠났다.

꽃이 피면 지게 되고 생명이 태어나면 죽게 마련인 것이 세상의 이치이지만 각자의 가슴에 차지하고 있던 떠나는 이의 자리를 비워내는 데에는 약간의 의식이 필요하다. 장례식장에 모인 여러 사람들은 각자 고인과의 인연에 따라 과거를 회상하고 앞으로의 삶을 다짐한다.


  현생에서의 존재를 증명할 몸뚱이를 태우는 한 시간 반을 기다리며 대기실에선 조곤조곤 얘기하는 소리와 숨죽여 우는 흐느낌이 간간히 들린다.

갑자기 “종호야, 니가 와 거기 있노 얼릉 나오너라 종호야 종호야” 하는 애를 끊는 듯한 외침이 들린다.

‘요즘 누가 저렇게 곡을 하노?’ ‘우리까지도 불안하게 하네.’등 여러 말들이 귀를 스쳐가지만 장대 같은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내는 노모에게는 그것이 곡이 아니라 피를 토하는 통곡 이리라.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 통곡은 이제 공감을 얻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시대를 모르는 늙은 노인네의 넋두리로 여겨진다.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깔깔대며 뛰어노는 어린 아기도, 모든 의식을 차질 없이 해 내어야 하는 굳은 얼굴의 상주들도, 혈육이 아니라서인지 애틋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멀뚱한 시선들도 같은 때 같은 장소에서 살다 간 이의 흔적을 소중히 여기는 산 자의 의식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또 한 죽음은 그 누나를 통해 전해 들었다.

마흔이 넘은 동생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버지가 물려주신 집에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술만 마시다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한다.

형식적이나마 울어줄 사람도 없이 빚쟁이들만 들락거리는 병원 영안실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는 누나는 혼자서 동생을 보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봉분을 높이 쌓고 커다란 비석을 세우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은 사람도, 울어줄 사람 하나 없이 서둘러 떠나야 했던 그 사람도 한 줌의 재로 남겨져 자연의 품 안으로 돌아갔다.

장례식장을 다녀온 사람들은 잠깐의 비통함을 느낀 후 일상으로 돌아간다. 살아 있음에 안도하고 아직은 죽음이 저 멀리 있을 것이라 자위하면서 말이다.


  갑자기 140여 년 전의 작가 몽고메리의 [사랑의 유산]이 생각난다. 글에서 작가는 대대로 혼인으로 맺어진 두 집안의 가보인 항아리를 누가 받을 것인가를 유언으로 남기는 한 여자를 중심으로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생전에 시크하다 못해 독설도 서슴없이 뱉어내던 그 인물을 통해 가보를 둘러싼 사람들의 탐욕과 위선을 재치와 위트로 표현했다. 백 년도 훨씬 전의 사람들의 삶도 우리의 삶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아니다. 달라진 것이 확실히 있긴 하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죽은 이가 후손들에게 하고자 한 말-서로 사랑하며 살아라-를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기라도 하는데 지금의 우리는 더 단단한 가면으로 자신을 가리면서 있지도 않은 사랑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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