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제니 May 02. 2023

죽음, 가족제도의 비합리를 메꾸는 마지막 퍼즐

예전에는 가족을 그냥 가족이라고 불렀고

결혼은 결혼이라고 했지

결혼제도, 가족제도라고 칭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종종 결혼과 가족을 '제도'라고들 부른다.


결혼과 가족은 주어진 생태계가 아니라 인간이 창조한 제도이며,

자기자신은 그 제도를 관조하고 판단하는 더 상위존재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워딩이다.



결혼과 가족이 원래부터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불가결한 생태계가 아니라

사람들을 편하게 통치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고안해 낸 제도에 불과하다면

결혼과 가족제도 없이도 죽을때가지 일상처럼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젊을 떄, 건강할 때, 일할 수 있을 때에는

언뜻 그 생각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이란 때론 거추장스럽고 내 시간을 빼앗는 귀찮은 존재일 수도 있다.

인간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면

가족이란 존재는 그 성인에게 다앙햔 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나도 여지껏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 있었다.

일단 커서 한번 성인이 되면

나에게는 평생 의무만이 부여되는 것이구나 하고.

떄로는 그 의무들이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버겁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이모의 투병기를 보며

그 생각이 180도 전환되었다.


가족에게 의무만 수행하는 시기도 길어야 2-30년 안팎이다.

인간은 다시 한번 나약해지고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생존을 보호받는 존재가 된다.


인생은 도돌이표다.

무능하고 무력해서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유년시절을 지나

성년이 되면 자기 혼자 홀가분하게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진다.


서양에서 온 개념인 '독립'이란 그럴싸한 단어에 현혹되어

부모의 울타리로부터 독립해서 자기 한몸 잘 책임지고 잘 살면

그것이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 스스로를 내던지기도 한다.


노년이 되어서도 자식에게 엉겨붙고,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하는 인생은

한국의 전통문화가 아니라 구습일 뿐이며

실패한 인생인 것처럼 간주하려는 암묵적인 사회분위기 역시 강력하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선택할 수 없고

환경과 미래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다.


그래서 가족을 일군다.


나이 들어 늙고 병들었는데

혼자라면

답이 없는 상태에 빠진다.


이 경우 돈은 큰 쓸모가 없다.

돈이 있어도 돈이 해낼 수 있는 선은 한계가 있다.


노년에는 중병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저하 때문에 죽는다.


생명력이란 가족과 지인, 친구들과의 상호소통, 보살핌, 돌봄 같은 것들로부터 얻어지는 생명에너지 그 자체다.

자신이 살고 싶다는 욕망, 살겠다는 의지가 병도 이겨내고 건강도 관리해낼 수 있는 것이다.


혼자가 된 개인은 삶에 대한 갈망이 없다.

이 경우 넉넉한 통장의 잔고도 큰 쓸모가 없다.


젊은 사람의 우울증은 우울증으로 끝나지만

노인의 우울증을 생명력 그 자체를 갉아먹는다.

뇌까지 같이 총기를 잃으니 총체적 난국이다.



저하된 판단력과 인지능력, 삶에 대한 약한 의지,

노화된 신체, 방치된 일상 속에서 사람은 죽는다.


사람들에게 희노애락을 던져주며

그 중에서도 유독 굴레와 멍에를 지우는 것같이 느껴지는

그놈의 가족제도가

노년의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죽음이 바로 가족제도라는 비합리를 메꾸는 마지막 퍼즐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