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룩 Oct 24. 2021

<뮤지컬 헤드윅> 사랑이라는 충만한 이름으로.

얼룩의 그림 _ Hedwig, The Origin of Love.

뮤지컬을 본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애초에 공연 자체를 많이 보지 않는다. 공연, 특히 뮤지컬을 관람하는 일은 대체로 타의 의존한다.  전시는 혼자서도 그렇게 곧잘 찾아가면서 공연은 꼭 누군가 등 뒤를 떠밀어야 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명성황후'를 보았고, 20대가 넘어서도 부모님이 구한 티켓으로 '그날들' 뮤지컬을 접했다. 2020년 영국에 방문했을 때 의례 보았던 '라이온 킹', '위키드', '제이미'는 모두 후회 없는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자부한다. 어쨌든, 살면서 뮤지컬은 고작 다섯 번 밖에 보지 않았던 내가 주변 지인들의 강력한 추천과 직접 티켓을 예매해준 사려 깊은 애인 덕에 여섯 번째 뮤지컬을 보았다. 헤드윅이다.


 뮤지컬이 끝나고 이번 시즌 헤드윅을 두 번 보려고 티켓을 추가로 미리 구매했던 현명한 애인에게 물었다.


 "다음 공연 날짜가 언제야?"

 안타깝게도 이번 시즌엔 헤드윅을 보기 어렵게 됐다.


 살면서 이만큼 충격을 받았던, 여운이 남았던 공연은 본 적이 없었는데. 더 보고 싶다.


 앞으로 N차 관람 미리 예약이다.



 매력적인 두 주인공 헤드윅과 이츠학은 오직 두 명이서 모든 이야기를 채운다.  두 인물의 삶은 헤드윅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화려한 장치나 앙상블의 도움 없이 온전히 헤드윅과 이츠학의 하모니, 만담, 퍼포먼스가 전부다. 헤드윅은 관객석으로 난입하여 춤도 추고, 대화도 나누고 격정적인 춤을 춘다고 하던데. 이번엔 코로나 거리두기 조치를 지키느라 호응은 박수와 발구름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몸이 근질거리던지. 소리 지르고 싶어 안달이었다.


 헤드윅과 이츠학이라는 인물을 빚어내는 두 배우의 내공은 정말 경이롭다. 대극장을 꽉 채운 관객석이 아니라 소수의 몇몇 관객들이 모여 앉은 소극장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마치 진짜 헤드윅의 마지막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이 된 것 마냥 몰입하게 된다. 나는 이규형 배우와 김려원 배우가 연기하는 무대를 보았다. 공연이 끝나고 혼신의 힘을 다한 배우들의 모습에 한번 더 감동을 받고, 다른 배우가 담아낼 헤드윅과 이츠학이 궁금해졌다.

  

 헤드윅은 마치 아름다운 무지갯빛을 내는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가는 것처럼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려한 빛을 내 얽혀있는 실타래를 조심스럽게, 때로는 과감하게 풀어 외면에 숨어있던 본질로 다가간다. 화려하게 꾸며져 있던 실타래는 마지막에 온전히 풀어져 내면을 드러낸다. 2시간의 긴 스토리텔링에서 헤드윅깊은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을 향하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멋지고 화려한 첫 등장보다 맨 마지막 꾸밈 없이 서있는 헤드윅의 모습이 더욱 빛이 났다. 처음 화려한 퍼포먼스에 놀라고, 헤드윅의 이야기에 울고 웃다가 마지막엔 결국 나 스스로에게 연민과 위로를 던지고 있더라. 공연을 보는 내내 헤드윅을 위로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위로의 대상이 나 자신으로 환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공연의 거의 첫 부분에 헤드윅은 "The Origin of Love"를 불렀다. 오랜 구전 전래동화를 읊어주는 헤드윅의 목소리에 눈물이 흘렀다. 해와 달, 그리고 땅. 소년과 소녀의 경계가 없는 모호한 세상의 이야기였다. 자유로웠고 온전했던 우리의 존재가 갈라져 불안과 고독 속에 공허한 반쪽을 찾으러 다닌다. 사랑은 정말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으나 그것이 남과 여로 구분되면서 온전함을 잃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우리 모두의 존재였던 것이다.  


 우린 스스로를 정의내리고 또 그 선택을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아간다. 남자면 남자답게. 여자면 여자답게. 한국인이면 한국인답게.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하시오"라는 서술형 문제에 정해진 답을 써야 하는 세상이다. 열린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틀린 정답이 있는 세상. 성실하고 겁 많은 우리는 모두 틀린 답을 피하고 숨기면서 살아간다.

 


아주 오랜 옛날, 구름은 불을 뿜고

하늘 넘어 높이 솟은 산

오랜- 옛날

두 쌍의 팔과 두 쌍의 다리를 가진 사람

하나로 된 머리 안에 두 개의 얼굴 가진 사람

한 번에 세상 보고 한 번에 읽고 말하고

한없이 큰 이 세상 굴러 다니며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사랑 그 이전.

the origin of love (the origin of love-)

the origin of love (the origin of love-)


그 옛날 세 종류 사람 중, 등이 붙어 하나 된 두 소년

그래서 해님의 아이

같은 듯 다른 모습 중 돌돌 말려 하나 된 두 소녀

그들은 땅님의 아이

마지막 달님의 아이들

소년과 소녀 하나 된

그들은 해님 달님 땅님의 아이

아- 아- the origin of love-


이제 불안해진 신들

아이들의 저항이 두려워 말하길

“너희들을 망치로 쳐 죽이리라 거인족처럼”

그때 제우스는

“됐어! 내게 맡겨 그들을 번개 가위로 자르리라

저항하다 다리 잘린 고래들처럼”

그리곤 벼락 꽉 잡고, 크게 웃어대며 말하길

“너희 모두 반쪽으로 갈려 못 만나리 영원토록”


검은 먹-구름 몰려들어 거대한 불꽃 되고

타오른 불꽃, 벼락 되어 내리치며 번뜩이는 칼날 되어

함께 붙은, 몸 가운데를 잘라내 버렸지

해님 달님 땅님 아이들

어떤 인디언 신, 토막 난 몸을 꿰매고

매듭을 배꼽 만들어

우리 죄 다시 생각게 해

오 사이러스 그 나일의 여신 폭풍 일으켜 세워

거대한 허리케인, 갈라지는 하늘

검게 쏟아지는 폭우, 거침없는 파도에

흩어져버린 우리

끝없는 절망 속, 마지막 애절한 소원

한쪽 다리와 눈만은 제발 남겨 주시길-


나는 기억해 두 개로 갈라진 후

너는 나를 보고 나는 너를 봤어 널-

알 것 같은 그 모습, 왜 기억할 수 없을까

피 뭍은 얼굴 때문에, 아니면 다른 이율까

하지만 난 알아 니 영혼 끝없이 서린 그 슬픔

그것은 바로 나의 슬픔, 그건 고통

심장이 저려오는 애절한 고통, 그건 사랑

그래 우린 다시 한 몸이 되기 위해 서로를 사랑해

그건 Making Love, Making Love


오랜 옛날 춥고 어두운 어느 밤

신들이 내린 잔인한 운명

그건 슬픈 얘기 반쪽 되어 외로워진 우리

그 얘기, The origin of love

That’s The origin of love


뮤지컬 헤드윅, The origin of Love 가사(한글)




캔버스에 아크릴. 2021.10. 얼룩. <헤드윅>


 뮤지컬 헤드윅은 '경계'에 대한 이야기다. 자연스러움을 막는 인조적인 경계에 대한 이야기. 성별, 독일인과 유대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세상을 구별하는 흑백논리와 그를 지탱하는 강력한 사회 규범. 그리고 규범의 울타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을 조롱하듯 헤드윅은 유쾌하게 경계를 넘나 든다. "the origin of love"에 등장한 제우스와 신들이 행한 온전한 한 사람을 여러 갈래로 찢어버린 경계 말이다. 우린 본디 온전하였지만 그것을 막는 이념과 논리를 만들었고 그 구분 안에서 우린 모두 깊은 상처를 얻어왔다. 헤드윅과 이츠학은 그 엉터리 구분을 뛰어넘는다. 성별과 민족주의를 초월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선택은 개인의 치열한 삶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였다. 기어코 살아내기 위해 경계를 넘나들고 풍자를 일삼는다.


 2시간의 긴 시간 동안 우린 헤드윅의 서사를 이해한다. 클라이맥스에서 그동안 일부러 외면을 화려하게 꾸미던 헤드윅은 가발과 옷을 벗어던진다.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헤드윅인지, 한셸 슈미트(헤드윅의 본명)인지, 토미 노시스(헤드윅의 과거 연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단지 경계를 허물고 온전한 사랑을 추구하는 영웅의 모습이다. 눈 화장을 짙게 하고, 머리엔 하얀 십자가를 그린 오색찬란한 모습으로 서있다. 우린 그 현장을 함께 했다.


 사랑이라는 온전한 이름으로. 



작가의 이전글 모든 그림은 자화상 아닌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