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갔다.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섹션 안으로 카트를 밀며 들어가려다 우리 쪽으로 걸어나오는 한 꼬마 아가씨를 만났다. 다섯 살 정도 되어보이는 꼬마 아가씨와 눈이 잠깐 마주쳐 싱긋 웃으니 아이가 인사하듯 작은 손을 좌우로 흔든다. 귀여운 모습에 나도 환하게 웃으며 덩달아 손을 흔들어주고 지나쳤는데 잠시 후 아이가 저만치 떨어져있는 아빠에게 자랑하듯 큰소리로 말한다.
"아빠! 나 예쁜 사람한테 인사했어!"
'예쁜 사람'이란 뜻밖의 단어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남편을 쳐다보았고 남편도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들었지? 나 오늘부터 예쁜 사람이야."
내가 으스대며 말하자 남편이 피식 웃는다.
"왜에~! 아이들은 정직해."
'예쁜 사람'이라는 평가가 날아가버릴까 나는 서둘러 다짐하듯 말했다.
아이는 또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말했다.
"엄마! 나 예쁜 사람한테 인사했어!"
내가 바로 옆에 있었다면 소개라도 시킬 기세다. 아이엄마와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방금 아이와 인사한 예쁜 사람 입니다.'라고 해야하나 나도 모르게 고민도 잠시 해보았다.
찾는 물건이 없어 해당 섹션을 빠져나오며 아이와 눈이 또 마주쳤고, 나는 다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얼른 카트를 밀며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내 모습이 보이는 한 '예쁜 사람'이라는 말이 뒤통수를 계속 따라다닐 것 같아서다.
어디선가 생후 1,2년 된 아이들도 웃는 얼굴과 화난 얼굴을 구분할 줄 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후로 나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되도록이면 웃는 얼굴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내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만이라도 함께 웃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면 아이들의 순수함에 때묻는 순간이 조금은 느려지지 않을까.
어느 초등학생이 지은 <공짜>라는 제목의 근사한 시를 소개한다.
공짜
지은이: 박호현
선생닝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공짜는 정말 많다.
공기 마시는 것 공짜
말 하는 것 공짜
꽃향기 맡는 것 공짜
하늘 보는 것 공짜
나이 드는 것 공짜
바람소리 듣는 것 공짜
미소 짓는 것 공짜
꿈도 공짜
개미 보는 것 공짜
공짜인 많은 것들 중에 미소짓기가 있다. 그렇다. 미소 짓는덴 돈이 들지 않는다. 돈은 들지 않으면서도 행복으로 되갚아준다. 남아도 이렇게 남는 장사가 없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인사하는 미국 문화가 나는 참 부럽다. 딱딱한 공기가 미소 한 번에 부드러워질 수 있으니 말이다.
모르는 사이에 미소 짓기가 어색하다면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무표정 대신 미소를 한가득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혹시 아는가. 오늘 내가 그랬듯 예쁜 사람이라는 뜻밖의 칭찬을 선물로 받을 수도 있으니.