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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수아 Jan 30. 2023

부모의 연약함이 자녀의 강함이 된다

지난해 여름,

한복 더위에 둘째를 낳았다.


 둘째가 내일모레면 만 6개월이 된다.

인생 180일차, 나 또한 아들 둘맘 180일차다.


둘째를 낳고 5개월만에 복직을 했다.

복직 전까지 이 어린 핏덩이를 놔두고 어떻게 일을 해야할지 전전긍긍- 하루종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린 아이를 집에서 봐줄 이모님을 구하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재정 또한 많이 들었다.


어찌어찌 나의 복직에 맞춰

남편의 출퇴근 시간과 이모님 스케줄,

첫째아이 어린이집 등하원 등 셋팅을 해놨는데 어이쿠.

어두운 표정으로 퇴근한 남편 왈

'인천'으로 발령이 났단다.

그것도 당장 며칠 후란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제 갓 태어난 애기가 있는 아빠를

수원-인천, 하루 120키로를 매일 출퇴근하게 만든

남편의 상사가, 남편의 회사가 야속했다.

내가 셋팅해놓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내 마음은 요동을 쳤다.


새해가 밝았고, 복직을 했다.


결국 남편은 첫째 아이의 등원과 하원

모두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이건 오롯이 내 몫이 됐다.

이모님은 둘째아이만 집에서 케어하는 조건이다.


아침 7시.

회사에서 이것저것 업무지시가 내려오는 시간.

그 전에 미리 일어나 내 출근 준비를 마치고

업무를 좀 보다보면 첫째 아이가 일어난다.


씻기고 밥먹이는데 말 그대로 전쟁, 등원전쟁이다.

미운세살 미친네살을 거쳐 이제 막 다섯살이 된-

아니, 설에 떡국을 두 그릇 먹었다고 여섯살이라고 우기는 거침없는 다섯살 엉아에게

"혼자 옷 좀 입어봐, 왜 혼자 밥을 못 먹니.

이제 다섯살 형아가 됐잖아. 신발 좀 혼자 신어봐"

미간은 점점 찌푸려지고 말 중간중간 한숨이 뒤섞인다.


이러는 와중에 울리는 벨소리, 회사 선배의 전화.

심장이 쿵쿵 시계만 자꾸 쳐다보게 된다.

이모님 오실 시간을 매분마다 체크하다보면

둘째가 깨버리는 거다.

조금 더 자주면 좋으련만...

밤새 흠뻑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나면

갑자기 배고픔이 훅 밀려오는지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분유를 타고 수유를 하는데 늘 이때 응가를 하더라.


드디어 이모님이 오셨다.

미처 다 먹이지 못한 첫째 아이의 밥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겠다는 의지로

일회용 비닐팩에 남은 밥을 담고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까지

그 밥을 꾸역꾸역 먹인다.


아무리 등원전쟁이어도

어린이집 문 앞에서 앞이빨이 쏙빠지도록

꽉 안아주는 건 그래도 잊지 않는 엄마다.

내새끼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 되거라.


이건 애초에 내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나봐

넋이 나간 얼굴로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둘째 아이의 돌봄을 위한 이모님을 구한 상황에서

남편의 양육 공백을 메꾸기 위해

새로운 이모님이 또 필요한 상황.

인천 출퇴근으로 인해 안그래도 고정 지출비가 확 늘었는데 양육 비용은 여기서 또 추가가 된다.


나라에 애국했건만 잘 했다 칭찬은 못받을망정

현실은 전쟁터도 이렇게 참혹한 전쟁터가 없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기자인 내가 기사로 암만 떠들어대도

나에게 닥친 현실을 돌파할 도리가 나도 다.


남편 회사 사장에게

지금 내가 얼마나 애기를 힘들게 키우고 있는지 아시냐고,

한 기업의 대표로서 저출산이라는 큰 사회적 문제에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갖고

회사를 운영하셔야 되지 않겠냐고,

두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 워킹대디로 살아가는 현실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냐고

구구절절히 눈물의 편지를 써서 부치고 싶은 심정이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평상시보다 업무가 휘몰아치던 오전

이날 하필 이모님이 아침에 늦으실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아침부터 몸과 마음이 정말 바빠

너덜너덜해진 그런 날

퇴근 후 첫째 아이가 올해 옮기게 될

어린이집 상담 일정까지 있었다.


원에 대한 설명이 담긴 PT가 한 장 한 장 넘어간다.

시립어린이집이라 그런지 프로그램이 알찬 느낌이다. 아이들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가진 원장님도 마음에 든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쾡하게 설명을 듣던 내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주륵 흐른다. 아이의 내면을 볼 줄 아는 교사가 되겠습니다-하시는데 눈물이 자꾸만 난다.


유독 몸도 마음도 무진장 힘들었던 날,

눈에 보이는 걸 쫓아 사느라

겨우 48개월된 아이를

험상궂은 표정으로 대하던 나에게 뼈때리는 말이었다.




일도 자녀양육도 어렵다.

그런데 그게 제일 잘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여유롭지 못해 아침부터 날카로운 엄마가 될 때

하원할 때 어린이집 신발장에

우리 아이 신발만 덩그러니 남겨진 모습을 볼 때

5개월밖에 안 된 아이를 남의 손에 하루종일 맡기는 것

우리 아기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

집에 와서도 노트북을 켜고 기사를 쓰느라

쫑알쫑알 말하는 네 살 아이의 세상에

더 귀기울여주지 못한 것

때론 너무 힘들어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대한 날


잠든 아이의 얼굴을 짠하게 바라보며

미안함에 눈물을 훔쳤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시기

사회에서는 허리로 한창 일을 많이 하는 시기.

이 시절이 어렵지만

제일. 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염려말고

한 걸음씩-

나도 남편도 오늘 하루를 걸어가본다.


복직 후 한 달이 되어간다.


부모의 연약함이 자녀의 강함이 된다.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

내가 직접 해주지 못하는 것.

우리 아이들이 직면하고

스스로 풀어가는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은 성장할 것이다.


그러기에

부족함을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기에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도 된다.


더 나은 부모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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