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가도 모를 것이 바로 나의 재능이다. 아직까지 확실치 않은 것도 바로 나의 재능이다. 뚜렷한 재능이 없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뭐든지 쉽게 잘하고, 금새 흥미가 식어버린 후, 다른 흥미거리를 찾아나서는 철새같은 습성 때문이다.
어렸을 때에는 나의 이런 습성 덕에 꽤나 자만심에 빠지기도 했다. 무엇이든 쉽게 해내고, 남들보다 더 높은 고지에 금새 오르니, 콩나물 시루속 경쟁사회 안에서는 꽤나 자뻑에 심취할만도 하지 않았겠는가. 콩나물 시루 속 아이들에게 '이렇게 수많은 것들 중에서 너는 뭘 잘할래?'라고 묻는 듯한 주제변주의 일상 속에서 무엇이든 금새 잘하는 어린 아이는 난 뭐든 잘한다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살 수 밖에.
그렇다. 난 위안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남들이 평생에 걸쳐 겪어보지도 못할 인생 최악의 고난을 태어난 지 20년 도 채 안되는 시간 안에 다 겪어버렸으니. 믿을 것은 나 자신밖에 없었던 어린시절.
냉소적인 태도로 서술하지 않으면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유년시절. 그리고 그 이후의 20년.
차라리 성인이 된 후의 20년은 고생이기보다는 성취의 연속이었기에 열매 또한 달았다.
'누가 봐도 넌 이과인 아이'라는 6학년 담임선생님의 판단.
'넌 문과다 문과야'라는 엄마의 한마디로 결정되어버린 나의 실제 진로.
아이를 키우며 다시금 깨닫게 된 내 안의 과학적 탐구심.
주위 어른의 나에 대한 판단이 갈팡질팡했던 것도, 실제 내 진로 또한 뒤죽박죽이었던 것도, 이제 돌이켜보니 뭐든 잘하는 내 재능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잘하지는 못하는 뚜렷한 한계를 가진 나의 재능. 두루두루 잘 알고 잘하는 제너럴리스트는 될 수 있지만 한 분야에 특별한 재능과 몰입력을 가진 스페셜리스트는 결코 될 수 없는 나.
특정 과목에 쏠림없이 모든 과목을 고르게 잘했던 국민학교,
영어에 매달리고, 또 한편으로는 A+수학을 독학했던 중학교,
과학의 재미를 깨달았던 고등학교,
생각보다 국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수능과 대학교,
그리고 선택된 전자회사라는 진로. 너무나 잘 맞았던 전자기기 마케팅이란 직무.
그 이후 엔지니어의 손가락을 점점 닮아가는 일상 속의 독학들.
아이를 키우며 가르치다보니 신선한 재미로 다가오고 있는 과학과 탐구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자신있는 요리
꼭 해보고 싶었던 만화가라는 직업
아이의 성장과 발맞춰 써나가고 싶은 동화들
지금 가장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작가라는 길
내가 가진 자원과 사회적 니즈가 맞아떨어지는 교육사업이라는 새로운 진로
혼란하다 혼란해.
30살하고도 몇년이 지나서 알게 된 나의 '좋은 머리' 때문일까?
불면증 치료 때문에 찍어본 뇌파에서 나타난 좋은 뇌.
우울증 상담 과정에서 의사들로부터 들어 알게 된 좋은 머리.
어릴 때 남들보다 피아노 진도가 빨리 나갔던 것도,
무엇이든 눈으로 보면 얼추 비슷하게 따라그리는 능력이 있던 것도,
가수가 내는 소리나 외국인이 내는 발음의 실낱같은 차이 하나하나가 들리고 구분되었던 것도,
음악적 재능이 아니었고, 미술적 재능이 아니었고, 외국어 소질이 아니었다.
멘사수준의 고지능 아이큐는 아니지만,
그냥 좋은 뇌. 뭐든 해낼 수 있게 만드는 머리.
아이큐만큼 높게 나오는 이큐지수.
감당할 수 없을만큼 많은 아이디어가 샘솟지만 그래도 전형적인 좌뇌형인간.
결국 모든 것이 재능이지만 그 무엇도 재능이 될 수 없었던 이유가
밸런스가 좋은 뇌 덕분이었다는 것이 지금에야 이르러 내리게 된 결론이다.
하지만 알쓸신잡 수준으로 많은 지식을 담고 있는 뇌도 아니고,
당장 어딘가에 마구 쓰여지고 있는 뇌도 아니다.
매일매일 팽글팽글 회전하는데에만 철저히 사용되고 있는 아까운 뇌일 뿐.
자신있고 재미있는 분야는 철학적 사색과 가설세우기, 그에 따른 논리적 검증.
그러면서도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하는 말단적 희열성애자.
인생의 40년을 특정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쓴 듯하다. 다만 좋은 뇌를 가지고 있다는 명제 하나만 남았다. 그리고 매일같이 퇴화하고 있다는 느낌 역시 사실일 것이다.
몇일간이지만 뇌과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불끈 솟기도 하고,
현실의 나태함과 게으름이 또 금새 관두자는 생각을 데려오기도 한다.
39세.
버킷리스트를 채울 것이냐
인생의 가지치기를 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할 나이인 것 같다.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보라는 조언도 솔깃하지만
쓸데 없는 것을 쳐내고 특별한 것에 집중하는 게 옳다는 누군가의 판단에 더 신뢰가 간다.
역시나 이상주의보다는 현실주의에 귀기울이게 되는 좌뇌형인간인 것인가.
아련하게 꿈꾸며 사는 여자가 될 팔자는 못되는 듯 하다.
자꾸 온라인 공간에 글을 써대는 이유도 문학적 감수성 때문이 아니라 머리 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철학적 생각의 정리욕구 때문이다.
문학적 감상력은 없지만 스토리 창작력은 또 풍부하다.
오늘도 이렇게 나 자신에 대한 정리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