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님과 준기의 신혼여행

<언제라도 경주> 못 다한 이야기 #2

by babonabi

왜 들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카세트. 반듯하게 입고 있는 정장과 앳된 얼굴이 낯익은 듯 낯설다. 곱네. 사진 속 엄마, 아빠는 가난과도 어려움과도 거리가 멀어 보였다. 사진 보는 걸 좋아하던 아이는 사진 속 그곳이 어딘지 궁금했다. 젊고 예쁜 엄마 아빠가 신혼여행을 떠났던 곳. 이름만 들어봤지 사진 속 그곳이 경주였다는 건 그곳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2박 3일의 짧은 신혼여행. 충남 금산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얼마나 걸렸으려나. 아침 일찍 출발해도 오후에나 도착했을 텐데. 한복 입고 찍은 사진도 있던데, 한복 입고 갔으려나? 들고 갔던 카세트는 그 당시 유행이었다고 한다. 역시 낭만주의자 아부지.


“그래서 들고 가서 돌아다니면서 들었어?”
“아니~ 그냥 폼이지. 숙소 들어가서 틀어놓고 그랬어.”
“사진은 누가 찍어줬어? 카메라가 있었어?”
“카메라가 어딨어. 일회용인가, 빌려 갔든가 그랬어. 카메라는 88올림픽 때지. 그 당시 32만 원인가 주고 샀어. 니 아빠가 하도 사고 싶다고 해서. 그 당시 32만 원이면 얼마냐. 근데 그 카메라 니 오빠가 갖고 나갔다가 고장 냈나, 니가 갖고 나갔다가 고장 냈나 그랬어.”
“기억이 없어. 나 아닌가 봐.”
“말도 마,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 간다고 하는데 잔치 끝나고 치울 게 많잖아. 대구 고모가 빨래하려고 하니까 니 할머니가 뭐라는 줄 알아? ‘니 새언니 돌아오면 같이 하라’ 그랬어. 내가 그러고 살았다.”
“...할머니도 참 어지간하네. 할머니답다.”


11월 초. 한참 가을걷이로 바쁠 시기. 스물넷, 스물여덟의 엄마, 아빤 결혼을 했다. 가진 게 많지 않은 시골 살림. 마음은 제주도라도 가고 싶었을 텐데 2박 3일 경주로 짧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기분 좋게 출발해도 모자를 판에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초를 쳤다. 그런 말들은 가볍게 털어내고 갔으면 좋겠지만, 말 한마디에 잠 못 자는 우리 엄마. 지금도 그 말을 기억하는 걸 보니 여행 내내 순간순간 그 말이 떠올랐겠지. 그래도 장난기 많은 아부지가 좀 풀어줬으면 좋겠다. 행복하게 해주겠단 그 마음의 첫 시작과도 같은 여행이었으니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결혼도 빨랐고 계절도 빨랐던 47년 전. 흑백이지만 맑아 보이는 날. 곱게 화장을 하는 엄마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게 바쁘고 힘들어 화장할 시간도 없었다. 기억이 많이 남아 있기 시작한 나이쯤부터 엄마 얼굴은 선크림 바를 생각도 못 하고, 할 시간도 없어서 늘 까만 얼굴에 기미 투성이었다. 그런 미래는 상상하지 못했을 곱고 고운 엄마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아부지. 씨익 웃으며 “우리 각시 이쁘네~” 하며 웃어줬으면 좋겠다. 불국사로 올라가는 경사진 길을 다정하게 손잡고 가 줬길 바라본다. 빌려 온 카메라를 누군가에게 건네주며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그 손끝에 마음을 담았길. 내가 보고 있던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며 행복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눴길. 곱게 물든 불국사의 단풍보다 상대방이 더 아름답다 생각했길.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행복했던 신혼여행이었길 바라본다.


“신혼여행 가서 뭐 먹었는지 기억나?”
“산채비빔밥. 산채비빔밥 먹은 건 기억나. 아우, 50년이나 지났어. 기억이 나겠냐?”
“그러네. 난 어제 일도 잘 기억 안 나는데. 그래도 기분은 기억나잖아. 어땠어?”
“뭘 어때. 신혼여행인데. 좋았겠지.”
“아빠도?”
“나? 나는 엄청 좋았지~”


사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는 어렴풋이 안다. 빌어먹을 사랑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지만,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내가, 오빠가 엇나가지 않고 자랄 수 있었던 건 그 빌어먹을 사랑 때문이었다. 학교 가기 전 새벽, 쇠로 된 파이프에 내려앉은 서리가 녹기 전에 비닐하우스에 비닐을 쳐야 했다. 오빠와 나는 바쁜 시기엔 새벽에 일을 하고 학교에 다녔다. 방학이면 다른 지역에서 인삼밭을 하는 부모님을 따라가,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남의 집에서 며칠씩 덧밭을 쳤다. 못하는 일도 없었고, 3학년 때부터 알아서 밥을 차리고 먹었다. 자식에게 그렇게 일을 시키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나.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들었으니 그랬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그때 그 기억이 그리 힘들지 않게 남아 있는 건 그 엄마 아빠의 사랑 탓. 사랑 덕분이 아니라 사랑 탓이다. 물론 내가 받은 사랑이 제일 크지만, 둘이 맨날 투닥거리면서도, 못 살겠다 하면서도 서로 사랑하는 그 모습이 내겐 가장 컸다.


그 사랑 탓에 잘 자라, 그들이 떠났던 가을. 그들이 사진을 찍었던 그곳에 서 있다. 그 풍경 속에 스물넷, 스물여덟의 정님과 준기를 상상하며. 불어오는 바람 속에 엄마 아부지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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