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고 묻는 것은 대상을 당신이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만난 화가는 나에게 개인교습을 제안했다. 이 만남은 참 재미있었다. 파리 7구에 위치한 유서깊은 카페에서 만난 화가A와 처음 만났다. 동양인이 빅토르 위고의 생전 즐겨찾던 1800년 르네상스 시대의 지성인들이 모이는 아지트와 같은 곳에 매일 같이 나타나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저 여행객정도로 생각했던 화가A는 여간 궁금한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객이라기엔 너무 여유롭고 너무 오랜 기간 자신과 비슷한 시간대에 와서 얼굴이 익을 정도이니 [ 동양인이라면 하나 같이 '시누아? (중국인?)' 라고 되묻는 당시 파리를 생각하면 ] 일종의 침략자 같았을까?
그러던 어느 날, 화가A는 옆에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불 좀 빌릴 수 있을까?'
'네, 여기 '
무미건조하게 라이터를 건네니 화가A는 머쓱하며 불을 받아든다. 사실 화가A를 무안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어에 서툴고 학교 과정은 인터네셔널 과정이었기에 모든 입학 준비 과정을 'IELTS'로 했고 강의 또한 영어만 사용하는 탓도 있었다. 사실 불어로 불쑥불쑥 말을 걸어올 때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는 것을 화가A는 알리가 없었다.
나도 화가A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항상 같은 시간에 손바닥만한 노트를 들고 으레 자연스럽게 한쪽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 적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
' 당신은 이곳을 꽤나 좋아하는 것 같네요, 왜죠 ? ' 화가A에게 물었다.
화가A는 하얀 연기를 들어마시며 나에게 이곳은 유서깊은 곳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곳을 매일같이 찾는지 왜 이곳이 자신에게 성지와 같은 곳인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화가A는 한번도 올라가본 적 없는 카페의 2층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곳에는 한폭의 그림이 있었는데 종교가 없어도 알 수 있는 그림, '최후의 만찬 La Céne . Cénacle'이 걸려 있었다. 중세 시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곳은 카페의 자랑이라며 지나가는 갹송(웨이터)도 거들었다.
1800년 초기 , 프랑스 혁명의 시대에 꽃 피운 낭만주의 이야기라던지
당시 도서관장 샤를 노디에를 중심으로 20대 ~ 30대의 젊은 낭만파 예술인들이 모인 이야기 등
그리고 그 당시 그들이 함께 했던 흔적들은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화가A에게 건넨 이 한마디는 수 많은 이야기를 선사했다. 그리고 경청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동양인 청년의 모습에 화가A는 그 시대의 샤를 노디에처럼 열정적이었다. 100%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순간 무안함을 피하려고 물어보았던 왜? 라는 질문은 파리에서 생활을 송두리채 바꿔 놓았다. 그 사람의 '노블리스 오블리쥬'였는지는 몰라도 그 만남을 계기로 화가A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 화가 A와 만남 - 전편 ]
만약 그 순간, 라이터를 건네고 화가A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면 그곳을 파리에 있는 노천 카페로 기억할 것이다. 아니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저 커피를 마셨던 곳, 분위기 좋은 카페정도로 기억하는게 다 일지도 모른다. 유서깊은 카페라면 보통 누구나 알 수 있게 간판을 세워서라도 홍보하는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또한 지금까지도 왜?를 불러 일으키지만 180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 대에 거쳐 역사를 간직한 카페, 그곳을 찾는 현 시대 낭만주의자들의 세나클은 계속 전승되고 있다.
근 / 현대 카페 문화의 시발점
'프랑스 혁명도 어떻게 보면 커피의 위력으로 일으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폐쇄적인 귀족들의 사교 문화인 살롱과는 달리 카페[10]는 지식인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주로 드나들며 대중적이고 개방적인 편이었던지라,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개혁의식을 키워 간 부르주아의 이론들이 혁명의 기폭제로 이어지게 된 것.'
당신은 Why를 통해 새롭고 수 많은 기회에 도달 할 수 있다. 그럼에도 Why를 찾는 것엔 익숙하지 않다.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순간처럼 익숙해 지기 힘든 부류이다.
왜? 라고 묻는 것은 이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하다는 것을 빠르게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아갈 의지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아는만큼 보인다. 라는 말은 모든 것에 왜?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특별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는 이 왜? 라는 질문을 통해 생긴다.
인간의 기억에는 제한이 있다. 단순히 암기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IQ가 높은 사람이라도 이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는 유명한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으로 증명되고 설명된다.
인간의 뇌는 암기하거나 본 것의 50%가량을 20분 이내 소실한다. 그 이후 점점 완만해져 한달째에 20%정도의 데이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당신이 하루 8시간 동안 괜찮은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가정하자. 위 내용대로라면 다음날엔 30%정도만이 기억에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보통 사업이라는 것은 왜? 라는 질문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 기능은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것이 사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를 무의식에서의 질문 과정이라 표현하고자 한다.
Why를 수백번 수천번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부표처럼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대기업에 입사할 때 결심했던 것들, 어떤 일을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이 왜? 라는 물음이 따라오지 않고서는 이겨낼 수 없는 것이 있다.
슬럼프라는 이름의 매너리즘 - 화가A 후편에서
KISS THEORY
세 단계를 기반으로 브랜드를 만듭니다.
Why는 영감을
simpler는 특별함을 부여하고
simple 단계에선 전문성을 갖게 됩니다.
저는 모든 의사결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모든 것에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왜? 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왜? 라고 묻는 것에 왜 ? 라는 대답을 하게 되는 순간이
연속될 때 한번 웃게 됩니다.
Everything should be made as simple as possible, but not simpler.
저는 모든 것을 가장 심플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며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그 과정의 연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