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룩 Apr 29. 2021

일단, 저는 Motivator입니다.

N잡러의 장황한 자기소개

"너는 하는 일이 뭐야?"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부터 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이었습니다.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친한 친구들, 심지어 부모님까지 묻곤 합니다. 장황한 설명을 하다가도 결국 "이런저런 일" 한다고 말할 뿐이었죠. '이런저런 일'을 대변할 만한 단어를 찾는 것은 20대에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져있습니다. 사실 아직 찾는 중이에요. 그건 아마도 하는 일 모나 자신으로 대입하기 때문일 겁니다. 무엇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기도 합니다. 마치 나의 정체성을 한 가지 직업으로 선언해버리면 다른 들의 비중이 작아질까 하는 사려 깊은 자존감도 있는 거죠.


 이제는 사람들이 장황한 설명을 듣고 수많은 질문과 대답으로 나의 일을 이해해주길 바라지 않게 되었어요. 결국 프리랜서, N잡러라고 하죠. 다행히 적이 있는 만남에서는 가지고 있는 정체성의 다각면 중 하나 슬그머니 꺼내 보이곤 합니다.  대체로 러닝 퍼실리테이터고요, 전문 강사-사회자이기도 합니다. 다른 축으로는 공론장, 문화 기획자이기도 해요.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 사회적 경제인때도 있고요. 시각 디자인 작업합니다. 종종 미술 작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스토리텔러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언젠가 화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그림도 배우는 중입니다. 브런치에 글 연재를 시작하는 순간 작가가 될 수 있겠죠. 태생적으로 흥미로운 것들을 긁어모으는 아키비스트입니다.



 하나의 직업을 갖게 되는 과정은 놀라운 우연성과 노력의 산물입니다만, 때로는 나 스스로의 선언이 큰 몫을 차지하기도 하고요.


 꽤 오랜 시간 동안 시험이나 자격증, 혹은 취직 등으로 직업을 취득하는 과정이 나의 직업을 선언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월급을 주는 '사장님'이 직업을 메뉴얼로 만드시기도 하죠.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 자신있게 나의 전문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전문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누군가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제게 날아온 "너는 무슨 일을 하니?"라는 질문에 장황한 설명을 붙였던 것도 아마 이런 환경 때문이겠죠.


스스로 자존감을 챙기기 위해,

전문성을 인정하기 위해,

그 전문성을 더 갈고닦기 위해,

"나는 N잡러다!"라고 선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지수 N이 가지는 가능성과 스펙트럼 중 나에게 해당하는 교집합들을 나열하는 것이 시작이었죠.

 

 저는 우연한 기회와 살뜰한 노력으로 러닝 퍼실리테이터로서 강의와 교육과정 컨설팅, 학습 프로젝트 과정을 설계하고 지원하는 일들을 해오고 있어요. 지역 주민들의 공론장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네트워킹하는 모델을 고민합니다. 내가 자란 지역에서 자립을 꿈꾸며 동네 청년들과 문화기획, 교육 사업을 꾸려가는 협동조합을 함께 운영하고 있지요. 도심 속 작은 마을에 있는 청년 창작 공간 '작당'의 공간지기이기도 합니다. 7년, 군입대 시기를 제외하면 5년 차 프리랜서입니다.

  

 하지만 역시 나의 일을 한 단어로 축약하고 간략하게 정체성을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는 줄어들지 않네요. 프리랜서로, n잡러로 나를 대변하기에 그 단어가 갖는 숭고함과 비장함이 조금 만족스럽지 못했거든요. 프리랜서는 요 이상으로 낭만적이, N잡러는 가벼워 보였죠.


 20대 끝자락,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지금까지 쌓아온 일과 경험들을 돌아보니 하나의 중요한 맥락이 잡힙니다. 저는 사람들을 동기부여하고 그 의지를 새로운 실천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것이 퍼실리테이션이고 워크숍이고, 네트워킹이고, 컨설팅이고, 문화기획이었습니다. 경험의 연대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Motivator(동기부여 요인을 설계하고 촉진하는 일)로 정리하곤 합니다. 

 

 일단, 저는 Motivator입니다. 창직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나의 경향성을 담은 상징적인 단어일 뿐일까요? 그래도 나라는 사람의 20대 이정표를 세웠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봅니다. 꽤 명확한 구심점을 잡아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어렴풋한 관성으로 모티베이터라는 윤곽을 잡아가니 그 중심에 작은 이정표를 남겼습니다. 


 저의 본캐는 '얼룩'입니다. All Look; 모두와 마주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호칭이죠. 얼룩이라는 이름으로 작업을 하고, 이 담벼락에도 글을 남기겠습니다.


 퍼실리테이션, 문화기획, 프로젝트, 미술 작품으로 만나온 사람들, 이야기들, 경험들이 아카이빙 될 겁니다. Born to be 키비스트 구체적인 실천과 전문성담은 내용이기도, 성장 과정에 형성되는 일의 원심력이 새겨진 나이테가 되기도 하겠죠.


 굳이 말하자면 N잡러의 구심점을 추적하는 구구절절한 기록들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