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디자이너들이 '시각언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쓴다. 특히 디자인 워크숍이나 교육 관련 프로그램에 이 단어를 쓰는 빈도가 많이 늘어났다. 지난 십여 년 '시각언어'라는 타이틀로 디자인 이론 강의를 해온 나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시각언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개념어는 거대한 맥락의 바다를 이루고 있기에 한두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거대한 맥락을 한 번에 잡아내는 문장을 만드는 것이 이론가의 역할이다. 그렇기에 더욱 신중해지고, 더욱 어려워지는 듯하다.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특히 눈으로 감지하는 시각이 발달해 있는데, 그만큼 뇌의 시각 영역도 크다. 재미있는 점은 뇌의 시각피질이라고 해서 꼭 시각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뇌의 신경세포와 구성 방식은 거의 동일하기에 어떤 역할도 할 수 있다. 가령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 영역을 청각이나 촉각 등 다른 감각을 위해 쓴다. 이분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청각과 촉각이 엄청나게 발달해 있기에 이에 관련된 분야에서 특별한 활약을 할 수 있다.
아무튼 시각이라는 감각은 주로 이미지로 구성된다. 시각피질도 크고 이미지가 워낙 익숙하기에 청각도 촉각도 공감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예전 어떤 디자인 교육자가 '청각이미지'는 말이 안 된다며 우겼는데⋯ 그분은 과학에 전혀 문외한이기에 그냥 넘어갔다. 신경과학에서 청각이미지는 참 많이 쓰이는 말이다. 리듬, 피치, 액센트 등 우리는 수많은 청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지금 쓰고 있는 이 문자도 일종의 청각이미지이다. 공감각 개념을 이해하면 청각이미지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시각이 이미지라면, '언어'는 소리이다. 실제로 언어를 지칭하는 한자어나 영어는 모두 입이나 혀의 상형이다. '말씀 言(언)' 한자는 입에서 소리가 나가는 형태이고, 영어 language는 혀를 의미하는 '랑그'라는 발음에서 파생된 말이다. 사실 기호학에서 'langue(랑그)'는 언어를 지칭하는 프랑스식 발음이기도 하다.
시각언어를 영어로 하면 Visual Language이다. 이미지를 말하는 '시각'과 음성을 말하는 '언어'가 묘하게 조합된 표현이다. 나는 수업을 시작할 때 이 묘한 조합에 대한 해명을 하는데, 사실 시각언어는 'Visual Language'보다는 'Visual Sign'이 맞다. 하지만 Sign이라는 표현에는 이미 비주얼 이미지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에 굳이 Visual을 쓸 필요가 없으며, Visual Language가 주는 묘한 뉘앙스가 좋아서 나는 이런 표현을 선호한다며 양해를 구한다.
좀 더 논리적으로 해명하면, 나는 시각언어학(기호학) 이론을 만들고 있는데, 주로 그 이론은 기존 '언어학 linguistics'에서 모티브를 가져오기 때문에 여러 기호들 중 '언어 논리적 체계를 가진 이미지'라는 측면에서 '시각언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강조한다. 즉 나는 '시각언어'를 '언어 논리적 체계를 가진 이미지'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언어학을 구성하면서 나는 크게 4가지 세계를 전제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 세계(도시와 같은 인공 세계도 자연세계에 포함된다), 그리고 자연 세계 속에 살면서 언어를 만들어내는 기호 생산자로서의 인간 존재,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 기호 세계, 마지막으로 언어 기호 세계 속에 살면서 언어를 해석하는 기호 소비자로서의 인간 존재. 이렇게 4가지 세계의 순환 피드백 구조를 상상한다.
'자연-인간(생산자)-기호-인간(소비자)-자연'의 피드백 맥락 구조에 의하면, 우리는 먼저 과학을 통해 자연 세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런 토대로 기호 생산자로서 인간 존재를 이해하고, 기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기호 세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야 기호 소비자로서 인간 존재를 이해하고, 자연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선순환 구조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자연 세계, 즉 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때문에 나는 과학과 관련한 정보를 얻으려 노력한다. 최근에는 거의 과학책과 과학 강의를 주로 듣는다. 특히 박문호 박사님의 빅히스토리를 반복해서 듣는데, 이분은 물리학과 생물학, 천문학, 지질학, 신경과학 등 여러 과학들의 칸막이를 제거하고 통섭하는 접근을 하신다. 그래서 빅히스토리다. 나는 이 빅히스토리를 반복적으로 읽고 경청하며 시각언어학에 접목하기 위해 애를 쓴다. 지난번 디학에서 특강한 '기호상대성이론'도 이런 배경에서 접근한 것이다.
'시각언어' 참 매력적인 말이다. '디자인'이란 말도 참 매력적이지만⋯ 이미 너무 포괄적 개념어가 되어서 뭔가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약간 '고마워' '사랑해' 같은 일상어가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그래서 '시각디자인 워크숍'이라는 표현보다는 '시각언어 워크숍'이란 표현이 뭔가 더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런 방향이 맞다고 본다. 다만 우리가 디자인 분야에서 새로운 전문용어를 도입해 사용할 때는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그 용어를 좀 더 깊이 생각하며 쓰면 좋을 듯하다. 그럼 시각언어에 대한 의미가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