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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마케터 Nov 21. 2023

엄마는 울지 않음으로 울었다

얼마 전 세무사 시험 발표가 있었다. 오빠는 올해로 4년째 세무사 시험을 보고 있다. 사실 성인이 된 이후로 종목을 바꿔가며 온갖 시험을 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시험을 몇 년을 봤는지 나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세무사도 3년, 4년, 5년 정확히 모르겠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해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오빠에게 말했다. "이러다 엄마 화병으로 죽기라도 하면 오빠 그 죄를 어떻게 받으려고 이래? 정신 좀 차리고 관둬."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오빠는 내게 "미안하다" 한 마디만 남긴 채 엄마 앞에서 엉엉 울며 다시 도전하겠다고 했단다. 그렇게 또 엄마의 희망고문은 시작되었다.


20년째 이어진 엄마의 희망은 중단할 줄을 모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과는 "불합격" 이전 글에도 설명했지만 오빠가 1차를 합격하기는 한 건지 난 믿을 수가 없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엄마는 몸져누웠다. 얼굴색이 새까매진 엄마는 밥조차 못 먹고 누워만 있었다. 엄마는 내게 "너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엄마가 죽을죄를 지었다"라고 사죄했다. 엄마는 울지 않음으로써 울고 있었다.


아빠의 연금이 있긴 하지만 우리 집에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된다. 내가 주는 돈으로 오빠 핸드폰비도 내고 독서실비도 낸다는 걸 난 모르지 않는다.



공부는 도피처


아빠는 오빠 꼴 보기 싫어서 무엇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핑계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아빠는 하루종일 방 안에서 티브이만 본다.


나는 이런 현실을 누구와도 나눌 수가 없다. 사실 나조차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남자친구가 있지만 그가 있기 전에 나는 주말에도 무조건 나갔다.


엄마, 아빠, 오빠의 답답한 모습을 보면 숨이 쉬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독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독립한다고 이 집에 돈을 안 줄 수는 없다.


내가 돈을 주지 않으면 부모님 연금만으로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독립하면 안팎으로 돈이 나가는 셈인데 쉽게 결정이 되지 않았다.


오빠에게 내가 따로 용돈을 주거나 하지도 않지만, 내가 주는 생활비로 오빠 공부시킨다는 생각에 가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깟 돈 주는 게 아까운 게 아니다.


이 집이 나에게는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짐으로, 오빠에게는 안락한 보금자리로 엄마아빠 믿고 20년 동안 내내 공부라는 이름으로 도피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부를 하더라도 엄마아빠 돈, 이제는 동생돈으로 공부를 해서는 안될 일이다. 내년이면 45살인데 언제까지 가족의 힘을 빌릴 것인가. 너무 싫다가도 저러다 자살이라도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한다.



길은 정말 없나


아빠는 말했다. 오빠가 좀 융통성이라도 있으면 작은 가게라도 차려줄 텐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뭘 하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오빠는 신 같은 존재였다. 엄마는 오빠에게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오빠는 정말 어린 왕자처럼 자랐다.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뭐든 엄마가 해줬기 때문이다.


오빠 학교 숙제조차 엄마랑 내가 다 해줬었다. 그게 자식 버리는 일이었단 걸 엄마는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여전히 오빠는 엄마에게 반찬투정을 하는 어린아이 같은 존재다.


나는 요즘 오빠 얼굴 보는 게 고통스럽다. 그래서 오빠랑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내 상태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으니 요새 남자친구는 내게 "너 요새 왜 그래. 뭔가 아픈 사람 같아"라고 말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남자친구에게는 적당히 둘러댔다. 내가 오빠에 대해 자세히 말하면 나의 이 응어리가 폭발할 거 같아 두렵다. 그래서 오빠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본받고 싶어 했던 오빠였다.



"이러다 오빠 큰일나"


오빠는 망가져 있다. 그냥 매일 도서관에 간다는 핑계로 집을 벗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며칠 전 나는 엄마에게 "그만하게 해. 돈도 대주지마. 이러다 오빠 진짜 망쳐"라고 말했다.


엄마는 나와 더 이상 말 섞기 싫어했다. 엄마는 내가 오빠에 대해 뼈아픈 말을 할 때마다 나와는 더 이상 대화하기를 꺼려했다.


그럼 나도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다는 말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하지 못했다. 아빠처럼 "중단" 선언이라도 해야 오빠가 정신 차리고 제 몫을 하며 살 것인가?


40대 중반이 된 아들 시험 본다고 밤낮없이 반찬 만들어 내는 엄마조차 곱게 보이지 않는다.


한때 나는 결혼을 도피처로 생각했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지도 못하는 걸, 그냥 이 집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내가 아직도 어른이 덜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 하나 붙들고 이렇게 평생을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조차 그들 사이에서 여전히 오빠를 미워하며 산다는 게 끔찍하다.


나는 여러 면에서 모자란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마 내일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해서 웃고 일할 것이다. 하지만 요새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이다.


너무 간절히 부모, 오빠 모두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나 없이도 어떻게든 살겠지...


아니 내가 아니어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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