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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Oct 09. 2023

교육의 기초, 언어와 관계

한글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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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심이 많은 터라, 왠지 뭐라도 한마디 해야 할것 같은데...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러다 억지로 생각낸 것이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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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은 교육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하긴 근대화 이후 교육이 문제가 아니었던 적도 없긴 하지만. 그래서 많은 분들이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아가 새로운 '학교'를 만들려는 의지를 피략한다. 하지만 막상 학교를 만든 분은 많지 않다. 만들었다 하더라고 성공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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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학교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학원과 학교는 다르다. 학원은 자신이 잘 아는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커리큘럼을 만들고 학생들을 모집하면 되지만, 학교는 이것 외에 더 할 일이 많다. 음... 뭐랄까... 그냥 가르치고 배우는 것 이상의 여러 층위가 겹쳐 있다고 할까... 이념, 성장, 미래, 바탕, 관계 등등 학원보다 고민해야 할 것이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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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커리큘럼과 수업 설계도 아주 어렵다. 학원은 인기 높은 수업을 늘리고, 인기 없는 수업은 줄이거나 없애면 되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다. 인기 있던 없던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수업을 고루고루 배치해야 한다. 교육도 음식과 마찬가지라 편식은 성장에 오히려 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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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게 들어가서, 수업의 질을 높이는 문제도 쉽게 볼 것이 아니다. 학교 수업은 지식이나 재미를 얻는 시간이 아니라 성장을 도모하는 과정이다. 특히 디자인 분야는 강의형 수업만이 아니라 실습 등 상호적 활동을 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강의형 수업은 선생의 수업 능력에 크게 의지하지만, 디자인 실습은 수업 설계가 아주 치밀하고 섬세하게 설계 되어야 학생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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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설계자로서 가장 중요한 역량을 하나 꼽으라면 '미래 비전'이란 생각이다. 사람들은 종종 교육은 100년을 설계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건 옛말이다. 200년전에는 역사 공부를 충실히 하면 100년을 예측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완전히 다르다. 지난 200년간 세상은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변했고, 변하고 있다. 그 속도는 더욱 빨라져서 당장 내년에 어떤 기술이 등장할지, 어떤 위협이 생길지,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올해만 하더라고 작년말부터 챗GPT가 난리더니 또 초전도체가 난리였다가 지금은 다시 또 잠잠하다. 국제관계, 국내정치는 어떠한가... 어떤 일이 어떻게 등장하고 어떻게 사라질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성장을 도모할 지 어찌 알겠는가. 어떤 교육자가 그걸 어찌 예측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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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우리가 교육에 손을 놓을 수 없다. 예전에 소설가 최인훈의 에세이를 읽다가 이런 장면이 나왔다. "선생님 예술을 가르친다는게 가능한가요?" 참 난처한 질문이라 최인훈의 대답이 너무 궁금했다. 그는 이런 취지로 대답했다. "저도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하는데까지는 해봐야죠" 난 이 대답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렇구나... 교육이 이런 거구나... 일단 하는데까지 최선을 다해보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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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학교를 만들려는 의지를 갖고 계신 분을 만난다. 대개는 '학원'인 경우가 많기에 늘 열렬히 응원한다. 도움 드릴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말씀드린다. 학원은 언제나 누구나 만들 수 없고, 안되도 리스크가 크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주 가끔 '학교'를 꿈꾸는 분을 만나면 뭔가 두렵다. 왠만하면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그게...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도 모르게 발을 뺸다고 할까... 아주 가까운 지인이더라도 별로 개입하지 않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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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내가 학교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친구들과 함께 디학과 디캠(디자인캠프)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브랜딩과 커뮤니티 교육 등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요즘은 대학과 디학, 캠프가 연결된 새로운 형태의 교육 시스템을 꿈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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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처음 디학을 시작할때 무척 어려웠다. 우리는 모두 교육 경험이 풍부했다. 게다가 자신의 분야에서 몇개의 수업을 동시에 운영할 능력을 갖추었기에 각자 대학원 한두개 정도는 거뜬히 만들고 운영할 지식과 경험이 있었다. 그럼에도 대학 밖에서 전혀 새로운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것들을 완전히 새롭게 고민해야 했고, 생각지도 못한 이슈와 암초가 무척 많았다. 그걸 극복하고 지난 5년간 버텨온 것을 돌아보면 기적처럼 느껴질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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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이라고 본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까? 이럴때 항상 머리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소학'이다. 주자는 왜 '소학'을 만들었을까... 나는 이 '소학'을 우리식으로 말하면 기초, 바탕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주자도 그랬지 않았을까... 한치앞도 알 수 없는 시대에 그냥 손놓고 있기 보다는 가장 기본기와 기초, 바탕으로 돌아가 그거라도 다져야한다는... 그런 생각. 예전에 히딩크도 그랬던듯 싶다. 한국선수들은 이미 기술적으로는 충분하다. 다만 기초체력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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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우리 시대 교육도 마찬가지라 본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는 기술을 제일 먼저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기술 중요하다. 배워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 시대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기술 변화'라는 점도 잊어선 안된다. 내가 지금 배운 기술이 곧 다른 기술로 대체될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술에 앞서 다양한 기술들에 바탕이 되는 기초와 바탕을 배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 사람들은 이미 기술과 기술변화에는 능수능란하지만 기초체력이 약한 것이 아닐까 싶다. 히딩크의 통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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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우린 우리 시대 교육에 대한 제대로된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기초체력을 쌓으려면 뭘 공부해야 하나요?" 난 이 문제를 갖고 아주 오랜시간 고민해 왔다. 과연 우리 시대, 아니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기초와 바탕은 무엇일까? 이 고민은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그나마 하나 꼽으라면 ‘언어’다. 인간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자, 최고의 소통수단인 언어는 기술처럼 빠르게 변화하지 않는다. 변화에 민감하지 않은 언어에 대한 이해는 전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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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관계를 만들고, 관계에서 언어가 비롯된다' 나는 이 원리가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말과 글이 아주 중요하다. 말과 글로 관계가 만들어지고, 관계를 통해 말과 글이 새롭게 쌓이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보다 '언어'가 앞선다는 것이다. 첫 관계가 '언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게다가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라 내가 통제하기 어렵다. 반면 '언어'는 결국 내가 내입으로 말하고, 내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라 통제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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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점에서 나는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교육은 '말과 글'의 언어 교육이란 생각이다. 내가 디자인의 기초로서 '시각언어'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각언어가 다소 전문적인 분야라면, 말로된 음성언어는 아주 보편적인 분야다. 심지어 나는 '한국사람'이라는 정체성도 영토에서 혹은 DNA보다는 '한국말'에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말을 잘하는 예능인 조나단을 보면 난 그가 꼭 한국사람같다는 생각을 한다. 성은 '조'고 이름은 '나단'. 그래서 그의 친구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나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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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을 글자로 적은 것이 '한글'이다. 한글은 보편적으로 상용되는 음성언어 문자 중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문자 시스템이다. 한국말을 기반으로 만들었기에 한국말을 적기에 적합한 문자 시스템이지만, 다른 나라 말이나 각종 소리를 쓰기에도 탁월하다. 그래서 많은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위대함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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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듯, 나도 말년의 나를 상상하곤 한다.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상상은 그때그때 맥락에 따라 바뀌긴 하지만... 요즘은 나의 고향 원주에서 '한국말'과 '한글'을 가르치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한국말교재는 이번달 최봉영 선생님이 내시는 '한국말 말차림' 책이다. 한글교재는 김의래 선생님이 언젠가 낼 '한글 타이포그래피' 책이다. 이 두 교재를 바탕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한국말의 형태와 의미, 한글의 조형원리와 조판을 가르치면 얼마나 재밌을까... 이런 미래를 상상할때면 참으로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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