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과 질투
금요일과 주말에는 늘 새벽 5시에 잠에 든다.
평일에 못 누렸던 행복을 작은 휴대폰 화면에서 찾겠다고 발버둥 쳐왔다. 진정 휴식 인지도 모를 이 시간만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직장과 직장 상사들에게 받은 스트레스에 잠겨 하루를 낭비하다 뒤늦게 행복을 누리려고 하는 내 모습이 너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올해는 감정 소모를 정말 많이 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푸는 법을 몰라 7개월 동안 허우적대다 가끔은 분노가 폭발해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했다.
올 한 해 내 하루 루틴은 이러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직장 상사에게 반복적으로 들은 폭언을 풀기 위해 저녁에는 보통 친구들을 만나 회사와 상사 욕을 쏟아냈다. 그들을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려 한 건 아니지만 의도치 않게 그렇게 돼버렸다. 소수의 친구들은 어느새 지쳐 보였다. ‘그냥 버텨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퇴사해.’ 이미 내 마음이 내린 무의식의 결론을 제삼자에게 들어버리자 괜히 허무했다.
난 이기적인 사람이라 공감을 해주지 않는 친구들에게는 서운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힘들다고 토로할 땐 속으로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 더 힘든데” 하며 겉으로만 공감해주는 척했다. 어느 순간 사회적 가면을 쓰고 선택적 공감을 하는 나 자신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어졌다.
결국 이런 모습을 대면한 뒤 남는 건 자책이었다. 모진 말을 생각 없이 뱉어낸 상사를 하루 종일 손가락질하다가 자기 전에는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느꼈던 이기적인 마음에 대한 책임도 다 나에게 있는 것만 같았다. 진정성 없는 내 마음에 크게 실망하고, 가식적인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우울해졌다.
내가 일을 못해서, 내가 실수를 해서, 내가 그런 폭언을 들을 만한 행동을 해서. 내 잘못이니까 난 그런 말 들어도 싸.
어느 순간 나 자신을 가스 라이팅 하고 있었다. 나를 갉아먹는 이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소비를 하고,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낭비했다. 물질적으로 맥시멀리스트가 됐지만 반대로 마음은 공허해졌다. 그 누구도, 무엇도 나에게 원동력이 되지 못했다. 스스로 가져야 할 자신감을 찾지 못하면서 완전히 붕괴됐다.
왜 나만 도태되고 있을까, 난 왜 이 조직문화에 적응을 못하는 걸까. 친구들은 회사가 이상하다며 같이 욕을 해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문제가 뭔지 머리를 쥐어짜 내도 알 길이 없었다. 남 객관화는 잘하면서 정작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이직 성공 소식, 스카웃 소식 등이 들려오면 내 감정은 더 괴로워져만 갔다. 질투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축하할 수가 없었다. 잘 되는 게 배 아픈 것과는 다른 유형의 질투였다. 나는 나의 힘듦에 너무 깊게 잠겨 있어 남의 짐을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유가 없다 보니 질투가 일차적인 감정이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에 또 실망감과 역겨움을 느껴 집에 와서 또 자책했다.
기형도 시인은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했는데, 나는 인간의 본능적인 그 감정에 부끄러움과 모멸감을 느껴 원동력을 얻기는커녕 더 작아져만 갔다.
그러다 ‘축하 막차’를 탔다. 늘 소식이 들려온 후 마지막으로 축하를 해줬다. 내 진심이 탈을 쓰고 그 사람에게 전달되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상대에게서 돌아오는 진심 짙은 감사인사는 날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자책과 질투, 상반기에 가장 많이 느꼈던 두 감정으로 나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인정한 셈이라 지금은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인정의 단계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내가 인지하는 나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드는 과정이 있어야 나를 받아들이는 건데, 그게 안 되다 보니 늘 나를 단점 투성이로 보는 것 같다.
남은 하반기 감정 결산은 좀 더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 질투를 원동력 삼고, 분노를 노력으로 전환해 진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나의 소중한 감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