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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차영수증 Mar 02. 2023

모습_____#1 사회중년생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40~50대에게서, 특히 그 나이대의 남성에게서 보이는 모습들이 있다. 그들에게서 은은한 저녁 노을빛 지는 조명 아래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때까지 먹지 못할 정도로 고운 음식을 즐기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대신 효율 좋은 LED 형광등의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밥집 안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이나 뜨끈한 국물 음식을 소주와 목구멍으로 껄떡껄떡 넘기는 모습. 또 그 목구멍으로 ‘너 참 좋은 놈이야.’라며 어쩌다 오글거리는 말이 튀어나오는 모습, 오랫동안 수도권에서 직장 생활하느라 잊어버렸던 아련한 사투리가 묻어나는 말투로 ‘하 나 그 새끼 X나 짜증더라니까’라며 상사와 거래처 욕을 하는 모습. 그리고 혀가 기름진 안주로 범벅이 미끈거려 발음하기도 힘든데, ‘너 내가 진짜 고마워하는 거 알아?’라는 수사의문문은 똑바로 발음하는 모습. 


 인생의 변동을 겪고 나름 자신이 얻은 경험과 연륜도 다른 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모습을 갖췄지만, 그들도 아직 경험하지 못했거나 보여주지 못한 모습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다른 이, 특히 가족이 상처받지 않게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블라인드(직장인들을 위한 익명 커뮤니티 앱)와 사회초년생에게서 직장에서 배운 것들에 심취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대학교 졸업 전후로 또 막내생활을 시작하며 회사에서는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게 된다. 효율성 고려와 해결책 모색이 대표적이다. 집단 내 수많은 이들이 효율성 고려와 해결책 모색을 위해 그 좋은 두뇌를 가지고 각축을 벌일 때 폭발하는 불꽃의 모습은, 사회초년생들의 마음을 빼앗기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 모습에 심취하게 되면 그동안 부모와 친구와 연인으로부터 받았던 사랑과 상호작용의 기억들이 무의식 어딘가로 푹 꺼져버리고, 효율성 고려와 해결책 모색이 초자아가 되어 그들의 진로를 결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회사 밖 관계도 이 두 요소를 기반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연인이 고충을 이야기할 때면 그 고충이 인생에 얼마나 효율적인 경험을 전달해 주는지(그 고충을 이력서에는 쓸 수 있을까? 그걸 쓰면 서류전형은 붙으려나?라는 질문들), 고충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지를 안건으로 상정한다. 그리고 “그래서 너 어떻게 할 건데?”라는 결론이 도출이 된다. 그때부터 연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마음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게 되고, 그들은 ‘도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 화를 내는 거지?’라며 사랑과 관계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사내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던 거래처같이 끊어버려야 하는가 고려를 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고민이 아니라 고려를 한다.



 육체적으로 장성했던 그들이 이제 사회적으로도 장성하여 중년이 되어 배우자와 10대 자녀가 있을 때가 되면, 자녀들의 고충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안건으로 상정해버린다. 본인들도 10대였던 때가 있었겠지만, 회사 생활에 심취한 나머지 기억을 마음 어디에 보관했는지 잊어버렸다. 그 당시 10대의 대화 방식을 알기 위해서는 장롱 한 구석에 박혀서 산패(酸敗)되어 버린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지만, 과거 회상은 시간 낭비로 치부해 버리고 회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효율성을 고려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래? 그런 친구는 그냥 관계 끊어버려. / 그래도 사이좋게 지내봐 / 성적 올리려면 이렇게 좀 해 봐 / 그래서 너는 뭐 하고 싶은데?” 대화가 아니라 악명 높은 미국 공항의 입국 심사가 되어버린 모습. 신속히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2차 검문대로 가서 정신 수색과 정신 교육을 당하는 모습. 아직 사회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10대들에게는 이런 모습들이 혼란스럽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효율성과 해결책 둘 중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고 심문이 종결되었을 때 ‘너도 이 나이가 되면 이해할 거다’라며 마지막 발언을 한다. 그 후 자녀들은 우리 아빠가 / 엄마가 작별인사도 안 하고 그냥 카카오톡 채팅방을 나가버렸다는 느낌 밖에는 남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10대 때 부모님에게서 심리적 지지 (Emotional support)를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나는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너도 이 나이가 되면 이해할 거다’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게 봐도 상대방을 부족한 타인으로 취급하는 말이다.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이 대선토론에서 "전 나이를 가지고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드립니다. 상대 후보가 너무 젊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절대 정치적으로 공격하지 않겠습니다." 같이 웃고 넘길만한 유머조차도 되지 않고 그냥 기분만 나빠지는 말이다. 저런 말을 들을 때면 저 사람이 나이가 정말로 이해심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것인지, 그렇다면 현재 대화를 신속히 중단하고 상대방이 본인의 나이로 들어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화를 재개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대화는 특정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해야지 마음의 맛이 느껴지는데 말이다. 


 재밌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데이터 수집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최고의 효율성과 최적의 해결책을 위해 무엇보다도 매 분기, 매년 철저히 진행하는 시장조사를 정작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방을 위해서는 하지 않으며, ‘내 인생이 그랬으니 네 인생도 그럴 거야’라고 단정을 지어버린다. 아마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그게 얼마나 리스크가 큰 오판인지 감이 올 것이다. 스타벅스도 호주에 미국 방식으로 진출했다가 실패를 면치 못한 것처럼


 하지만 그들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TV와 유튜브에서는 오은영 박사님 및 훌륭한 교육자들이 나와 경청과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회사의 중간관리자나 최고관리자가 된 나이에는 그게 어떤 모습인지 감이 잡히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동안 회사에서 시키는 말(명령)만 들어왔고, 시키는 말만 해왔다. 효율성 고려와 해결책 모색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아왔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과거로 돌아가 그 당시 대화법을 끄집어내 배워오라는 건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드라마에나 나올 만한 이야기이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진심을 꺼낸다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나의 아버지는 그런 부분에서 훌륭한 타협점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60~70년대의 태어나신 분들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지금 이야기를 들어도 내가 힘들 만큼 정말로 험난한 젊은 날을 살아오셨다. 당신의 과거 이야기에 ‘나는 정말 갈 곳이 없었고, 돌아갈 가족과 집이 있기를 바랐다’라는 인생 후기를 덧붙이실 때, 험한 인생이라도 자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사람은 어느 누구나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느낀다.


 내가 10대였을 때, 내가 직장에서 방황할 때, 아버지는 본인의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언제나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오셨다. 정말 갈 곳이 없어 친구의 집에서 계속 머물렀다가 친구 부모에게 쫓겨나서 집 밖에 내앉았던 이야기, 의대에 갈 성적이 되었지만 돈이 없어서 지원도 못하고 그날 영화관에 가서 혼자 울었던 이야기, 회사에서도 직장 상사랑 사이가 안 좋았지만 버텨보기 위해 혼신을 다 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며 젊은 날의 느꼈던 감정을 읊을 때 “나도 그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로 알 수가 없었어.”라는 짧은 문장은 자녀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나에게 “나는 이런 걸 겪었지만 너는 이런 거 겪지 마”라는 말은 안 하셨고, ‘너도 이 나이가 되면 이해할 거다’라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생각해 보니 ‘너도 이 나이가 되면~~’이라는 표현의 나에게 건강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실 때만 많이 쓰셨다.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지고 이곳저곳 아프게 되니까.) 


혼란과 방황, 그게 그 나이대에 느끼는 자연스러움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노력을 하셨던 것 같다. 심리학과 의사소통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서적을 뒤져보는 나조차도 솔직한 과거 이야기만큼 진심을 전달하기에 효율성이 좋은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힘들면 어떠나, 힘들고 즐거운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을. 진로가 없으면 어떠나, 어떻게든 자신이 좋아할 일을 찾게 될 것을. 친구랑 사이가 안 좋으면 어떠나, 어차피 헤어지고 만나는 것은 하늘의 뜻인 것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하고 살아갈 때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상만큼 뛰어난 것은 없으리라. 오랫동안 달려오신 사회중년생들이여. 이제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회상하고 솔직하게 읊어보자. 다만 이야기의 감상평은 본인이 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에게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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