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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차영수증 Mar 07. 2023

모습_____#3 인간 합격

 나는 장교로 군복무를 했다. 한껏 더위가 올라오려는 6월, OBC(초급장교양성학교)에서 기초군사교육을 마치고 자대배치(본인이 근무하게 되는 군부대가 결정되고 그곳으로 옮겨가는 것)를 받았다. 도착한 첫날의 밤, 선임 소대장에게 여러 가지 잡무와 한글 워드 단축키를 배우다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여긴 진짜 빡세구나. 내일은 또 뭔 일을 시킬까’라는 하는 염려로 온몸이 지끈거려 왔고, 커튼도 없는 산중 숙소에 비친 선한 달빛에 잠을 못 이루다 새벽 3시나 돼서야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전입신고를 마치고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일은 사람에 대한 기록을 외우는 것이었다. 주로 부대에 있는 간부 및 병사들의 이름과 계급, 보직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선임 소대장은 ‘네가 외워야 할 것은 저기 또 있다. 사람이 없을 때만 열어봐라’라며 자물쇠로 철컥 잠겨있는 서랍장을 가리켰다. 명을 받은 대로 사람이 없는 한밤에 부대에 남아 자물쇠를 열고 안을 살펴보았다. 노란 상자 안에 손때가 껴서 누리끼리해진 서류들이 들어있었다. 거기에는 생각의 자국이 가득했다.


 모든 병사는 훈련소 입소 시 병영 생활 지도기록부라는 것을 작성한다. 본인의 가족관계나 친구 관계, 병사들의 행적과 사고관을 파악할 수 있는 50가지 질문이 적혀있었고, 병사들은 본인이 생각나는 대로 빈칸에 답을 적으면 되었다.


1. 나의 어머니는 __________________


2. 아버지와 나는 __________________


3. 우리 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__________________


4. 내 생각에 여자들이란 __________________


5. 학창 시절에 가장 좋았던 추억은 __________________



 전 부대원의 답변을 읽는데 몇 주가 걸렸지만, 자국을 따라 그들의 과거를 다시 그려본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답변이 가진 평범함의 표준편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가족에 관한 기록에 대해서는 표본의 일관성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가족과 사이가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두드러졌고, 더 나아가서는 부모는 사라져야 할 사람으로 결론을 내린 이도 있었다. 또한, 공백으로 남겨진 답변들이 있었는데, 이를 보며 인생의 한 부분이 저렇게 빈칸으로 처리가 된다는 것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 기록들은 나와 같이 근무하는 병사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부대를 담당하던 중대장은 기록을 해석하는 방식이 나와 달랐다. 그 사람은 자국들을 보며 범죄의 잠재성을 따졌다.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인간, 학창 시절을 평범하게 보내지 못한 인간, 과거의 힘든 일을 겪어 약을 먹었거나 지금도 먹고 있는 인간들을 깡그리 전과자로 취급했다. 그들의 업무속도가 본인의 기대치에 못 미치거나 실수라도 하면 원래부터 그런 인간이었다는 듯이, 짐승은 짐승처럼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사람들과 매일, 매주 개인 면담을 하고 중대장에게 그 내용을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병사들의 기록을 탐색과 보호의 근거로 삼고 싶었지만, 중대장은 기록을 바탕으로 색출하고 감시하고 싶어 했다. 인간을 과거와 기록의 틀에 가두고 사육을 하려는 심보를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군대는 어쩔 수가 없는 곳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함께 했던 병사들은 왕따, 불우한 환경 등에 대한 속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어느 정도 벽이 느껴지는 상대였을 텐데, 나를 이렇게까지 믿고 힘든 이야기를 꺼내주는 것이 참 고마웠다. 그럴 때마다 나도 왕따를 당한 적이 있으니 같이 살아가자고, 이겨내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부적절한 과거가 여러 사람을 돌아 중대장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나의 권한과 지위는 박탈당할 것은 당연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중대장은 그런 인간이었으니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진실하지 못한 모습에 느껴지는 죄책감은 참으로 컸다. 나는 정말로 나약하고 부끄러운 인간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적응을 하며 감시에서 벗어나는 병사들이 늘어갔고, 하나둘씩 국방의 의무에서 졸업하게 되었다. 그들이 전역일까지 무사히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적절한 환경과 의미가 주어진다면 바뀔 수 있으며, 어떠한 기록으로도 함부로 일컬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도 부대를 떠나게 되었다.


 중생(重生, 거듭남)의 현장을 목격한 후 사회에 나와 보니, 모두가 MBTI에 미쳐 서로를 알파벳 사자성어로 부르고 있었다. 130개의 질문에 답변하면 본인의 성격을 16가지 중 하나로 맞춰준다는 성급한 일반화뿐인 검사에 갈증을 느끼는 이가 넘쳐났고, 이를 잘 모르거나 의심하는 자들은 반동분자로 몰아가는 MBTI 홍위병들이 기승을 부렸다. 이들은 인류가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지긋이 바라보고 이야기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모습을 불태우려는 문화대혁명을 이끌고 있었다. 모두가 서로에게 16가지의 분류대로 정의되고, 판별되며, 예측되는 모습을 보여주길 요구했다.


 나도 테스트를 해보았지만 16가지 중 어느 한 곳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고 느꼈고, 인간을 검사의 틀에 연금(軟禁)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군부대 중대장이 생각났다.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싶지도, 집단적 광기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으며, 그냥 나대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MBTI 사상가가 된 내 친구들에게 Sip-선비, 진지충 반동분자로 몰려 조리돌림 당할 뻔한 적도 있었고, 오히려 “너 ENTP이지?”라며 본인이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이제마처럼 나를 체질 진단하려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사상검증이냐, 체질진단이냐. 양자택일만을 좇는 그들의 모습에 대응하기도 지쳤고, 모두가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이 혁명의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허탈함과 몽롱함만이 남았다.




 인간은 품질 관리 하기에 너무 복잡한 존재이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문화 속에서, 같은 공교육 과정을 거쳐도 똑같은 품질의 인간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며, 상황과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 심지어 모두가 다 같이 같은 걸 하는 군대에서조차도 그렇다. 신이 인간 제조업체 사장이었다면 품질 관리가 안 되는 생산설비를 전부 갈아엎고 다시 설치하고 싶은 충동을 매일 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심판의 날이라는 게 있는 건가?) 또한 그런 까닭에 인간은 제품이 아닌 삶의 의지로 가득한 생명체로 불릴 수 있다.


 MBTI가 알려주는 인간의 단면과 그에 맞는 인생 설명서의 효용성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설명서는 제대로 안 읽고 사용하기에 급급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가 없다.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기 전에 설명서와 주의사항을 하나씩 확인하거나, 스마트폰을 산 후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설명서대로 조작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인간은 무언가를 천천히 알아가는 것보다, 본능과 직관이 결론을 내려주길 안달복달 기다리며 살아간다. 이는 신속함이라는 장점을 제공하나, 사물이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은 복잡다단하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색을 바꾸며, 드러내고자 하는 부위를 스스로 조절하는 존재이다. 이런 까닭에 타인뿐만 아니라 본인조차도 시간을 내어 지긋이 알아가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숙성 과정을 제쳐두고 ‘MBTI 기록을 보니 너는 이런 사람이고, 쟤는 저런 사람이야. 너를 이렇게 행동할 것이고, 재는 저렇게 행동할 거야’라고 결론지어 버리는 것은, 사육과 관리를 통해 의지와 고민 같은 건 없이 살아버린, 한 마리의 가축을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더 나아가 서로 MBTI를 로트번호(Lot number)처럼 찍는데 허덕이면서 관계에서 적합성과 품질만 확인하려는 모습, 그들이 살아오면서 올바르게 쌓아 올린 인류적 인내심과 관찰력을 버리고, 삐뚤어진 직관의 노예가 된 모습이 애통할 뿐이다. MBTI 창시자의 목적은 성향에 대한 인생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이었지, 사람들이 이를 예언서처럼 맹신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나 또한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치가 유대인을, 미국의 백인이 흑인을, 일본인이 조선인을 구별하고 등급을 나누며 너는 왜 변하지 않을 것이며, 너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자만하며 외치던 모습이 시릴 정도로 아른거린다.




 나는 우리 자신이 언젠가 부끄러움을 느끼길 바란다. 이 행태에 대한 반감도 느끼길 바란다. 다자이 오사무가 쓴 ‘인간실격’이라는 소설 도입부에는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는 첫 두 문장이 자리한다. 나는 이것이 실격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격한 인간이 되기 위한 최초의 조건이라고 본다. 인간을 제품처럼 여기며 지긋이 보지 않으려 했던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과 타인을 유형이라는 구멍에 쑤셔 넣으려는 모습에 대한 반감을 통해 인간 합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를 알아가고 싶고 변화하고 싶은 사람이듯이, 누군가도 나를 알아가고 변화하고 싶은 인간이라 본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MBTI의 광기와 혁명의 불길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으니, 어딘가에서 나를 알고 싶어 기다리고 있는 이에게 넌지시 꺼내주고 싶은 이야기로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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