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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쟝쟝 Jun 29. 2021

지금은 지금을 산다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관계에서 나는 거절 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거절당할 수도 있는 존재다,라는 것을 이제야 본격적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난 좀 바보였다. 색맹은 테스트하기 전까지 자기가 색맹인지 모른다던 데 나는 관계맹 비슷한 거였던 것 같다. 다른 관계가 가능할 거라는 것을 몰랐으므로 아주아주 밀착된(솔직한, 안 불편한, 거리 조절이 잘 안 되는 가까운) 관계만이 ‘진짜’ 관계라고 여겼다. (그런 관계들에 언제나 술이 함께였음은 최근에 더 뼈저리게 깨달아가고 있는 사실이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듣고 또 할 수도 있다 여겼으므로 인간관계 나름 자신 있어! 뭐 이렇게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마저 바보였다. 맹. 맹추. 모른다는 걸 모르는 진짜 바보.


꼭 친밀하지는 않더라도 나와 연이 닿은 어떤 사람을 내가 먼저 차단할 수도 있다는 걸 안 것은 채 5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벌써 5년이 흘러있네?) 전문가에게 한 달치 월급쯤을 쓰고 난 뒤에야 나를 감정적으로 착취하고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하는 사람들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때도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알고는 있었다. 나한테 너무 소중한 거라서 그게 그거 일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던 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는 연락을 받지 않아 보았다. 문자도 씹어보았다. 어색했다. 혹시 길 가다 마주치면 변명할 거리들을 수백 가지 생각했다. 헤어짐의 초기 단계에는 그랬다.(이젠 아니다,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다) 충분히 끊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는 데, 내 쪽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었다.


솔직히 쓰자면 나는 누구에게라도 그랬다. 살면서 내 선에서 먼저 '얘랑은 절교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어본 것은 스무 살 때 정말 친했던 초등학교 동창 딱 한 명이었다. (심지어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고, 오해였다.) 언제나 열려있었던 나는 처음에는 좀 친해지기 어려워도 친해지고 나면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편이었다. 굳이 닫을 필요성을 못 느끼는 나를 사람들은 머물렀다가 떠나가곤 했다. 항상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 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나는 떠나보낼 수는 있는 사람이지만, 떠날 수는 없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했다.


어렵다고 느꼈던 것은 제멋대로 내 경계를 넘나들면서 휘젓고 어느 날 보니 멀어졌다 또 느닷없이 나타나서 헝클어 놓고 가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열에 아홉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나는 언제나 맏이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손 윗사람들에게 서툰걸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더란다. 영 아닌 것 같을 때는 사소한 반항들도 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예민하고 복잡한 게 문제가 되었다. (지금 와서 알게 된 나라는 인간은 나무보다는 부레옥잠(ㅋㅋㅋ) 같은 사람이고, 생각이 복잡하긴 하지만 예민하지 않고 둔감한 쪽에 가깝다.)


“(95) 그들은 심오하지 않다. ‘피해자’에게 관심도 없다.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이 약자가 될 뿐이다. 그들은 단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They do because they can.) 인간은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다.  (…)  왜 나를 떠났을까? 왜 내가 아닌 그(그녀)지? 이건 우문도, 문장도, 질문도 아니다. 그냥 잘못된 진술, 나를 괴롭히는 지배 담론이다. 트라우마는 ‘가해자’때문이 아니라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순간 시작된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전직 연인들은 그저, 이별이 한 인간의 정치학과 윤리학을 정확히 보여주는 지표일 뿐임을 인식하면 된다.”


언제나 내게서 부족점을 찾았다. 상처 받은 건 나였는 데, 상처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르겠다. 가끔 그 시절의 나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 때의 나는 정말 깔깔깔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진지하게 생각하며 정색하는 것은 혼자 있을 때뿐이다. 아주아주 어렵게 마음속으로 ‘이번 생에 우리 인연은 여기까진가 봐요’ 다시는 안 볼 결심을 하고 난 뒤에야 그것들이 일종의 가스라이팅인 걸 안다.




나는 후회하는가? 약간. 스스로에게 해명하고 싶은 건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취약했을까? 하는 질문. 어쩜 그 질문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취약했던 것은 개인의 특성(이건 읽고 쓰면서 찾아본다)도 있지만 분명 구조적인 부분(이건 분노스럽지만 이해한다)도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라도 내가 되면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알고 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나는 나를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몰랐기 때문에 그도, 그들도 알 수가 없었다. 근데 그게 나였고, 부정? 부정할 수는 없고, 분노? 글쎄 그냥 그건 나니까. 그때 그건 나니까. 그건 비극이지만 역시 웃긴 비극이랄까. 웃게 된다.


웃지만 헛헛한 나는. 나는 일기를 쓴다. 나야.   나를 몰랐니.  내가 나를 몰랐을까. 그때의 나야. 나는 나를 알았어야지. 나라도 나를 알았어야지. 또 다른 내가 말한다. 모르긴 뭘 몰라. 알았지. 딱 그만큼을 알았겠지. 더 알려고 노력 안 했던 거지.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사랑받고 싶었을테니까. 나를 아는 것보다 그게 훨씬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


요즘엔 덜 쓰는 편인데, 한 일주일 신나게 나여, 그때 왜 그랬니를 쓰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왜’를 묻는 빈도가 매우 줄었다는 거다. 가끔 트리거가 눌리면 떠올려지긴 하지만,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해 더는 사로잡혀있고 싶지 않으니까다.


“(101) 그러나 애초부터 원인은 없었을뿐더러 있다 해도 대단히 복합적이다. 혹 인과 관계가 밝혀졌다 치자. 하지만 그 뒤에는 ‘왜 하필 나지?’라는 더 치명적인 의문이 기다리고 있다. 악의 활동, 피해가 발생하는 시간은 짧다. 그러나 악의 이유를 묻게 되면 영원히 피해자가 된다. ‘왜’라고 질문하는 그 순간부터 ‘피해자 됨’의 진정한 의미, 불행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당하는 것을 넘어 사로잡히는 것이다. 악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피해자의 자아 존중감을 파괴하는 악의 본질이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무관심으로 악의 기능을 중단시키자. 그럼, 누가 악과 싸우나? 그건 악 자신이 할 일이다.”  


나 자신의 문제에서만 빼고(어쩌면 그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별로 도망쳐본 적이 없었다. 누구에게도 잠수 탄 적 없음과 어떤 일에서도 도망친 적 없음이 나의 자랑이었다. 뒤늦게 모든 질문에 대답할 필요도, 모든 연락에 답장할 필요도, 모든 약속을 지킬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고, 진짜 진짜 도망쳐서 안 되는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그렇게 분노해마지 않던 잠수타는 것이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일 때가 있다는 것도.


그걸 알게 되는 순간 잠정적인 약속처럼 챙기고 있던 굉장히 많은 관계들과 이별했음은 덤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았어도, 그 시절의 나는 모두들을 다 만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듯. 지금의 나 역시도 끊고 끊고 끊어도 또 끊어낼 관계들이 생겨나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이제와 새삼스럽게 재평가하게 되는 의외의 좋은 사람들도 있다.




“(107)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개 자기 자신, 가족, 연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연락해줄 사람은 거리에서 처음 만난 이라도 지금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여기 없는 이’는 소용이 없다. 그런데 심지어 나는 돌아가신 엄마, 죽은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고 답한 것이다.
인간이 옆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하는’ 이유는, 시간(미래나 과거)을 매개로 한 권력욕 때문이다. 오지 않을 미래의 권력을 위해 현재 소중한 사람을 버리는 영화 속의 광해군이나 존재하지 않는 엄마와 과거에 살고 있는 나나, 어리석기가 한량이 없다.”


그 많은 이별에도 불구하고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재고해본 적 조차 없었던 마음속 깊이 소중하게 여겨온 관계가 있었다. 나는 변했고, 내가 변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 입을 떼는 순간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마음속으로만 이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도 바로 알아차렸다. 관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언제나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다. 태도가 변하지 않은 것은 나였고, 관계를 박제해두려 했던 것도 나다.


재빨리 사과했다. 네가 그대로 일 거라고 생각했어. 사과를 하고 나니 이건 내가 손절당해도 할 말 없겠구나 싶었다. 아니 어쩜 이미 진즉에 그쪽에서 먼저 나와 멀어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조금 어렵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아, 그렇지. 인간관계에서 거리두기는 나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 내가 떠나온 만큼 너도 떠나왔을 것이다. 서글펐다. 조금 눈물이 났다. 헤어짐-멀어짐을 받아들일 때가 온 것이다.


 “(285) ‘미안’의 사유가 구조적 원인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구조에 대한 개인의 반응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실제 상황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 진짜 미안할 때는 할 말이 없거나 멀리서 오랫동안 미안해한다.”


친구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줬지만 복잡한 것은 내 습벽이다. 아니다. 언어에 기대는 것이 내 습벽이다. 도서관에서 한동안 필요 없어 밀쳐둔 심리 에세이들을 또 실컷 찾아 읽었다. 머리로는 다 알아도 여전히 난 실전에서 관계맹이다. 별로인 사람들에게 단호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보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금세 또 내 시선으로 넘겨짚고 있다. 공감도 잘 못해주고, 위로는 더욱 못한다. (네, 제가 관계에 대해 열심히 학습하고 있으나, 역시 그것마저 학습으로만 저장되는.. mbti에서 T-사고형-입니다...)




다육이 화분 하나를 죽이고 말았다. 뭔가 말라 보여서 물을 듬뿍 준 게 문제였다. 말라 보였던 녀석은 쏟아지는 물공격에 까맣게 타버린 것 같은 모양새로 죽어버렸다. 엄마가 숟가락으로 하나씩만 주라고 했는데, 봄이 돼서 마른 건가? 마른 게 아니라 애당초 물을 자주자주 줘서 썩어가고 있었던 거였다.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더 신경 쓴게 잘못이었을지도.


내가 화분을 대하는 방식이 관계를 대해온 방식과도 닮았다는 통찰에 닿았다. 아파보이고 시들어 보이면 더 자주자주 많이 신경을 쓰고, 진지해지고 심각해지고, 그게 종종 어떤 이들에게는 피로감을 줬다는 생각. 말 좀 해주지. 니 문제 아니라고. 나 자신 없어서 더 그랬던 건데. 어쨌든 이건 모두 과거의 이야기고, 난 다육과의 사람들과는 친할 수가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건 좀 알겠다.


집에는 다섯 개의 화분이 있다. 한 달에 한번 물을 줘야 하는 식물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듬뿍 줘야 하는 화분도 있는 데, 물을 아주 조금씩만 상태를 봐가면서 줘야 하는 종류의 다육이도 있었다. 가장 먼저 제일 예쁜 다육이를 보냈다... 흑흑.. 이젠 네 그루의 화분이 남았다. 물을 애정이라고 놓고 보면, 나는 선인장과 인 것 같다. 대체로는 방치일 정도로 내버려 두다가 어쩌다 한번, 그러나 줄 때는 아주 철철 넘치도록 많이.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빈번히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으면 부담스러워서 진득진득해지다가 뿌리부터 썩어 흘러내려 버릴 것이다.


나는 한번 듬뿍 받은 애정을 마음에 머금고 힘들 때는 조금씩 그걸 꺼내서 쓰며 살아간다.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맞다. 솔직히 세상 사람들 모두 선인장 같았으면 좋겠지만, 세상엔 다육이도 있고. 요즘엔 이쁜 다육이가 대세인 것 같기도..?


“(76) 사람마다 인간관계 방식이 있다. 나는 깊고 짙고 부담스러운 만남을 원한다. 그러나 추구할 뿐 실현된 적은 별로 없다. 그런 관계로 살기엔 세상은 너무 바쁘고 나는 참을성이 없다. … 이해관계든 진실한 관계든 어차피 모든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영원한 관계는 두 사람이 동시에 동작을 멈추거나 끝없는 자기 갱신의 매력이 교환될 때 가능하다. 전자는 죽는 것이고 후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넘쳐났던 요 얼마간 과거의 관계 맺기 방식과 이제야 알게 된 나의 패턴을 추적해보면서, 내가 생각만큼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어떤 적극적인 노력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관계도 있다는 걸 체감했다. 한때 나는 이 관계를 잃으면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고까지 생각했었다. 팔은 무슨. 고통의 강도로 치자면 아직 떨어질 때가 아닌 나흘 된 딱지를 뜯는 정도의 조심스러움과 신경 쓰임과 통증이었다. 이내 새살이 차오를 것이고, 우리는 멀어진 채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없었다가 있었다가 흔적을 남기고 이내 없어지는 것. 이것이 인연의 본질이었는 데, 미련해서 답답하게 뿌리내린 채로 오래오래 혹은 영원히 거기에 있고 싶어 했던건가 보다. 그래도 조금은 서글펐다.


서글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한때 나에게는 내 몸처럼 아꼈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근데 그건 그때의 이야기고. 나는 그 시절을 떠나왔으며, 종종 그 이별들을 헤아리면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지금을 산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 없던 시절들에 대해 잊을 순 없을 것 같다. 그 시간들을 보낸 건 분명 나였으니까.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어리석고 멍청했을까. 왜, 왜... 왜 그렇게 한심했던 거야, 대체 왜..  나는 삶의 다른 면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분명 그랬다. 그때는 그게 나였다. 내가 그런 나였던 게 좀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고 지금도 내내 가슴이 아픈 채로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지금은 지금을 산다.”
- 다락방,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이 상태에 대한 글을 쓸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터에 친애하는 알라디너 다락방님의 서재에서 위 문장을 읽었다. 그녀의 글이 가리키는 것과 마지막에 쓰인 문장이야 말로 지금의 내 상태를 가리키는 문장으로 훔쳐다 쓰기에 완벽하다는 곤란하고 행복한 감동에 휩싸였다고 한다. 후후.


202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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