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제니 Aug 12. 2023

어느 워커홀릭의 변명

말기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의식 과잉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너는 소중하다
대접받을 가치가 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할 필요가 없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라

이런 개인의 내면을 탐험하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하여
최종적으로 개인으로 하여금 '가치소비'를 하게끔 유도한다

초기 자본주의에서는 생필에 관련된 상품이 아니면 존재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은 생필이 아니면 관여하지도, 관여할 여력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말기 자본주의에서는
개인의 의식세계가 지나치게 높아져

정말 좋은 제품, 나에게 꼭 맞는 제품을 찾아 탐험하는 행위 자체도
현명한 소비행위를 하는 소비자의 아이덴티티임을 부추긴다

소비에 관련된 정보를 편집하고 재가공하는 행위 자체에도
부가가치가 생성될 정도이다.

지금은 21세기다.
인간사회가 구축할 수 있는
기술이나 생산력은 상향평준화된 지 오래다.
시장에 나와 있는 왠만한 제품들은
퀄리티가 어느정도 보장되어 있는 중상급 품질이 보장된 제품들이다.
최저가로 출시된 제품을 구매해도
돈 버렸다는 느낌을 줄만한 제품은 이제 시장에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개인은 소중하고 인간은 가치로운 존재이므로
아무거나 살 수 없고
아무 판매자에게나 소중한 내 돈을 건넬 수 없다.

개인은 소비자로서 끊임없이 타자를 판단하고 평가하면서
자기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 같은 우쭐한 기분을 만끽한다.
평가자와 피평가자의 관계에서 평가자의 위치가 한 계단 높아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는 신분계급 상 왕의 위치이며
아무리 크나큰 다국적 기업을 운영하는 진성 귀족들이라도
소비자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을 신분의 아이덴티티를 버리기 힘들다.

소비는 또 다른 차원의 생산을 위한 밑거름이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소비 자체가 목적이고 결과인 세상이 되었다.
경험을 통해 다른 생산적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함이 아니라
경험 자체를 소비하며 경험 통장에 경험 누적잔고만을 쌓는 행위를
생산이라고 굳게 믿고 싶어하는 거대 소비자 집단이 형성되었다.

계속 배우고 경험하는 자기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소비자들.
허나 그러고선 공허하고 텅빈 자아와 마주하게 되는 개인들은
알 수 없는 근원적 분노에 시달리고
여러가지 사회현상을 발생시킨다

인간은 소비만 할 수 없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반드시 '생산성'에 대한 내면적 압박을 받게 되는데
소비만 하는 자아는 자기자신이 영 탐탁치 않게 보이고
발전이 없고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알바를 해본 전업주부들은 공감할 것이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만 생활할 때에는
아무리 가정이 경제적으로 풍족해도 자아의 허기가 존재하지만
단돈 50만원이라도 제 손으로 벌 때에는
아무런 고민과 번뇌가 차고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주어진 대로, 하라는 대로 살아야 했던 과거 사회에서
개인들은 시달림에 대한 고통은 있었을 지언정
무기력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결코 위선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보면
기본적으로 풍족하고, 기타의 모든 걸 채우며 살아가는 개인들이
끊임 없이 무기력해지고, 또 동시에 위선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많이 관찰된다.
변명이 너무 많아지고
결국은 아무 행동하지 않고 시간만 낭비하는 모습들
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아직'은 아니라고 하는 모습들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모습들


자아를 다독거리라는 메세지는
너무 시달리느라 자아를 돌아볼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힐링메시지였으나
요즘엔 진짜 아무것도 안하는 경험누적러들이
자신을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위선의 그늘 밑으로 숨기 위한 방패로 사용하는 모습이 너무 많이 보인다.

아직 시작도 안해본 사람들이
자아를 소중히 대하라는 강연장에서 왜 눈물을 흘리는 지 
솔직히 잘 이해가 안간다

괴로움을 느끼는 역치가 지나치게 낮아져
별일 아닌 상황에서도 자아가 지나치게 타격을 입고
이를 힐링하기 위해 더 강한 수단이 필요해지는 듯 하다.

나는 힐링이란 단어 자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나에게 필요한 힐링은 문제 상황의 근본적 해결일 뿐
가벼운 기분전환 같은 것은 나를 전혀 힐링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해결되면 쉬고 놀고 먹고 쓰지 않아도 저절로 힐링이 된다.
고민하던 일이 풀리면 스트레스는 다 날아간다

소비로 인한 힐링은 자아가 실현되는 순간(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의 극한의 희열의 100분의 1도 못미친다

법륜스님 강의 그만 찾고 나가서 일하시길
단돈 10만원이라도 제손으로 벌어
그 소중한 돈을 소중한 사람에게 써보길

힐링x100000의 쾌감을 얻게 될 지어니



이상 워커홀릭의 변명

매거진의 이전글 오지랖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