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이 있는 어머니는 내가 십 대였을 때 유난히 자주 아프셨다. 고2 봄소풍때였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조차 힘든 어머니는 당연히 김밥을 싸줄 수 없었고 나는 김밥 대신 먹을 과자 몇 봉지를 사고 소풍을 떠났다. 지금처럼 이른 아침에 김밥을 쉽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애써 사려 하지도 않았고 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 상황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과자로 부족하면 집에 와서 밥 먹으면 되지 하는 가벼운 마음 뿐.
소풍날 막상 점심 때가 되니 과자로는 영 성에 차지 않았다. 소풍의 상징과 같은 김밥을 먹지 못한 타격이 생각보다 컸다. 그러나 가방에 없는 김밥을 어쩌랴. 아쉽고 아쉬운 마음만 달랠 뿐.
그 때 운명처럼 동아리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같은 반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마주친걸까. 친구는 소풍인데다 점심시간에 만났으니 으레 할법한 질문을 던졌다.
"밥 먹었어?"
"엄마가 아프셔서 도시락을 못 싸왔어."
나는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불쌍한 척 하려한건 아니었는데 우리 사이에 굳이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친구가 무심히 한 마디를 던졌다.
"나 도시락 두 개 싸왔는데 하나 줄게."
과자 나부랭이로 때울 뻔한 점심은 친구엄마표 김밥으로 마무리됐고 처량할 뻔 했던 소풍은 친구 덕에 잠시나마 화창한 날씨와 초록 가득한 풀밭과 함께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신기한 건 친구가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던 그 장면이 고2 소풍에서 남은 유일한 기억이라는 점이다.
이 기억을 글로 남기려니 고작 김밥 건네받은 장면 하나로는 부족한 듯 하여 친구의 기억을 빌려보려했다. 친구가 가진 기억은 나와 또 다를 수 있으니 우리 둘의 기억을 조합하면 사진 한 장같은 밋밋한 이야기보다는 그럴싸해지지 않을까.
"너 우리 고2때 소풍날 기억해?"
나는 은근히 기대를 갖고 물었으나 친구가 한 대답은 내 시나리오 저 멀리 있었다.
"고2때? 우리가 그때 소풍도 갔었니?"
이럴 수가. 글렀네 글렀어. 소풍 간 기억조차 없을 줄이야. 그냥 전화를 끊으려다 실마리를 던져주면 뭐라도 떠오르지 않을까싶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 날 내가 이러저러해서 김밥 못 싸갔는데 마침 너가 남는 도시락 있다며 주더라고."
"이야...내가 그랬다고? 나 꽤 괜찮은 사람이었네!"
자화자찬하는 친구에게선 아무 것도 건질 것이 없었다. 소풍 자체가 기억 속에 없는데, 남는 도시락 하나 준 게 별거랴. 그 작은 행동으로 내게서도 잊힐 뻔한 고2 소풍은 기억에 남았으니 내겐 더없이 특별하지만 말이다.
독자의 눈물을 쏙 뺄만한 이야기는 물건너갔지만 우리는 희미한 소풍날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고등학생으로 되돌아갔다. 그래, 이렇게 이야기할 추억이 있고 친구가 있다는 것이 소중한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