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를 들다 04.]지킬과 하이드의 이중창, '환장'

by ONDI

나는 대학생 때 열한 살 차이가 나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뮤지컬 덕후'인 나의 첫 뮤지컬은 그 남자친구 덕분에 관람한 '지킬 앤 하이드'였다.

이후에도 나는 그와 함께 내로라하는 뮤지컬들을 수없이 관람했고, 무사히 뮤덕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 남자와는..

현재까지 지지고 볶고 재미있게 잘 살고 있다.


Confrontation.

지킬과 하이드가 대립하는, 1인 2역 배우의 열연으로 유명한 넘버다.

그리고 현남편인 그 남자가 좋아하는 넘버이기도 하다.


요즘 매일같이 내 안에서 무대가 펼쳐진다.

떼쓰고 폭주하는 나와 어설프게 어르고 달래는 나.

이러다 진정 자아분열이 오는건 아닌지.


그야말로 지킬과 하이드다.




3월이 지나가고 있다.

곰도 춤추게하는 봄이지만, 우려했던대로의 봄이기도 하다.


이사 계획에 아무런 진척 없이 날이 풀려가고 있다.

해마다 매화를, 산수유를, 벚꽃을 기다리는 나라고 해도, 올해만큼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 좋겠다.


거제로의 이사 이야기가 처음 시작된건 작년 연말이었다.

그리고 거제로 임장을 다녀 온 건 1월 중순.


올해 상반기 끝자락에나 움직이게 될 것 같다는 송옥의 말을 안달이 나서 믿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상반기 안에 갈 수나 있겠나 싶어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졌다.


우리의 이주 계획은 무사한걸까.



-지킬-


봄이 왔다.

여느 때와 달리 거제의 푸른 바다를 꿈꾸는 봄이다.


글을 쓰자.

기다림은 나를 탐구하는 시간으로 치환해보자.

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라고 믿어보자.


뜨개질을 하자.

파스텔톤 실들을 엮어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만들어 보자.

이 얼마나 몽글몽글한 따스함인가.. 라고 느껴보자.


일본어 공부를 하자.

멋진 엄마, 일본 여행........

어...? 어......?!



가까스로 붙잡은 지킬의 자아가 열일하며 나의 답답함을 다독이고 있었다.

다시금 하이드의 자아가 폭발한 건, 일본어 시험 때문이었다.


이왕 시작한 공부니까 목표 설정을 해보자, 그냥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응시해 보고 싶은 시험의 일정을 찾아본 것 뿐인데,

시험은 7월. 접수는 4월.


나는 '서울권'에 접수해야 하는가, '부산권'에 접수해야 하는가.


망했다.

하이드 등장이다.





-하이드-


아직도 모든게 그대로다.

이사 언제 가냐!


이사를 가긴 가는거냐.

여름이라고 가능할 것 같냐.

이사가고 싶다!


이러다가 눌러 앉게 생겼다.

이사가게 해달라!!!


누구에게 조르는지도 모른 채로 악을 쓰고 드러눕는다.

어쩌라는건가.


평화롭게 흘러가는 일상 아래로, 내 마음에선 커튼콜도 없는 공연이 매일 열린다.

박수도 야유도 내 몫이다.

막공이 있긴 할까 싶지만, 있다면 이삿짐이 떠나는 날쯤이려나.





급기야는 목련이 만개해버렸다.

툭 터진 목련 꽃을 발견하고 반갑기가 무섭게 하이드가 등장했다.

조바심이다.


곧 벚꽃 차례다.

흩날리는 벚꽃아래 서있는건 지킬일까, 하이드일까.


아..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부동산으로부터의 전화가 울려주길.


미신에 일가견이 있는 나의 이모가 그랬다.

가위를 훔쳐다 현관에 달아두면 집이 빨리 팔린다고.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마음 저 깊은 곳에서 하이드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마무리는 모르겠다.

하이드의 발광으로 글이 더 엉망이 되기 전에, 나는 이모의 가위를 훔치러 일어선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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